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작일기] 4. 비 온 뒤엔 땅이 굳고 죽순이 자란다

by 지인


정신과를 떠올린 건 처음이었다.


쿠팡, 마켓컬리 냉동창고에서 날일을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KBS방송아카데미 드라마작가 과정을 들었는데

가양대교를 건너는 버스 안에서 매번

한강에 빠져 죽고 싶었다.


날일 6개월 째라 피폐해진 탓인 가 싶어

정규 아르바이트를 구했는데

계산대에 서서 손님을 맞을 때마다

숨을 못쉬고 말을 절더라.

그런 기분이 처음이라 꺽꺽 넘어가는 호흡에도

이게 병인지 분간도 못하고

또 한두달을 그냥 앓았다.


어느날 11시간이 넘도록 깊은 잠에 취했다가

안개 낀 멍한 머리로 떠올린 게 '정신과에 가야겠다' 였다.

간절했다.


아르바이트를 관두고

고심해서 정신과를 골랐다.

감기, 근육통, 두통에는 죽어도 병원에 안가더니

정신에 든 감기에는

이러다 죽겠다 싶었는지

곧바로 정신과를 찾다니.


사람이 쉬이 죽는 것 같아도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


신도림의 어느 정신건강의학과를 예약하고

첫 방문을 했다.


병원은 클래식이 흐르고

환자가 많아도

접수대와 대기실은 조용했다.

왠지 예의를 차려야 할 것 같았다.

무뢰배로 오해받고 싶지 않았다.


내 이름이 불리고 노크도 하고

예의 차려 들어간 상담실에서

나는 의사의 왜 왔냐는 한 마디에

갑자기 와앙 울었다.

아주 그냥 펑펑 울었다.

봇물 터지듯이 쏟아지는데

참으려고 해도 안참아지고

숨은 또 꺽꺽 넘어가고.


의사 선생님도 당황해서 나에게

왜, 왜..? 를 연발 하셨다.


나도 몰라요 선생님.

제가 정신과를 간절히 찾은데는 다 이유가 있다니까요.

저도 저를 몰라요.

알아맞춰주십쇼.


선생님한테 이러저러 자잘하고 지지부진한 세월 이야기를 했고.

선생님은 지금 별도의 테스트도 불필요해보인다고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진단을 내리셨다.

그래요... 그럴 거 같드라고요.


쨌든 살아보겠다고

스스로 정신과를 찾고

치료를 받으면 낫는다니

이정도면 얼마나 다행인 형편인가.


약효과는 굉장했다.

자정 즘에 가족 모르게

약 몇 알을 삼키고 나면

바람 불지 않는 적도의 바다 같은

상태가 찾아온다.


어떤 곧고 일정한 직선 하나에

내 마음이 온통 붙들려

들뜨거나 가라앉지 않게 꽉 잡아주는 기분이다.


2주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았고

타인에게 눈물 콧물 빼고

치료제를 받아드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이제 좀 사람답게 살아야 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보작을 그만둔 지 6-7개월이 지난 시점이었고

다시 드라마의 풍랑을 맞을 준비는 안돼 있었다.


블로그에 드라마의 세계를 잠시 떠난다는 포스트를 올렸다.

스스로에게 쓰는 글이었다.


대학교때 이수한 스토리텔링 수업들부터

작가교육원 기초반, 연수반

KBS 아카데미 드라마작가 중급반

보작 2개월까지


잘고 유약하지만

내게는 다 용기었던...!

세월을 잠시 접고


나는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서울시,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

각종 지자체, 행정부처가

합심해서 국비교육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내가 고른 종목은 자바...

그래 그 java....

코딩....


난 인문대생인데

취미는 드라마보기

특기는 드라마보기

장점은 드라마 오래 보기

단점도 드라마 오래 보기인데.


java 개발자가 되겠다며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비전공 개발자 중 하나가 되었다.

예, 그 때 자란 죽순 중 하나가 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