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작일기] 5. 샛길에 들어섰다

by 지인


내 목표는 취업이었다.


취업률 극악인 인문대생에

KBS 한국어능력시험 2-급

토익 900점

한국방송작가교육원 수료

한 달 남짓한 보작 경험이 내가 가진 스펙 전부였다.


수 개의 자격증을 따고 인턴 경험을 만들고

기업별로 공채 시험을 준비하는데 들이는 시간이면

수요 있는 it기술을 배워 일단 취직을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나는 20대 후반이었고

부모님껜 짐이 아니라 덞이 돼야 할 의무도 있었다.

대학생부터 생활비는 늘 벌어썼지만

보탬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죄책감으로 어깨를 짓누른 지 오래됐다.


집에서 한참 먼 송파구에서 코딩 교육을 시작했다.

정신과 치료를 시작한 즈음이었다.


코딩 수업을 시작하고 처음엔 재밌었다.

자바가 아닌 자바 스크립트는 재밌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적성이라고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자바를 시작하고 나서는 좌절했다.

나는 좌절을 쉽게 하는 편이었더라.


그래도 중도 포기는 하지 않았다.

이미 보작을 중도 포기했다는 자괴감이

더 크고 무거웠다.


5개월 간의 코딩 교육을 마치고

예상 외로 코딩 강사님께 칭찬을 들었다.

적성에 맞아보이더라는 말도 들었다.

의심스러웠지만 나는 취업이 목표였으니

속는 셈치고 포폴 작업을 시작했다.


자바와 부트스트랩으로 게시판을 만들고

사내 메신저 프로그램을 흉내만 낸 작업물을

포폴에 넣었다.

학원에서 교육 중에 만든 자잘한 작업물도 함께.


스스로도 느낄만큼

초보적이었고 헐거웠지만,

그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가리지 않고 이력서를 부지런히 넣었다.

하지만 도통 연락이 오지 않았다.


정부에서 만든 it기술 취업센터에서

한 기업 대표님을 만나

구인 공고를 소개받고

이력서를 넣었다.


나를 포함해 우리 반에서 세 명이

면접 연락을 받았고

그렇게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첫 면접을 치렀다.


코딩 시험도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에서 사용하는 언어인 sql 시험도

엉망이었을 거다..

인적성 면접도 그저 열심히 하겠다는 말 뿐이었는데


3주쯤 지나고 합격 연락을 받았다.

천운이 따랐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20대 끝자락에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머릿속에선

이제 직장 생활도 시작했으니

경력 쌓아 더 큰 기업으로 이직도 하고

퇴근 후엔 드라마 공부도 해야지,

낙관이 넘쳐 흘렀고


무한궤도에 갇혀있던 인생을 끄집어 내고

탈선한 기차를

다시 선로에 올려놓은 기분이었다.


취업했다는 기쁨에

마음도 가뿐해져

7개월 간 받아온 정신과 치료도 마음대로 중단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또 김치국을 사발로 들이켜면서

가슴만 부풀었다.


직장 생활이란 게 뭔지도 모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