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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미 Dec 18. 2019

너, 실망이다

한때는 나를 작게 만들었던 그 말

너한테 실망했다.

내가 여자 친구로서 고분고분 그의 말을 듣지 않았을 때.


내 삶을 굳이 희생해가며 성과를 달성하지 않았을 때.


본인들이 억지로 짜 맞춘 나에 대한 이미지에 부합하기 위한 노력을 그만두었을 때 그들은 나에 대한 실망감을 표출하곤 했다. 정말이지 포장이라곤 하나도 없는 날 것의 문장. '너, 실망이다.'라는 직설적인 표현으로.



'실망'이라는  단어는 어찌나 날카롭고 서늘한지. 처음  말을 들었을 때는 자존감이 마치 칼에 베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는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고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나의 바운더리에 들어와 있는, 내 인생에서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그와 같은 말을 했을 때 충격은 배가 되었다.



나에게 실망했다는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 개소리인지에 대해 깨닫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던 것 같다. 이제는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을 마주치면 실소와 함께 의문이 든다. 당신은 대체 누구시길래 제 인생에 대해 멋대로 기대하고 기준을 세우고 이를 측정하려 드시는 건지요.



무엇보다 이는 가장 저질의 가스 라이팅 방법 중 하나이지 않나.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는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내 인생을 조정하려는 교묘한 폭력이다. 내가 좀 더 '조신한' 여자이기를 원할 때. 그들을 대신해 어떤 성취를 일구어 내기를 원할 때. 그들의 '입 맛'에 맞는 태도를 취하길 원할 때. 그들은 종종 실망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내 삶을 가지치기하려 들었다.



문제는 한 때 내가 그들의 인정을 바랐다는 거다. 따라서 이토록 말도 안 되는 그들의 전략이 먹혔던 것이다. 미디어에서 떠들어대는 '개념 있는' 여자 친구가 되고 싶었고, 잘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합하고 싶었다. 아마 그들도 그런 내 속마음을 눈치챘기에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냄새가 난다. 상대방에게 반드시 들킬 수밖에 없는 진한 냄새가.



학교 선생님. 또래 친구. 부모님. 애인. 직장 상사. 내 인생에 어느 정도 지분이 있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부단히도 나를 검열하던 때가 있었다. 어느 순간 이 모든 것들이 의미 없이 느껴지는 시기가 왔다.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나의 일부를 희생함으로써 내가 얻는 것은 대체 뭔가. 그들의 칭찬과 인정이라는 그 실체 없는 모호한 트로피는 어느 선반에 진열해놔야 하는 것인가.



그쪽이 제 인생에 실망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면, 저도 당신을 실망시킬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남들을 실망시킬 권리'를 부여하기로 했다. 차라리 그들을 실망시키고 내 몸과 마음이 편하기를 택하기로 했다. 그들을 실망 좀 시킨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고. 뭐 처음부터 허락도 없이 멋대로 기대한 그쪽이 잘못이지라는 마음가짐으로.



앞으로 누군가 당신에게 실망했다며 여러분의 삶에 대해 있지도 않은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려 든다면 이렇게 말해줬으면 한다. "어머 저도 그쪽이 함부로 남의 인생에 잣대를 들이대시는 분인지 몰랐어요. 저도 그쪽한테 실망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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