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세도 힘든 날이 있겠죠
어른이 되고 나서 뼈아픈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 중 하나는 '고통 없는 삶'이란 신기루요, 거짓 약속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에 그런 건 없다. 인생에 다음 단계로 나아가면 그에 상응하는 색다른 고통이 우리를 기다릴 뿐이다. 장담컨데 우리 회사 사장님이랑 비욘세도 삶이 버거운 날이 꽤나 많이 있을 거다.
나에게 고등학교 시절은 악몽과도 같았다. 저녁 11시까지 지속되는 야자와 책상에 높게 쌓인 수많은 참고서들. 선생님들은 대학에만 진학하면 이 고통에서 해방되어 곧 파라다이스에 도착할 거라고 나에게 약을 팔았다. 어쩌면 고통을 잊기 위해 마취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대학생 때는 근사한 직장에 취직을 해서 내 밥벌이를 하면 뭐가 되든 괜찮을 것 같았다. 신문에는 매번 청년실업률이 갱신되었다는 기사가 떴고, 나는 밤새 공부해 완벽한 학점을 유지하면서 이력서에 한 줄 쓰기 위해 별의별 대외활동과 인턴을 했다.
그런데 막상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나니 지속적인 자기 계발이 없으면 향후 5년, 10년 후를 장담할 수 없겠다는 조바심에 또다시 고통스럽다. 그리고 아마, 10년 후에 자리를 잡아 뭐 지역 매니저쯤으로 승진한다고 해도 또 다른 고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요? 어떻게 즐겨요 아픈데!!
고통 없는 삶이란 거짓부렁이라는 걸 알게 됐을 정도로 꽤나 성숙해졌지만 그렇다고 비관주의자가 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대신 어떤 종류의 고통을 겪을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몇 달 전, 나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157cm의 키에 45kg. 태어나길 뼈대도 약하고 근육량도 평균을 가까스로 넘는 수준이었다. 그런 내가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한 이유는 피트니스 모델 같은 몸매를 가지기 위함도, 살을 빼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다만 건강한 정신이 깃들 강한 신체를 가지는 것이었다. 회사 생활 3년 차에 이르니 체력이 받쳐주지 않아 부쩍 짜증이 늘고 예민해지기 시작했고, 이를 개선해야 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내 의도에 따라 트레이너는 1시간을 무자비한 웨이트 트레이닝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40kg짜리 데드리프트를 하고 50kg짜리 스쾃를 했다. 누군가에게는 깃털 같은 몸무게 일지 모르겠지만 나 자신에게는 매번 한계에 부딪히는 경험이었다. 벤치프레스를 하다가 바를 놓쳐서 죽은 사람이 있다던데... 이러다 나도 죽는 거 아닐까? 근육을 키우기 위해 소위 말하는 '벌크업'도 시작했다. 운동이 끝나면 프로틴 파우더를 들이붓고 매일 저녁마다 고기 파티를 했다. 내 온몸은 근육통이 가실 날이 없었다. 삼 개월쯤 지나지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기 시작했다. 근육량도 1kg이 넘게 늘었고 거울을 보면 이두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동을 시작하기 전 매번 달고 살았던 허리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피할 수도 없고 사실 즐기기도 힘들다. 하지만 선택은 가능하다.
그때 나는 다짐했다. 나는 운동을 하지 않아서 아픈 몸과 체력이 부족해서 잠이 오는 고통을 택할 바에, 고강도 운동을 한 탓에 오는 근육통을 선택하겠다고. 이러든 저러든 '고통' 자체는 불가피하다. 다만 어떤 고통을 선택할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세상에는 고퀄리티의 고통과 저퀄리티의 고통이 있다. 고퀄리티의 고통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언젠가 보상을 주는 고통들이다. 운동, 공부, 나를 불편하게 하는 새로운 시도들이 이에 해당한다. 저퀄리티의 고통은 지금 당장은 고퀄리티의 고통보다는 덜 괴로울지 모르지만 지속적으로 행했을 때 당신의 삶을 제자리에서 머물게 하는 것들이다. 운동을 하지 않아서 오는 통증, 자존감 결하, 필요했던 공부를 하지 않아 나중에 후회하는 것, 편안한 곳에서만 머물러서 결국 도태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얻게 된 또 다른 깨달음은 고통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마지막 카운트를 가까스로 완성했을 때, 48시간 동안 지속되는 근육통이 자연스러울 때. 그때서야 근육은 성장한다. 회사 선배의 쓰디쓴 충고를 듣고 나를 개선하고자 노력했을 때 비로소 업무능력이 향상된다. 내가 쓴 날것의 글에 무자비한 피드백을 받았을 때 비로소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고통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에게 필수요소인 것이다.
고통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을 인정해버리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인생은 결코 쉬워지지 않는다. 다만 그 고통 속에서 한 발 나아가 강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뿐이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레벨 업 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