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감정의 바이오리듬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기사를 끝으로 마지막 퇴근을 했다. 마음속에 일렁이는 글에 대한 증오를 내려놓고 푹신한 침대를 선물하고 싶었다. 글 쓰는 직업이 아니면 싫다던 나는 어느 순간 글 쓰는 일만 아니면 아무래도 좋아,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을 써야 하는 괴리감이나 사실이 아닌 상황을 눈 감아야 하는 자괴감 따위의 이유였으면 하고 기도한 적도 많았다.
무엇을 써야 할까, 어떻게 써야 할까.
그렇게 두 달을 쓰지 못했다.
바이오리듬 중 하나인 감성리듬은 28일을 주기로 교감신경계를 움직여 정서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감성리듬 주기가 두 바퀴를 지나도록 나는 여전히 매너리즘이라는 정서에 흠뻑 취해있었다. 친구들은 모두 슬럼프라고 명명해주었다.
도입부만 겨우 작성한 글이 쌓여갈수록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은 쌓여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떤 불신이었다. 당장 눈 앞에 출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함에서 오는 불신.
의외의 곳, 의외의 사람들에게서 헝클어진 실의 실마리를 찾았다. 지난 10월 말 LA 출사단에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즈음 나는 가장 냉랭한 여름을 보냈고, 그 끝에 가장 뜨거운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할 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가을은 기자와 작가 사이에 놓인 길고 긴 공백의 길을 걷는 시간이었다.
한 번의 강렬한 만남이 있었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 우리는 같은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진이라는 공통사 하나를 두고 모인 사람들의 캘리포니아 여행기. 그 막이 서서히 오르고 있었다.
인천에서 LA로 향하는 1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어바웃 타임>을 두 번이나 돌려봤다. 팀이 반짝이는 미래를 위해 떠났던 과거로의 여행을 종결짓고 오롯이 현재를 즐기게 될 때,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나 또한 미래를 바꾸기 위해 현재를 놓치고 있진 않은지, 그 현재를 위해 자꾸만 과거를 뒤돌아보고 있지 않은지. 시간 여행이 두 번이나 반복되는 동안 여름에서부터 이어진 냉랭한 가을의 시간들을 떠올렸다.
영화가 끝나고 호주에서 자주 듣던 남승호 노래를 들으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비행기로부터 시작되는 삶의 소소한 이벤트라 여겼던 모든 여행이, 어쩌면 미래에 추억할 반짝이는 과거를 위한 건 아니었을까.
다녀와서 무언 갈 남겨야 한다는 강박이 현재를 옥죄고 있는 건 아닐까.
그제야 주위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건너편에 앉은 할아버지는 영화에 흠뻑 취해있었고, 옆좌석 외국인은 컬러링북으로 기나긴 무료한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동시에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출사단 역시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날 감성 주기는 쳇바퀴에서 내려오고 싶다, 조용히 실토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꺼내 둔 노트북과 원고를 위한 자료들을 그대로 가방에 넣었다. 이번 여행만큼은 어딘가 얽매이는 강박을 내려두고 잔잔한 일상 그대로를 담아두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 모두의 드라마에 관한 기록. 잔잔하지만 영화 <어바웃 타임>보다 더 드라마틱한 7박 8일간의 이야기를 감성리듬이 제 자리를 찾은 지금에서야 꺼내려고 한다.
2016년 10월 23일에서 2016년 10월 23일로의 시간 여행 중 남긴 기록과 현재의 기억. 그 시간에 관하여.
Written, Photographed by Jimbeeny
Ours DRAMA in California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