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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빈 Feb 02. 2020

정신을 차려 보니 우리의 연애가 끝나 있었다

TMI 아내의 스페인&포르투갈 신혼여행 일기 #1




마침내 결혼식이 끝났다. 모두가 떠난 뷔페에 남아 회 한 접시를 입에 털어 넣고 신혼집으로 돌아와 헐레벌떡 신혼여행 짐을 쌌다. 결혼 준비를 하는 몇 달 동안 쉬지 않고 이날 아니, 이 여행을 향해 달린 것 같은데 비행기가 뜨기 몇 시간 전에 급하게 싸는 짐이라니. 그렇게 우리는 가진 옷과 몇 가지 짐을 캐리어에 쓸어 담고 후다닥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뭔가 잊은 것 같이 찜찜하다는 내 말에 L군은 프로 여행러처럼 쿨하게 응했다.


“여권이랑 신용카드만 확인해.”


인천 공항까지 가는 렌터카에 올라타서도 우리는 한참 말이 없었다. 주례 선생님이 읊어준 성혼선언문 한 번에 길고 길었던 9년 간의 연애가 끝이 났다니. 사귀자는 말을 할 때도 손발이 오글거려 꺼내지 않았던 우리 오늘부터 1일이야를 말해줘야 하나?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사이 L군이 입을 열었다.


“우리 오늘 뭐했지?”

“그러게.”

“별거 아니었네.”

“그러게. 우리 진짜 결혼했네.”


잠시 혼이 나갔던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지었다. 나는 머릿속에서 오늘의 필름을 돌려보느라 본의 아니게 멍을 때렸고, L군은 그런 내 손에 들린 봉지를 툭툭 쳤다. 나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오랜 여행으로 귤이 다 썩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집을 나오며 귤 봉지를 챙겼다. 나란히 앉아 귤을 까먹으며 결혼식 중간중간 잘려나간 필름들을 서로의 기억으로 오려 붙였다.


엄마가 고이 모셔놨던 캐리어. 짐을 찾을 때 낯선 새 캐리어를 못 찾을까 봐 체크인 전에 급하게 한 컷 찍어뒀다. 이 사진이 공항 사진의 전부라니...!


항공사 체크인을 마치자마자 어제 급하게 환전한 돈을 찾았다. 스마트폰 앱으로 간편하게 환전 신청이 가능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각자  80  정도 환전한 유로를 들고 여행을 계획하며 가장 먼저 구입해둔 유럽 유심 찾았다.  근심과 걱정이 앞서는 무늬만 프로 여행러인 우리 둘은 프린트할 PDF 파일이 잔뜩  USB 들고  곳을 잃었다.  10시가 넘자 공항  프린트를   있는 곳이 모두 문을 닫았다. 에라 모르겠다. 지금은 2019년이고 스마트폰으로 예약 내역을 보여주는 일이 가능하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설상가상. 늦은 시각이라 1, 2번 게이트가 닫혀 평소보다 몇 배 이상 긴 줄을 서야 한단다. 우리는 왜 매번 늦을까. 매사가 촉박할까. 어젯밤 출력할 PDF를 저장하기 위해 숙박 예약 사이트에 들어갔다 바르셀로나 숙소 결제가 보류됐다는 알람을 확인했다. 스페인에서의 첫 숙소였다. 이게 뭐지, 급하게 검색을 했지만 수많은 글 중 그 어떤 곳에서도 해결책을 내어주지 않았다.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피로연장에 있던 스페인어 전공 친구를 붙잡아 해결책을 물었다. 친구는 곧바로 바르셀로나 숙소에 전화했고 한 통의 메일로 모든 상황을 끝냈다. 그리고는 도착해서 문제가 생기면 보이스톡을 걸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진작할 걸.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L군이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입국 수속을 마친 후 면세구역에서 24시간 프린트가 가능한 곳을 포스팅한 구세주 같은 블로그를 들이밀었다. 아, 이 남자가 내 멘탈관리사라는 사실을 잠깐 잊고 있었다. 9년 연애의 힘은 연애가 끝난 후에 더 큰 힘을 발휘했다. 짧은 찰나에 이게 결혼 선배들이 말하는 안정인가, 싶었다.



밤 11시 5분, 경유지인 두바이로 향하는 인천발 에미레이트 항공 보딩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일찌감치 비행기에 올라 자리를 잡았다. 승무원들이 보딩을 마감하고 이륙 준비를 하는 약 45분 남짓한 시간 동안 우리는 부모님과 결혼식에 와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남겼다. 결혼식이 끝난 후로 줄곧 울리던 카카오톡 속에는 둘이 머리를 맞대고 얘기해도 좀처럼 기억나지 않던 결혼식의 순간순간들이 가득했다.


이제 막 우리의 결혼 생활이,

첫 유럽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사진 찍는 부부의 우당탕탕

스페인 & 포르투갈 8박 10일 신혼여행



✓ 인천 공항까지 가는 렌터카




: 결혼식이 끝나고 긴장이 풀리자 온몸이 축 늘어졌다. 몸은 공항버스를 타러 갈 힘이 없을 정도로 피곤하고, 차를 열흘이나 장기주차해놓을 수 없다고 판단한 L군은 예정에 없던 렌터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커다란 캐리어 두 개와 사람 두 명이 타고 갈 렌터카를 타기 한 시간 전에 빌려야 했고, L군은 종종 애용하던 그린카와 쏘카를 뒤적거렸다.


L군은 그린카에서 집 근처에 있는 신형 SUV 셀토스를 들이밀었다. 인천공항 내 정해진 주차 구역에 차를 대놓고 스페인으로 떠나면 되는 편도 시스템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차 덕후이자 운전 덕후인 L군이 그 차를 운전해보고 싶어 눈이 반짝거린다는 것쯤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실제로 이런 편도 시스템을 경험해 보니 가격적인 부담만 아니면 일주일 이상 장기 여행자에겐 추천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성비로 따지면 공항버스만 한 것이 없지만!




유럽 유심



: 카메라와 데이터 없이는 여행을 떠나지 않는 우리. 항공권을 예약하자마자 숙소보다 빨리 유럽 유심에 대해 알아봤다. 한국에는 카카오톡과 보이스톡이 있으므로 오로지 열흘간 사용할 데이터를 충분히 제공해주는지 여부만 놓고 비교했다. 또 스페인, 포르투갈 2개국을 갈 예정이기 때문에 두 국가 모두에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점도 중요했다.


우리 선택은 유럽 55개국에서 사용 가능한 말톡! 12GB라고 쓰여 있지만 영국을 제외한 유럽 54개국에서 사용할 경우 9GB만 사용 가능하다. 우리는 최소한의 것만 결정하고 여행을 떠나는 스타일이라 9GB로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L군은 한국에서 한 달에 약 80-90GB를 소비하는 데이터계의 소비 대마왕이기 때문에 구매 직전까지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비행시간을 제외하고 우리가 유럽에 머문 약 8일 동안 데이터를 사용하고도 데이터가 남았다. 매일 밤 숙소에서 다음 날 일정을 찾고 티켓을 구매하고, 여행하는 시간에는 어디 이동만 하려고 하면 구글 지도를 켰는데도 말이다. 물론 여행 기간 동안 영상을 플레이하는 일을 줄인 데이터 대마왕의 활약이 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 인천 공항 제1 터미널  24시간 프린트

· AM 5:30-PM 10:00 출발층 3층 C와 D 카운터 사이 인포데스크

· 24시간 운영 면세 탑승 구역 터미널동 25번, 29번 인포데스크


: 밤 10시 이전에 출발하는 비행기만 타봤던 터라 늘 프린트는 출발층 3층 C와 D 카운터 사이에 있는 인포데스크에서 해왔다. 알고 보니 이곳은 새벽 5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만 운영한다고 한다. 체크인까지 마치고 나니 시간은 10시를 넘겼고, 이곳이 문을 닫았다. 다행히 입국 수속을 마친 뒤 면세 구역에서는 24시간 프린트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제1 터미널 기준 터미널동 25번, 29번 인포데스크에서 사람이 없어도 컴퓨터에 USB를 꽂아 프린트를 할 수 있다. 만약 프린트할 파일을 내려받기했다면 정보를 반드시 지우자!




Written, Photographed by Jimbeeny.

2019년 11월 3-4일의 기록.

CAMERA : FUJIFILM X-Pro 3

LENS : XF 16mm F2.8 R WR

FILMSIMULATION : CLASSIC N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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