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온 길을 뒤돌아봐야 앞으로 갈 힘이 생긴다
장남이자 가장으로 살았던 아버지는 35세가 된 지 4개월 만에 또 다른 가장이 됐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평생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았던 그는 7살 배기 딸을 데리고 동네 저수지를 찾는 일을 가장 좋아했다. IMF 이후 방에 성벽을 쌓고 마음을 닫았던 그가 유일하게 밖으로 나오는 시간. 낡아빠진 낚싯대를 동네 저수지에 드리우는 날이면 그의 한숨은 더욱 짙어졌다. 입질이 오지 않는 날이 많았고 주위로 타다만 담배가 수북이 쌓여갔다. 정처 없이, 기약 없이 시간은 흐르는데 그의 삶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 옆에는 끌어안은 두 다리 사이로 졸음이 가득한 얼굴을 묻은 채 시간을 보내는 여자 아이가 있었다. 괜스레 돌멩이를 저수지에 던져보기도 하고 나뭇가지로 녹조가 낀 저수지 물을 휘저어 보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문득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 몸보다 큰 물고기가 딸려와 저수지를 통째로 삼키는가 하면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인어가 자랑스레 꼬리를 팔딱거리기도 했다. 그 상상의 끝에는 항상 드넓은 아버지의 등판이 있었다. 괴물이나 인어가 찾아와도 곧게 선 채 좀처럼 말을 걸 틈을 주지 않는 아버지의 단단한 등판.
25살이 되던 해 여자 아이 앞에는 '취준생'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꼬리표를 신입 사원으로 겨우 바꿔 달았을 때 아버지는 정년을 맞았다. 그녀는 아버지가 비운 자리에 앉아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딸에게 자리를 내어준 아버지의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적적한 시간에 홀로 저수지를 찾던 아버지는 낡은 낚싯대 마저 명을 다하자 산으로 목적지를 바꿨다. 흐르는 물 대신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 산에 깊은 한숨을 묻었다.
아버지와 딸은 함께 인왕산을 찾았다. 아침 일찍 나서 오후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던 높디높은 아버지의 산들과 조금 다른, 저질 체력 딸을 위한 산. 인왕산은 낮은 산의 기준인 500m에도 미치지 못하는 338m로 등산이라 하기도 민망한 산이다. 때문에 무리 지어 다니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등산객 대신 가끔 마주치는 가벼운 차림의 주민과 눈인사를 나누는 일이 많은 곳이다.
사실 인왕산에 오르는 길은 무궁무진하다. 사직동, 청운동, 옥인동, 부암동 등 10여 곳이 산행의 기점이 된다. 실제로 인왕산을 걷다 보면 풀숲 사이로 난 계단에서 사람이 불쑥 나타나거나, 내려가는 길목으로 올라오는 사람과 대면하는 일이 허다하다. 정상을 기준으로 사방에 뻗어 있는 능선은 저마다 다른 초록색을 갖고 있어 어디로 오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왕산을 만날 수 있다. 산의 시작점과 끝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은 언제든 저마다의 시작을 준비하라는 자연의 작은 배려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종로도서관을 지나 인왕산 초입까지 걷는 동안 아버지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바람결에 풀잎들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침묵에게 내어준 빈 공간을 채웠다. 황학정에 다다라서야 아버지는 입을 뗐다.
힘들지 않아?
늘 그랬다. 언제부턴가 침묵을 못 이겨 먼저 말을 꺼내는 쪽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어려서부터 세네 번은 물어야 한 번 답을 들을까 말까였다. 기다리다 지친 어린 딸은 칭얼대기 일쑤였고, 아버지는 그런 순간에도 딸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커가면서 답이 없는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묻는 일이 어색해졌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은 아버지의 답을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이 버거워 차라리 같이 입을 닫기로 했다. 그렇게 아버지를 닮아 말수가 적은 딸이 됐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 숨을 한 번 들이켰다. 아버지는 네 걸음 정도 앞서 걷다가 딸이 뒤쳐지는가 싶으면 멈춰서 기다리길 반복했다. 커피를 들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침묵의 공간 사이로 수다를 떨며 지나갔다. 이때다 싶어 챙겨 온 물을 아버지에게 건넸다. 아버지는 물병을 받아 들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물병이 오가는 그 순간까지도 우린 말이 없었다. 침묵을 친구 삼아 아버지의 등판만 보며 따라가다 하마터면 인왕산 자락길로 빠질 뻔했다. 호랑이 동상 왼편으로 빠지는 길에 서서 산책하는 사람들을 따라 저만치 멀어진 아버지를 불러 세웠다.
황학정 끝에서 직진하면 가벼운 산책에 좋은 자락길이 나온다. 황학정 끝에 있는 호랑이 동상을 기점으로 자락길 반대편엔 인왕산 성곽길로 향하는 철문이 있다. 철문을 지나면 나오는 길 끝에 놓인 작은 계단이 남대문에서부터 이어지는 성곽길의 또 다른 입구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는 한양 도성 외곽길은 오른쪽으로 가는 성곽길과 달리 성곽의 안팎을 모두 볼 수 있는 길이다. 나무가 울창한 숲을 걸어 중간에 성곽길과 이어지는 코스로 담쟁이넝쿨이 성벽과 어우러져 푸르름을 더했다. 왼편으로 선바위, 모자바위 등 특이한 형태의 암석과 암벽이 기나긴 침묵을 깰 이야깃거리가 돼 주기도 했다.
바위산인 인왕산은 정상에 가까울수록 험준하다. 화강암 덩어리로 이루어져 경사가 급한 곳은 자연 암반이 성벽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모래에 몇 번 발이 미끄러졌다. 덕분에 산을 오르는 내내 발목에 힘을 주고 걸어야 했다. 아버지는 한참을 뒤쳐진 딸에게 물통을 건네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조깅화를 신고 오면 어떡하냐.
뒤돌아 걷는 아버지를 따라 아득바득 산을 올랐다. 한참만에 한다는 소리가 고작 잔소리라니. 조깅화로 바위산에 올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발목에 더 힘이 들어갔다. 스물다섯의 딸은 환갑을 앞둔 아버지 앞에서 아직도 사춘기 어린애 행세를 했다. 한참을 앞서가던 아버지가 정상을 코 앞에 두고 걸음을 멈췄다. 아버지 뒤로 펼쳐진 정상에 오르는 길을 보고 좌절한 발목이 한 번 휘청거렸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모래 때문에 미끄러우면서 가파르기까지 한 성곽길,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철계단, 돌을 깎아 만든 돌계단까지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선택지 앞에 선 아버지는 어디로 갈 거냐고 묻는 듯 손을 내밀었다. 고민하는 사이 기다리다 못한 아버지는 성곽길로 걸음을 옮겼다. 성곽길 마지막 구간에는 밧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쳐 메고 밧줄에 매달려 낑낑거리자 아버지가 웃음을 터트렸다.
산은 온 길을 뒤돌아봐야 앞으로 갈 힘이 생긴다. 뒤 좀 봐라.
아버지 말을 듣고 뒤를 돌았을 때 깨달았다. 아버지는 웃고 있었고 나는 진짜 사나이에 한 장면을 찍고 있었다. 올라온 길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뒤는 앞만 보고 걸을 때는 상상할 수 없었을 정도로 높고 또 높았다. 아버지와 농담을 주고받아본 적이 없는 딸은 그대로 속아 넘어갔다. 다리는 후들거렸고 팔힘으로 간신히 정상에 올랐다. 산행 선배의 혹독한 신고식을 끝으로 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물을 머금은 감격스러운 상봉이었다.
인왕산 정상에 오르면 탁 트인 동쪽으로 청와대를 둘러싸고 있는 빌딩 숲이 보인다. 쉬지 않고 올랐더니 경치를 감상하는 사이 작은 바람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서울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싶었지만 청와대를 경호하기 위한 군사시설 때문에 구간마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방향이 정해져 있었다. 정상에서만 볼 수 있는 서울의 탁 트인 전경을 언제든 다시 보러 오라는 뜻으로 여기고 아버지와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인왕산 정상에 앉아서도 아버지와 딸은 말이 없었다. 각자 생각에 잠겨 서로를 들여다볼 겨를이 없다는 듯 애꿎은 손을 매만지며 누가 먼저 말을 꺼내나 간을 봤다. 딸은 끝까지 쩨쩨하게 굴었다. 이번에도 먼저 말을 꺼낸 쪽은 아버지였다.
일은 안 힘드냐.
아버지의 한 마디에 담긴 근심과 걱정, 그리고 그 한 마디를 토해내기까지 걸린 시간 동안의 인내. 아버지는 어쩌면 딸이 먼저 말을 꺼내기까지 참고 기다렸을지 모른다. 시시콜콜 떠들어대기 바쁘던 딸이 사춘기를 지나 입을 닫게 되면서 아버지는 기나긴 침묵의 시간을 얼마나 참고 기다렸을까. 그리고 서툴게 내뱉었던 말에 돌아오는 시큰둥한 반응에 얼마나 많이 실망하고 상처를 받았을까. 딸은 최대한 다정하게 되물었다.
아버지는요?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알고 있다. 그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엄마는 갱년기가 찾아오면서 여자 인생이 끝났다고 하던데, 아버지는 정년을 맞으면서 인생이 끝난 듯 더욱더 단단한 벽을 쌓고 동굴로 숨어들었다. 이따금 딸이 데이트 신청을 하면 묵묵히 따라나설 뿐, 하루에 한 끼로 고픈 배를 달래며 방문을 걸어 잠갔다. 다시 기나긴 침묵이 둘 사이를 파고들었고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무뚝뚝한 딸은 불편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내려오는 길은 옛 성곽길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부암동 방향을 택했다. 다양한 바위와 탁 트인 전경 덕에 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사직동 일대와는 달리 숲이 오른편을 가리고 있어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다. 군사 시설 때문에 성곽이 외곽으로 빠졌다 다시 안으로 이어지는 코스로 길이 왼편으로 숨어 있는 구간도 있었다. 일자로 난 길을 따라갔던 사직동과는 달리 길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어색해진 공기를 무마하기 위해 딸은 달라진 전경을 핑계 삼아 두서없는 말을 건넸다. 아버지도 같은 마음이었다는 듯 어려서부터 귀에 이골이 나게 들었던 군대 이야기를 비장하게 꺼내 들었다.
사직동 일대와 다른 점은 또 있었다. 부암동 쪽 성곽을 자세히 보면 성돌에 거무스름한 이끼가 껴있고, 중간중간 작은 돌로 메워진 구간도 많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베어든 것이다. 성곽을 이루고 있는 돌이 새 것이나 다름없던 사직동과 정반대의 인상을 줬다. 마치 이제 막 오르막 앞에 선 딸과 내리막에서 그런 딸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모습이 서로 다르듯. 사직동과 부암동 일대는 정상을 경계선 삼아 전혀 다른 시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올라갈 때와 달리 내려오는 길은 한층 수월했다. 성곽길 끝을 알리는 계단은 커피를 들고 산책하던 사람들이 향하던 자락길의 끝과 맞닿아 있다. 그 길은 다시 윤동주 시인의 언덕으로 이어진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지나 부암동의 시작을 알리는 윤동주 문학관에서 청운동이 있는 오른쪽으로 길을 틀었다.
등산을 간다던 아버지는 매일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고 했다. 오래된 친구와 예전 직장에서 만난 지인들에게 기약 없는 연락을 약속받고 돌아오는 길, 아버지는 산으로 향했다. 그곳에 혼자만의 슬픔을 묻었다. 더 이상 만날 지인이 없는 날이면 아예 아침부터 산을 찾는 날도 있었노라고 조심스레 고백했다. 기다림에 익숙한 아버지도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 장사 없는 세월 앞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 뒤를 따라 걸었다. 산 같이 높았던 아버지의 등판은 작은 우산에도 가려질 정도로 야위여 있었다. 몸 바쳐 일한 곳에 자신을 대신할 젊은 사람이 들어온 뒤 아버지는 자연스레 자신의 자리를 잃었다. 평생 한 일만 해왔던 아버지는 환갑이 다 돼서야 인생에 또 다른 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버지가 조금 더 일찍 다른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신이 서있는 산행의 시작점이 누군가에게는 끝 지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는 너무 늦게 알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취준생의 마음으로 새로운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아버지가 잡아준 손으로 정상을 향해 올라가던 딸은 내리막에 선 아버지의 손을 놓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새로운 길에 들어서 허덕이고 있는 이 순간에도 종종 아버지와 침묵으로 일관하는 여행길에 오른다.
2015년 5월 23일
Written, Photographed by Jimbeeny
TRIP MATE ;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