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싱가포르항공 북더쿡 (BOOK THE COOK)
혼밥, 혼술이 대세인 시대. '혼'이라는 한 글자만으로도 내 외로움은 배가된다. 세상에서 가장 무기력한 일이 나 혼자만을 위한 밥상을 차리는 일이라 믿는다. 저녁 걱정이 싫은 날은 퇴근길에 시끌벅쩍한 패스트푸드점에 들르거나, 함께 끼니를 해결하고자 야근을 자처하기도 여러 번. 어쩌다 누군가 잘 차려준 식탁 앞에 함께 둘러앉아 있을 때면 으레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이래서, 혼밥이 싫어.
혼자 탄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을 때면 외로움은 증폭기를 달고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함께 앉아 먹는 밥이 이렇게 차가울 수 있나. 모두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메뉴에 숟가락을 얹는다. 와그작, 하는 소리와 함께 깨져버린 정적이 어쩐지 더 외롭다.
싱가포르항공 북더쿡 (BOOK THE COOK) 서비스는 따듯한 손길이 그대로 느껴지는 맞춤형 식탁이다.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기내식을 만드는 이들의 손은 분주하다. 싱가포르항공 기내식 서비스를 받다 보면 그들의 손으로부터 전해오는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싱가포르항공은 30,000피트 상공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을 목표로 북더쿡 서비스를 만들었다. 싱가포르항공 ICP(International Culinary Panel, 국제요리패널)에 소속된 8명의 셰프들은 저마다의 문화와 경험, 싱가포르항공이 운항하는 각 목적지에서 얻은 영감을 토대로 끊임없이 새로운 요리를 선보인다고 한다.
비행기 출발 24시간 전에 신청 가능한 북더쿡 서비스는 원래 퍼스트 클래스와 비즈니스 클래스만을 위한 서비스였다. LA로 향하기 전 싱가포르항공 프리미엄 이코노미 클래스에서도 주문이 가능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북더쿡 서비스를 신청했다.
북더쿡을 신청하면 기내식 서비스가 시작될 때마다 좌석에 스티커를 부착해주고 다른 사람보다 먼저 기내식을 제공해준다. 아쉽게도 기내에선 북더쿡 메뉴를 따로 주문할 수 없다. 알고 있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셈이다. 스티커를 부여받자마자 좌석 팔걸이 속에 숨겨진 선반을 꺼내놓고 잘 차려진 식탁을 기다렸다.
얼마 전 여행잡지 <더트래블러> 기내식 관련 특집 기사를 읽었다. 사람의 미각 활동은 3만 5000피트 상공에서 현저히 느려진다고 한다. 혀와 코 감각이 둔해지기 때문에 미각이 평소 1/3로 줄어든다고. 어쩐지 비행기만 타면 맛이 강한 오렌지 주스나 토마토 주스가 당기더라니.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기내식 특성상 카레, 탄두리 등 향이 강한 소스를 사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싱가포르항공 북더쿡 서비스는 높은 기압 조건에서 기내식 메뉴를 만들고 직접 시식한다. 실제 기압 시뮬레이션 캐빈으로 요리를 갖고 들어가 셰프가 몇 시간 동안 맛을 보고 풍미를 조절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미각이 둔해져도 입맛에 딱 맞는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따듯한 밥 한 끼와 함께 곁들일 수 있는 와인 역시 다르다. 와인 컨설턴트가 매년 1000여 종의 와인을 기내와 동일한 환경에서 시음하며 테스트를 거친다. 이렇게 엄선된 와인, 샴페인은 자신이 선택한 메뉴 혹은 비행기 고도에 맞춰 승무원에게 추천받을 수 있다.
인천에서 LA로 향할 때 선택지는 총 9개였다. 나만을 위한 첫 번째 식탁 메뉴는 Roast Chicken with BBQ Sauce. 바비큐 소스가 어우러진 구운 닭고기다.
돌아오는 비행기까지 세 번의 북더쿡 서비스를 더 받았다. Kimchi Fried Rice with Chicken Bulgogi, Mushroom Chicken, Beef Short Rib.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김치볶음밥. 인천에서 LA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마지막으로 먹은 기내식이었는데, 일주일을 보내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까지 생각나는 맛이었다. 반숙으로 올라간 계란은 서비스다.
2-3개로 통일된 기내식 메뉴에서 벗어나 기내 환경에 맞게 구성된 다양한 선택지 중 각자의 입맛에 맞는 한 끼를 선택할 수 있는 즐거움.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싱가포르항공 북더쿡 서비스 알아보러 가기
2016년 10월 23일에서 2016년 10월 23일로의 시간 여행.
Written, Photographed by Jimbee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