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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잘 Apr 09. 2024

49. 특별한 정미씨

버쓰데이

복희씨는 음력 2월 28일 시아버지 제사를 자정 넘어 지내고 하루 종일 일하다가 다음날 아침 여덟 시 무렵 산통이 왔다. 셋째딸을 낳은 복희씨는 앞이 캄캄하고 암담했다. 탯줄을 끊지않고 갓 태어난 정미를 이불 덮어 밀어놓았다. 아가 울음소리가 날때가 됐는데 아무 소리가 나지 않자 아주머니가 방으로 들어오셨다.


"이게 무슨짓이야"


아이를 뺏아서 탯줄을 자르자 아가가 숨넘어갈 듯 울었다. 내리 세 딸을 낳은 복희씨도 울었을까.


"무슨 죄로 지지바만 주루루 낳았을까"


누가 그랬다지.


"언나가 못듣는다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십니까"


복희씨 남편 원갑씨가 아주머니를 나무랐다고 한다.


순둥이 정미는 아가 있는둥 없는둥 순둥했다. 다만 배꼽이 참외배꼽이라서 동네아이들의 괴롭힘을 받았다.


돌이 지나지 않은 정미를 방에 뉘여놓고 복희씨가 밭일을 나가면 동네 아이들이 줄을 서서 차례로 정미 배꼽을 꾸욱 눌렀다. 잠시 후 배꼽이 쏙 빠지면 아이들은 재밌다고 순서대로 눌러댔다. 복희씨가 일을 하다가 아가가 잘 있나 보러오면 동네 아이들이 주루룩 내뺐다.


"이눔새끼들 애기한테 무슨짓이야!"


정미는 배꼽이 새빨개지고 버둥거리면서 색색거리고 있었다. 복희씨는 아가를 안고 젓을 먹였겠지. 그리고 쓰다듬어 주면서 달랬을거다.


나는 2월 큰금날 태어났다. 처음에는 큰금날이 무슨 날인지 몰랐다. 2월은 음력이 29일까지 있는 해가 4년에 한번 온다. 그런데 30일이 있는 날도 4년에 한번씩 돌아온다. 마지막날을 금날이라고 부르고 마지막의 마지막날인 30일을 큰금날이라고 한다.


엄마는 그랬다. 윤일에 태어난 아이는 손이 없고 좋다고 말씀하셨고, 진짜 내 생일이 없는 해에는 우리엄마가 음력 2월 마지막날 내 생일을 챙겨주셨다. 어릴적에는 할아버지 제사 다음날이 내 생일이어서 좋았다. 제사 음식을 만드시다가 부서진 두부나 튀김옷이 벗겨진 오징어 튀김을 나를 주셨다. 부서진 게 없으면 가끔 부서지지않은 동그랑땡을 주시기도 했다.


"엄마 저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오늘 니 생일이야?"


엄마는 딸 생일도 모른다면서 미안해하는 말투였다. 나는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진짜 괜찮다. 우리엄마가 우리 곁에 계신 것만으로도 선물이다. 엄마는 할아버지 제사를 안드리니까 내 생일도 모른다고 하셨다. 친정엄마는 몇 년전에 제사를 그만 지내신다. 친정아버지 제사 하나만 남기고 명절차례도 그만두었다.


엄마가 생일 축하하고 사랑하고 자랑스럽다고 말씀하셨다. 큰언니가 친정식구 단체톡에 생일축하를 남겼다. 다른 형제가 불편할까봐 '모두 감사해요. 토요일에 제주에서 만나요' 라고 톡을 마무리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어제 저녁에 미역국과 잡채를 준비한 남편이 아침상을 차렸다. 딸아이는 불고기가 맛있다고 했다. 짭쪼롬한 미역국을 좋아하는 딸아이 입맛에 미역국은 니맛도 내맛도 아이었을거다. 딸아이도 맛없는 거 말하지않고 그 중 맛있는 걸 인사하는 것 같다. 나도 그렇다. 우리가족 문화인 생일떡도 먹었다.


아침 아홉 시쯤 작은 언니가 출근했다면서 전화를 했다.


"생일축하합니다 생일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배정미 생일축하합니다."


 친정 가족톡에 답글 달지않고 아래층 카페로 출근하면 직접 노래를 불러주려고 했단다. 울컥.


"언니 나 눈물나"


"배정미, 생일 축하노래랑 결혼 축하 노래 딴따다딴 딴따다딴 노래 들으면 가끔 눈물나지 않니?"


그렇다. 요즘은 결혼식에서 딴따다딴 축하곡 대신 다른 음악이 나오는 걸 들었다. 작은 언니는 '오오 내사랑 목련화야' 이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고 한다. 나는 열 일곱살 때 공장 기숙사에서 기상음악으로 나왔던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났다. 이제 그 노래가 무엇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날 그 음악을 듣는다면 알아차릴 수 있을거 같긴하다. 김수희의 '너무합니다'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찔끔거리기도 했다.


생각지않은 사람들이 카톡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요즘은 음력 양력이 헷갈려서 생일이 아닌 경우도 종종 있어서 그런지 일단 생일 축하를 하고, 고맙다는 나의 답장을 보고나서 선물을 보내주었다. 정말 생각지못한 사람들의 달콤쌉싸름한 선물을 받았다. 사비나는 종류를 선택할 있는 영양제를 보내주었다.


남편이 휴무일이다. 점심을 먹고 벚꽃이 흩날리는 만석공원을 한바퀴 돌았다. 벚꽃이 눈처럼 날리고 사람들은 월요일이 어색하게 생각될만큼 많았다.

남편과 아침 점심 저녁을 먹었다. 오랜만에 카페에 갔고 나는 쑥라떼를 마셨다. 입술을 쪽쪽 빨아먹었다. 내가 그렇게 맛있는 음료를 먹은 적이 또 있었나? 프랑스 여행중에 마셨던 1유로짜리 에스프레소잔을 핧을뻔 했었지.


남편은 산책을 가면 "꽃 사줄까?" 를 자주한다. 오늘은 특별히 특별한 나의 생일이니까 노란 후리지아꽃을 선물 받았다. 제주여행에서 입을 흰색 반팔 티셔츠를 커플로 샀다.


배꼽을 기준으로 허리하향적으로 생각한다고 구박하던 남편이 내가 좋으면 뭐든지 다 하라고 한다. 시장에서 계획된 동선없이 왔다갔다 하는데 아무말 없이 까만 봉다리를 하나씩 든다. 나는 상향적으로 꿈을 꾸었다. 행복한 날들을.


남편이 몸통을 껴안으면서 생일 즐거웠냐고 물었고 나는 완벽한 하루였다고 말했다. 우리는 굿나잇 뽀뽀를 했다. 전우애가 느껴졌다.


'그대 그대가 원하는만큼 소유할 있으리. 그러나 소유함으로써 이제껏 삶을 완성한 사람은 없다. 삶은 오직 존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 -오쇼 라즈니쉬의 '배꼽' 중에서



어릴 적 내 별명은 '바래'였다. 아들을 바라는 별명이었지만 복희씨는 넷째도 딸을 낳았다. 여동생이 남동생을 봤다고 할머니가 좋아하셨다고 한다. 원갑씨는 딸 네 명을 키우면서 '지지바' '가시내' 라는 말을 한번도 하지않았다고 한다. 까까머리 나도 들은 적이 없다.



나는 중학생때 아버지께 지나듯 들은 말을 붙잡고 힘내면서 살았다.


"우리정미는 뭐든지 잘해"


오늘은 특별하게 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도는 것 같았다. 나는 특별한 날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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