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작일기] 3. 냉동창고 표류기

by 지인


그렇게 첫 보조작가 경험에서 처참한 실패를 겪고

나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가슴엔 열패감이 넘쳐 흘렀고

머리엔 비관적인 생각이 안개처럼 가득했다.

해로웠다.

그러게 곱게 아버지가 살라는 대로 살지.

시청자나 하지 왜 작가를 하겠다고 설쳐서는.


사실 아버지는 작가 꿈을 지지해 주셨다.

이 놈의 꼴통 같은 둘째 딸이 꿈이라는 게 생겨서 다행이다 싶었을지도 모르겠고

작가는 대개 성질이 더러우니 성질 더러운 내 딸이 잘 맞겠다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게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지지에 부응하지 못한 둘째 딸은 결국

넘쳐 흐르는 열패감을 뚝뚝 흘리며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다녔다.


대학교 내내 카페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카페 알바는 죽어도 하기 싫었고

누굴 만나기도 싫었고 스치기도 싫었다.

그래서 일용직 알바를 시작했다.

돈 떨어지거나 카드값 갚을 때가 돌아오면

마켓 컬리 알바를 한 번씩 나갔다.

일급으로 10-12만원 남짓한 돈을 쥐었고,

일용직은 한 달에 7번 까지는 세금을 떼지 않았다.


처음엔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신청하고 취소하길 여러 차례 하더니

익숙해지니 관리직원들 얼굴도 얼추 외워졌다.

공장 급식도 잘 먹었고 팁도 생기더라.

집에 칩거하다 달에 7번 마켓 컬리만 나가는 생활 3개월 째에

나는 쿠팡 일용직 알바도 추가했다.

마켓컬리 7번, 쿠팡 7번.


어둑한 밤에 버스를 타고 공장단지로 들어갔다가

밤새 거대한 물류 공장을 헤집으면서 물건을 담고

새벽에 퇴근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아버지는 그만두라고 누차 말했지만

그때의 나는 별다른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뭘 해도 무엇도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에서야

고작 한 달 반짜리 보작 경험으로 뭐 그리 큰 실패를 맛봤다고

칩거를 하고 일용직 알바를 나가면서

스스로를 갉아먹었는지

누가 보면 코웃음 칠 일이었는데.


비난하기엔 그때의 나는 매일 온몸으로 울고 있었어.....

떨고 있었고 앓고 있었어.

허 참...


밤새 김포에서 용인에서

냉동창고를 헤매다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면 오후 늦도록 잠에 취하고

일어나면 침대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안개 낀 뇌는 유튜브에나 절여져 가고.


그런 생활을 6개월 째 반복했을 즘

그날도 일어나서 뇌에 안개가 잔뜩 끼어있는 기분이었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