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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미 Oct 04. 2019

외국 생활 첫날, 짐을 통째로 잃어버렸다

X 같은 일이 일어나지만 삶은 계속되니까요

뭔가 이상했다.


야심한 시각에 도착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공항. 수화물 컨베이어 벨트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내 짐이 보이지 않았다. 6개월간 교환학생으로 지내게 되면서 사용할 물건이 가득 담긴 이민용 가방이었다.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희망을 가지고 기다렸다. 하지만 컨베이어 벨트가 멈추고, 모두가 제 짐을 찾아 떠날 때까지 내 짐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때 손에서 땀이 난다는 걸 처음 느껴봤다. 생전 처음 방문한 나라에 그것도 이  늦은 시간에 나 혼자 덜렁 짐도 없이 남게 되다니... 나는 허둥지둥 공항 직원을 찾아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공항 직원은 아무래도 오스트리아에서 트랜싯을 하면서 짐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확신 없는 목소리로 짐을 찾으면 보내줄 테니 주소와 전화번호를 남기라고 말했다.


한 시간 전에 이 나라에 처음 도착한 나에게 주소와 전화번호가 있을리가. 어쩔 수 없이 앞으로 지낼 기숙사 주소를 쓰고 공항을 나왔다. 수중에는 돈 몇 푼과 여권뿐이었다. 외국 생활을 시작한 첫날부터 짐을 잃어버리게 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여차저차 트램을 타고 기숙사로 향했다. 트램을 타면서 창 밖으로 보이는 2월의  자그레브 시내는 내 심장을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넓은 대로변과 드문드문한 건물은 세기말을 연상시켰다.


갑자기 왜 미국도 아니고 동유럽으로 굳이 교환학생을 가려고 하냐고 말리던 주변 지인들의 목소리가 귀를 맴돌았다. 지금이야 크로아티아가 우리나라에서도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내가 교환학생을 간 2013년도에는 상당히 생소한 나라였다. 그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X 됐구나..'


우여곡절 끝에 기숙사에 도착하니 이미 새벽이었다.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벽면에는 큰 키에 파티걸로 보이는 금발의 화려한 여자 친구의 사진이 주렁주렁 걸려있었다. 저 친구가 내 룸메이트인 모양이다. 과연 잘 지낼 수 있을까? 짐은 과연 찾을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미지의 나라에서 내일 당장 갈아입을 옷도 없는 채로 잠들었다.


그래서 내 남은 6개월이 어땠냐고?


그 시간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기억중 하나가 되었다.


룸메이트인 Anna와 나는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 그녀 할머니의 여름 별장으로 휴가를 다녀오기도 했다. 아드리아 해의 작은 섬 '파그'에 위치한 바닷가 별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낮에는 보트를 타고 저녁에는 그녀의 사촌들과 함께 맛있는 저녁을 만들어 먹으며 환상적인 여름을 보냈다. 약간 흑역사이긴 하지만 친구들과 술에 취해 크로아티아 신인 여가수의 뮤직 비디오에 출현하기도 했다. 별이 유난히도 반짝이는 자그레브의 한 노천카페에 앉아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우리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거야?”


아 물론 짐도 찾았다.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놀랍게도 공항에서 연락이 왔고 내 짐들을 무사히 기숙사 앞으로 배달되었다.


X 같은 일은 일어나지만 인생은 계속된다.


정말이지 눈앞이 캄캄해지고, 나는 끝났구나 하는 상황들이 인생에서 몇 번 있었지만 돌아보면 신기하게도 어떻게든 해결되었다. 더불어 당시에는 똥 같았던 경험이었지만 되돌아보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경우도 있었다. 한 번은 6개월짜리 인턴 면접에서 낙방하고 침울했던 적도 있었다. 인턴 면접마저 떨어지는데 취업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뒤에 붙은 회사에서 인턴으로 2개월 일하면서 맡았던 업무 덕에 그와 연관된 좋은 회사에 단번에 취직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인턴 면접에서 낙방했던 그 회사는 인턴을 정규직 전환을 해주지 않고 '휴지'처럼 쓰고 버리는 회사로 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정말 눈앞이 캄캄했는데 돌이켜보면 오히려 면접에서 떨어지는 일이 나에게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 셈이다.


늦잠 자서 기차를 놓친 탓에 80유로나 더 주고 산 독일행 기차에서 정말 멋진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첫 남자 친구랑 헤어지고 세상이 무너진 듯 우울해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웬 찌질이를 만났었나 싶다.

우리는 당시의 경험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구분할 수 없다. 오직 시간 만이 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을 뿐.


요즘도 가끔 'X 됐구나' 싶은 상황이 찾아온다. 사람이 쉽게 죽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여전히 패닉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숨을 가다듬으며 생각한다. 이 힘든 시간도 어쨌든 지나갈 것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나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이는 불행을 가장한 축복일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나는 스스로 어떻게든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 힘든 기억도 3년 후 쯤에는 웃으면서 하나의 에피소드로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자그레브 공항에서 짐을 잃어버렸던 경험을 콘칩을 까먹으면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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