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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생이 Nov 12. 2024

사람의 몸도 생각도 근력이 있어야 해

어느 김봉진 덕후의 기록 1화 

헬스장에서 PT 상담을 받으면 체성분 검사부터 한다. '발톱 미리 깎아둘걸...' 민망하게 양말을 벗고 맨발로 인바디 기계에 올라선다. 1분 후, 트레이너의 손가락이 '골격근량'으로 향한다. 


"보세요. 회원님 근육이 매우 적어요. 반면 체지방량은..." 


체지방율이 높고 골격근량이 적으면 기초대사량이 낮아진다. 기초대사량의 정의부터 살펴볼까? 


생물체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의 양.
주로 체온 유지, 심장 박동, 호흡 운동, 근육의 긴장 따위에 쓰는 에너지.
기초 대사량은 30 대경에 쇠퇴하기 시작하는데, 그것과 동반하여 체력도 저하하기 시작한다.

《네이버 국어사전》


기초대사량이 높으면, 신진대사에 필요한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어 활력이 높아진다. 낮으면 남들과 같은 음식을 먹어도 소비되지 않고 지방으로 저장된다. 피로감이 쉽게 찾아오고,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느낌도 받게 된다. 내 기초대사량은 10년 간 1,200kcal 수준이었다. 명색이 워커홀릭인데 에너지가 부족하니 매일 에너지 드링크를 달고 살았다. 


이런 일상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지만, 위기의 순간이 문제다. 인간의 뇌는 생존에 위협을 받으면 '이성'보다 '감성'에 의존한다고 한다. 심각한 문제에 맞닿으면 상황판단력과 의사결정력이 현저히 낮아졌다. 몸에 근육이 부족할 뿐이었는데, 선택의 질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몸과 생각의 기초대사량을 높이면
의사결정의 질도 높아진다. 


김봉진 의장은 생각에도 근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디자이너 10년 차. 그는 호기롭게 사업을 시작했지만 실패했다. 

 

실패의 늪에서 그를 건져준 것은 바로, 책이었다. 


제가 삼십 대 중반쯤이었는데, 그때 아내와 둘이 앉아서 고민했어요.

우리가 뭘 잘못했을까. 크게 잘못한 것도 없고,
디자인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살았는데, 성공까지 바라지도 않았지만 잘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어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나의 잘못된 습관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어요.
실패한 이유가 나에게 있을 테니, 잘된 사람들의 습관을 따라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잘된 사람들을 보니, 일단 꾸준함이 있었고요. 
그리고 다들 책을 많이 읽는다는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책을 읽어서 다 잘된 건 아니겠지만 잘된 사람들은 일단 책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그런 나도 책을 읽어보자.' 

책을 읽으면 잘 살 수 있느냐는 질문에 저는 이렇게 답해드리고 싶어요. 
정해진 운명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요. 

우리의 삶은 수많은 크고 작은 결정들에 의해 만들어지는데요. 
이때 '생각의 근육'을 키워두면 조금 더 좋은 결정을 할 수 있겠죠.

《김봉진, 책 잘 읽는 방법 (2018)》


아내에게 투자(?)를 받은 그는 독서를 일상의 습관으로 장착했다. 읽은 책을 의도적으로 SNS에 올리기 시작했고, 몇 년간 꾸준히 올리니 '다독가'라는 이미지도 생겼다. 이렇게 책으로 쌓은 근육은 그가 인생의 해답이 필요할 때마다 유용한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인생이 항해라면, 평탄한 바다에는 나침반이 없어도 된다. 그러나 바다가 그렇지 않은 곳인 게 문제다. 예기치 못한 별별 일들이 생기니 나침반이 필히 중요하다.  


10년 사회생활을 복기하며 느낀 것은, 내 능력 때문에 잘 된 게 없다는 거다. 능력은 기본이지만, 결국 운이 따라줘야 한다. 최선을 다해도 막을 수 없는 불행이 오기도 한다. 특히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스스로 옳다고 믿었던 <진리>가 현실에 강하게 맞을 때였다. 


나의 나침반은 고장 난 상태로 항해하고 있었다. 



생각헬스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는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여러 권 읽는 방법을 추천했다. 어느 정도 자기의 식견이 생긴다고 한다. 검색해 보니,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3권 이상 읽으면 해당 주제에 대해 어느 정도 식견이 생겨요. 

그래서 한 가지 주제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사요.

<논어>에 관한 책만 열몇 권을 샀고, <한비자>를 다룬 책도 그만큼 있어요.
 
<군주론>에 관한 책도 10권 넘고요.
다양한 저자와 시각, 편집, 레이아웃에 따라 다른 점이 눈에 띄어요.
편집만 달라져도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우리가 고전이라 하면 기존의 두껍게 내는 책을 떠올리곤 하는데, 두께에서 압박감이 오는 것이거든요.
 
서두에 말했듯이 책을 읽는 건 글자를 읽는 게 아니라 저자의 생각을 읽는 것인데,
저자의 생각은 비단 책 안에만 담겨 있는 게 아니잖아요. 

《김봉진, 책 잘 읽는 방법 (2018)》


내가 판단력이 부족한 주제를 선정하고, 김봉진 님이 추천해 준 책을 포함, 읽고 싶은 책을 리스트업 했다. 

이야... 엄청났다. 



"인간의 본성은 선할까, 악할까?" 


회사를 다니면서, 특히 중간관리자 역할을 하면서 혼란스러웠다. 사람을 선하다는 전제로 대해야 할지, 악하다는 전제로 대해야 할지 판단이 어려웠다. 어떤 이는 지극히 이기적으로 굴었고 어떤 이는 애정을 갈구했다. 진심을 담아도 문제, 담지 않아도 문제였다. 


성선설을 이해하기 위해 공자의 <논어>를, 성악설로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을 펴 들었다. 둘 다 예전부터 읽고 싶었지만 매번 장벽에 부딪혔었다. 솔직히 도통 뭐라카는지 이해가 잘 안 갔다. 


김봉진 의장은 이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했다. 저자의 관점을 아는 게 중요하니,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읽을 것을 추천했다. 만화책도 좋고, 영상도 좋다. 


<논어>는 그가 추천한 <논어의 말>을 구입해서 읽었고, <군주론>은 유튜브 영상들을 시청하고 읽었다. 초반 장벽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군주들이 주인공인데, 체사레 어쩌고 저쩌고 이름이 너무 길어서 외우기도 힘들고 몰입이 힘들었다...)  


결과는? 놀랍게도, 정말 술술 읽혔다. 



공자쌤 후기 


'초역 : 논어의 말'은 언제든 꺼내서 볼 수 있는 잠언집 형태로 되어있다. 공자쌤의 말에 나의 의견을 기록하며 읽었다. (ㅇ 동의 / X 비동의 / ? 잘 모르겠음) 



수능 이후로 공자쌤을 이렇게 파본건 처음인데, 지난 세월 동안 꽤 많이 "유교사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음"을 느꼈다. 이 말이 공자 꺼(?)였어? 저작권이 공자쌤에게 있는 말들이 꽤 많았다. 


나는 그 말들이 정답이고, 내 인생에 무조건 이로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이립을 지난 나이에 보니 그렇지만도 않았다. 김봉진 의장이 관점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논어>, <한비자>, <군주론>, <자유론>, <자본론>을 의도적으로 돌아가며 읽는 이유가 있었다. 



마키아밸리쌤 후기 


<군주론>의 초반 장벽에 부딪히신 분들은 다음 3개 영상을 추천한다. 군주들의 캐릭터와 마키아밸리의 해석을 기가 막히게 설명해 준다. 감사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https://youtu.be/ZBcbN0VXsco?feature=shared

https://youtu.be/s7Yqb56VA40?feature=shared

https://youtu.be/6gtnfzm5t7I?feature=shared


<군주론>은 1장부터 25장까지 밑줄 친 구절이 더 많을 정도로... 중고책으로 팔 수 없을 정도로 쳐가면서 읽었다. 


내가 이해한 <군주론>의 핵심은 "인간은 나쁜 놈들이니 막 해도 돼요."가 아니다. 


'통치'와 '윤리'는 다른 문제라는 것. 


<군주론>은 오로지 '통치, 즉 국가 생존'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의 '견해'가 아니라 '실제 사례'로 말하는 책이었다. 

군주는 좋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도 증오를 받을 수 있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잘못 알고 있었다." 


인간의 본성(선악)과 리더십은 관계가 있는 걸까?   




나는 <진리> 집착자였다. 진리(眞理), 영어로는 truth. 현실이나 사실에 분명하게 맞아떨어지는 것, 또는 보편적·불변적으로 알맞은 것을 의미한다. 김봉진, 공자, 마키아밸리 세 분은 서로 나이차이(?)가 좀 나지만... 그들의 생각이 맞닿은 교집합이 하나 있다. 


자신이 과거에 한 생각과 의견이
여전히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일관성 있어 보이지만,
반대로 지적인 면으로는 무척 게으른 사람이에요.

세상을 한쪽의 시각으로만 치우쳐서 보려 하고,
세상의 다양한 견해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려하지 않는 것이죠.

도끼가 필요해요. 스스로 깨부술 수 있는 도끼.

《김봉진, 책 잘 읽는 방법 (2018)》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어설픈 기억이나 엿들은 풍월로 다른 이에게 이야기를 전하다 보면 
'나는 이 일에 대해 잘 알고 있다'라고 착각하게 된다. 
확실히 알고 있는 것만 '안다'라고 자각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모른다'라고 인정하라. 

이와 같이 깨어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다. 

《공자》


어떻게 사느냐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의 차이는 너무나 크다.
따라서 [실제로] 행해지는 것을 버리고, 행해져야만 하는 [당위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을 보전하기에 앞서 파멸을 마주하게 된다. 

《마키아밸리》


내가 진심으로 "알았다"라고 생각한 <진리>도, 위에 쓴 생각들도, 현실을 살아가며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 그것이야 말로 불변의 진리일지도 모른다. <논어>와 <군주론>에 대한 "나의 기록"을 의도적으로 "번복"하기로 했다. 내 생각을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고치고... 거대한 결정을 들어 올리는 근육이 생길 때까지. 


김봉진 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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