서로를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
"그 있잖아 요즘 몸이 안 좋으시다는 15단지 그 분?"
지인은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모르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부모님과 대화를 하다 보면 자주 겪는 일인데, 생각해보니 부모님의 지인들 중 내가 이름을 아는 분은 손에 꼽히는 것이었다. 만날 일이 없어 이름을 까먹었다기보단 볼드모트처럼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우리나라만큼 이름이 짧은 나라가 또 없을 텐데. 나는 왜 그 분들의 이름을 알지 못 할까. 이름 두 글자면 간단히 기억할 수 있는 분들을 '성당 회장님 할아버지', '12단지 LG 아주머니'와 같은 비효율적인 단어로 칭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지인이지만 내가 종종 뵙는 분의 경우엔 그 호칭이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 탄생하기도 했다. '혜민이언니 아주머니'를 '혜민이언니 아주머니'로 부르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계산이 존재했다. 혜민어머니라고 부르기엔 혜민언니가 나보다 나이가 많고. 혜민언니 어머니라고 부르기엔 오히려 혜민언니보다 아주머니를 더 자주 뵙는데 정이 없어 보이고. 그러고 보니 난 혜민언니를 혜민이언니라고 부르네? 그럼 혜민이언니 아줌마? 이건 또 영 딱딱해보이니 약간의 친근함과 예의를 더해서 아주머니로 가자. 그렇게 해서 '혜민이언니 아주머니'는 '혜민이언니 아주머니'가 되었다. 이제 나름대로 적절한 호칭을 찾았으니, 나는 아마도 영영 그 분의 이름을 알게 될 일이 없을 것이다.
한 해가 지날수록 유난히 촘촘해지는 관계와 서열의 상대성 속에 우리는 이름을 잃어 간다. 그 분들은 하루에 얼만큼 제 이름을 불러 주는 사람들과 살아갈까. 우리 엄마가 '지인엄마'가 된 이후로 잃은 이름은 몇 번이나 될까. 아빠의 일주일 안에 아빠를 아빠로, 당신으로, 형제님으로, 선생님으로, 사장님으로 부르지 않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