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지미 Mar 11. 2021

100%의 결혼상대를 찾는 아주 확실한 방법

해답은 스스로 결혼하고 싶은 이상형이 되는 것


누군가 말했다.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순간 내 인생은 백팔십도 변할 거라고. 그제야 나는 비로소 행복해질 것이고 진정한 장밋빛 인생이 시작될 거라고. 모든 로맨스 소설과 디즈니 영화는 그렇게 여성들을 조기 교육시켰다. 우리를 구원할 빛나는 은색 갑옷의 왕자님을 찾는게 해피 엔딩의 열쇠임을 상기시키며.


주말에 우연히 넷플릭스에 업데이트된 로맨스 영화를 봤다. 잘생기고 인기 많은 남자 주인공이 우연한 계기로 평범한 여성 주인공과 계약 연애를 하게 되고, 결국 여자 주인공의 매력에 빠져 진정한 사랑으로 거듭난다는 진부한 클리셰가 범벅된 영화였다.



팝콘을 씹는 내 눈이 가늘어진다. 예전 같으면 로맨스 뽕에 심취돼 달달한 사랑이 고파졌겠지만, 이제는 이런 종류의 영화가 유해물이라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불편하다. 달콤하지만 몸에는 좋지 않은 탄산음료 같은 느낌.



믿거나 말거나... 타이타닉의 잭과 로즈가 결혼한 평행우주를 그린 영화가 '레볼루셔너리 로드'라는 것이 후문.
로맨스 영화도 비현실적이라는 면에서 판타지 영화와 다름없다.

무엇보다 이런 영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남성을 그려놨다는 점에서 유죄다. 인기 많고, 잘생기고, 차가운 바람둥이처럼 보이지만 내면의 상처가 있는, 알고 보면 진국에 여성 주인공밖에 모르는, 유니콘처럼 실존하지 않는 남성. 그리고 그의 구원으로 행복해지는 여성. 이와 같은 로맨스 영화가 얼마나 많은 여성에게 말도 안 되는 환상을 심어줬는지, 지금 내 옆의 남자만큼은 다를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품게 했는지 모른다.


가끔 늦은 밤 당기는 맥도날드 햄버거처럼 로맨스 영화가 보고 싶은 날이 있을 것이다. 영화를 감상하기 전에 반드시 이런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한다. ‘이건 해리 포터에 버금가는 판타지이며, 이걸 진짜라고 여기는 것은 호그와트가 실존한다고 믿는 것과 똑같다’는 걸. 디즈니와 할리우드 영화에 그만 속을 때다.


Mengliu Di 님의 사진, 출처: Pexels


난쟁이들에게 무료 봉사하는 백설 공주, 왕자가 올 때까지 조신하게 기다리는 신데렐라 그리고 왕자를 위해 기어코 거품이 되는 인어공주?

그렇게 여자아이들이 왕자님을 만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는 동안, 남자아이들은 세상을 구하겠다는 야망을 키우며 자랐다.


재밌는 건 남성 주인공은 우연한 방식으로 여자 주인공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답답한 뿔테 안경에 가려진 여자 주인공의 숨겨진 미모를 단박에 알아채고, 독특한 성격에 숨겨진 매력을 발견한다. 왕자가 인적 드문 산속의 오두막에서 7명의 난쟁이를 돌보느라 가사에 찌들었을 백설 공주의 다크써클 아래 미모를 한꺼번에 알아보는 것처럼. 아무렴 그 정도 보는 눈도 없으면 왕자가 아니지.


이러한 장면은 여성들에게 ‘어느날 내 진정한 가치를 알아줄 남성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요상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누군가 자신을 선택(pick me!)할 때까지 우리는 그동안 외모와 성품을 가꾸며 얌전하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신데렐라도 유리 구두를 잃어버린 다음 날 왕궁 문을 쾅쾅 두드리며 직접 찾으러 갔으면 됐을 것을, 답답하게 새언니가 피까지 흘리며 구두에 억지로 발을 밀어 넣고 있는 모습을 보고만 있지 않았나.


대부분의 남성은 백설 공주 속 느끼한 왕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보다 성공해서 수많은 여성들을 거느리는 아이언맨이 되고 싶어 한다. 반면 여성들은 일찍부터 로맨스 영화에 세뇌되고 결혼 판타지를 학습한다. 여성에게 있어 로맨스가 행복을 위한 궁극의 목표라면, 남성들에게 이는 세상을 구하면 따라오는 부산물에 불과했다.


결혼식 때 어떤 색깔의 수트를 입을지, 꽃장식은 피오니로 할지 화이트 릴리로 할지 일곱 살부터 꿈꿨다고 말하는 남성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 이러한 차이를 여실하게 보여주지 않나. 균형 있는 세계를 원한다면 두 성별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들려줘야 하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학습한 로맨스의 가이드라인을 착실히 따르며 사랑을 찾아 헤매는 여성들을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 불안정한 여성, 자존감 낮은 집착녀로 낙인찍는 것이 아니라.


나도 한때 곁을 내어줄 왕자님이 있었으면 했다. 오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해명하자면, 여기서 왕자님이란 나와 잘 맞는 상대에 대한 비유일 뿐 내가 모든 조건에서 완벽한 상대를 찾아 헤맸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남성이 있다고 믿을 만큼 순진했었던 적은 없다. 그러니까 나는 그저 나쁘지 않은 조건에 말이 좀 통하는 남성을 만난다면 어느 정도 타협할 의향이 있었던 거다. 하지만 몇 번의 연애와 무지몽매한 기다림 속에 깨달은 것은 바로 다음과 같았다.



정확히 당신은 연애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던 것뿐이다.

나는 왕자님을 찾고 싶었던 게 아니라 연애를 통해 내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고, 미디어에서 말했던 것처럼 소울 메이트를 만남으로써 행복해지고 싶었던 것뿐이다. 스스로에 대한 존재 가치와 행복의 원천을 반드시 연애에서만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왕자님과 사랑에 빠지고 싶었던게 아니라 그가 대변하는 멋진 특성들을 내 인생에 가져오고 싶었다. 정의로움, 강함, 부드러움, 멋진 취향, 건강한 신체, 경제적 능력과 같은 것들을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 왕자님이 나타나기를 기약 없이 기다릴 바에는 나 스스로가 그러한 특성을 지닌 인간이 되면 그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 이상형의 조건 = 실은 당신이 소유하고 싶은 특성"

한번 자신의 이상형 조건을 나열해보자.


부유한 사람? 당신은 경제적인 안정감을 원하는 거고 그건 스스로 이뤄낼 수 있다.


다정한 사람? 어쩌면 스스로를 좀 더 친절히 대할 수 있기를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


시어서커 자켓이 잘 어울리는 사람? 까짓거 내가 사서 내가 입으면  된다.


이상형을 찾을 게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의 이상형이 돼버리면 된다. 설사 완벽한 상대를 만났다고 해도 그는 언제든 당신 곁을 떠날 수 있지만 나 자신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는다.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우리는 스스로와 먼저 결혼해야 한다. 이 말은 곧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나 자신의 편이 되겠다는 다짐이며, 그 어떤 결점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를 사랑하겠다는 확언이다.



Mengliu Di 님의 사진, 출처: Pexels


당신이 진정으로 결혼해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미국의 작가 트레이시 맥밀란은 〈당신이 진정 결혼해야 할 사람The person you really need to marry〉이라는 제목의 테드 토크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세 번의 이혼을 통해 홀로 서기 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스스로와의 관계이며, 자신이 진정 결혼해야 할 사람은 바로 자신임을 깨달았다. 더 이상 전처럼 누군가가 ‘나와 결혼해 줄래?’라고 말해주기를 오매불망 기다리지 않는다. 이미 스스로에게서 그 말을 들었으니까." 


자기 자신과 결혼하는 것은 자신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과 같다. ‘나는 너를 절대 떠나지 않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라고. 스스로와 결혼하는 솔로가미와 비혼식이 점점 주목을 받고 있다. 나는 반드시 비혼을 선택한 사람만 이런 세레모니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결혼은 우리 인생의 종착지가 아니며, 어차피 인생은 혼자 이지 않나. 우리가 끝까지 함께할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이며, 해피 엔딩을 순진하게 믿고 앉아 있기에 우린 너무나 커버렸으니, 앞으로 다가올 작고 큰 고난과 역경에도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나를 사랑하겠다고 맹세해 보는건 어떨까?



"남자는 필수품이 아니라 사치재죠. 디저트처럼. 어느날 엄마가 저한테 말하더군요. '언젠가 부자 남자랑 결혼해서 정착해야지.' 그래서 제가 말했죠. 엄마, 내가 그 부자 남자야.


“우리 중 누군가는 우리가 결혼하고 싶었던 바로 그 남자가 된다.” 20세기 미국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한 말이다. 그리고 전설적인 가수 셰어도 부자와 결혼하라는 엄마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엄마, 내가 바로 그 부자 남자야.” 나는 가끔 궁금해진다. 여성들이 남성에게 선택받기 위해, 또는 그들을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쏟았던 시간들을 스스로에게 쏟아부었더라면 우리는 지금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더 이상 반짝이는 은색 갑옷의 기사를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그 갑옷을 입고 스스로의 구원자가 되자. 우리가 결혼하길 꿈꿨던 그 사람이 내가 되면 된다. 백마는 마구간에서 한 필 구매하면 원하는 곳 어디든 스스로 갈 수 있다. 제자리에서 기다리지 말고 원하는 것을 쟁취하면 된다. 그게 바로 오랫동안 당신이 기다려왔던 것들의 본질이다.



@ Netflix - 작은 아씨들


P.S 혹여 그저 외로움 때문에, 또는 기혼자를 디폴트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결혼을 하려는 사람을 위해 영화《작은 아씨들》의 대사를 덧붙여 본다. 극 중에서 배우의 꿈을 꾸었던 메그의 결혼식 날 여동생 조는 언니의 결혼을 말리며 함께 큰 도시로 가서 꿈을 펼치자고 설득한다. “언니는 그 남자에게 2년 안에 질리고 말거야. 하지만 우리의 삶은 영원히 흥미롭겠지.(You will be bored of him in 2 years and we will be interesting forever)"



여성들이 더욱 주체적이고 단단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생활밀착형 페미니즘 에세이.

더 많은 내용은 책 <더 이상 웃어주지 않기로 했다>에서 확인해주세요.



<더 이상 웃어주지 않기로 했다>  책 바로가기
교보문고 https://url.kr/oic7z3 
예스 24 https://url.kr/li1day 
알라딘 https://url.kr/7hcdi1 
인터파크 https://url.kr/zws2ht 

매거진의 이전글 나만의 확고한 취향과 주관을 찾기 위한 7가지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