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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미 Dec 23. 2019

자존감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에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

성형 권하는 사회

이십 대 초반의 나는 성형수술이 하고 싶었다. 아마 누군가로부터 "코끝만 살짝 고치면 완벽할 텐데"라는 말을 들은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참 간사한 게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내 코가 마치 확대경으로 줌인한 것 마냥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는 일종의 집착으로 번졌고 급기야 내 얼굴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는 큰 마음을 먹고 친구와 함께 성형외과 상담을 받았다. 코디네이터라는 사람이 나와 내 친구의 얼굴을 고기 재듯 재단하며 우리가 인식하지도 못했던 우리 얼굴의 단점을 쏙쏙 집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마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어야 하고, 이목구비의 조화도 중요하지만 그를 담는 틀도 중요하기에 앞광대를 살짝 도드라지게 하는 귀족 수술도 권하며, 코는 단순히 끝만 고쳐서는 어색하니 콧대에 실리콘을 넣는 게 정석이라고 했다. 여기에 필러를 눈 아래와 턱 끝에 살짝 넣어 디테일을 살리면 된다고. 그런데, 그거 알아요 아가씨들? 사실 만족도가 제일 높은 성형수술은 가슴수술인 거.



성형외과 코디네이터는 견적을 내밀며 장담했다. 예뻐지면 행복해질 거라고.  

상담 과정이 너무도 적나라해 마치 내 존재 자체를 공격당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얼굴 채첨표를 각각 손에 들고 허무하게 병원을 나왔다. 그 채첨표에는 나를 사회의 미적 기준에 완벽하게 짜 맞추기 위한 가격표가 포함되어 있었다. 코디네이터의 말에 따르면 그 청구서는 불완전한 나를 완전한 인간으로 만들어줌으로써 더 나은 삶을 약속하는 보증수표였다. 하지만 그 청구서를 지불하려면 계획했던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위해 모아둔 목 돈을 모조리 가져다 바쳐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캐나다행 비행기 티켓 대신 성형수술을 택했으면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 가슴이 서늘하고 아찔해진다. 외국 생활을 하며 얻게 된 경험, 성장, 가치관 그리고 사람처럼 뻔한 것들은 뒤로하더라도 밴쿠버에서의 일 년반은 내 얼굴이 왜곡되어 보이는 병적인 증상을 말끔히 치료해주었다.




나는 예쁘다는 그들의 칭찬이 불편하다.

캐나다에서는 타인의 '신체'에 대해 칭찬하는 것 마저 지양하는 분위기다. 외모보다는 그 사람의 성격, 센스, 에너지 같은 것들을 칭찬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왜냐하면 칭찬은 때로 비난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칭찬은 누군가를 특정 방향으로 인도하는 힘이 있다. 예를 들자면, 어릴 적에 글쓰기를 잘한다고 칭찬을 받은 아이는 신이 나서 더 글을 쓰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자기의 자아정체성을 형성해 간다. 외모에 대한 칭찬만 받은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오직 외모를 통해서만 매기게 되는 것이다. 이후로 나는 누군가 나에게 예쁘다고 하는 선의의 칭찬에 마냥 편하게 웃을 수 없게 되었다. 그 길은 내가 나아가고자 의도한 방향이 전혀 아니니까.



물론 지구 어느 곳에도 여성들에게 비현실적인 미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나라는 없다. 다만 한국 사회가 여성들에게 매우 노골적으로 이를 강요하는 반면 캐나다는 적어도 눈치는 본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여성의 신체를 아주 미세한 부분, 이를 테면 어깨는 직각인지부터 턱은 브이라인인지와 같은 부분까지 세세한 매뉴얼을 세우며 단 하나의 완벽한 미적 표본을 만드려고 한다면 적어도 캐나다는 다양한 미적 기준을 인정한다. 곡선이 풍만한 몸도 아름다운 거고, 살짝 그을린 피부도 아름다운 거고, 작은 눈도 아름다운 거다. 개인적으로 우리 모두가 꼭 아름다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폭넓은 기준은 적어도 숨통을 트이게 해 준다.  



고백하건대, 내가 외국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단순히 아름다워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나는 성형수술을 감행했을 것이다. 1분에 한 개씩 성형외과 광고를 마주하는 사회에서, 예뻐지는 것이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이며 아무리 당신이 고시 삼관왕을 하더라도 아름답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겁을 주는 세상에서 제 아무리 단단한 개인이라도 버티기 쉽지 않지 않은가.



사회는 여성들에게 낮은 자존감을 갖도록 유도한다. 그건 어찌 보면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전략이기도 하다.

내 또래의 많은 여성들이 낮은 자존감으로 고민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이 사회는 젊은 여성들이 감히 자존감을 갖도록 허용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당신의 낮은 자존감으로 돈을 버니까. 이를테면 성형외과 의사, 코디네이터, 화장품 회사, 다이어트 식품 회사 말이다. 그들은 'Love Your Self'라고 적힌 핑크색 포장지로 우리의 눈을 가리며 이 모든 것이 스스로를 위한 투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지 않는 우리에게 죄책감마저 느끼게 한다. 하지만 실상 그들은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을 가장 원치 않는 이익 집단 아닌가. 때문에 지속적으로 우리의 나이에 대해, 주름에 대해, 피부색과 동공의 크기에 대해 떠들어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미친 사회에서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불완전한 나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요즘의 내 마음 가짐은 이렇다. '그래 내 코끝이 한가인처럼 완벽한 것도 아니고, 타고난 머리카락은 반곱슬이지만 그런데 그게 뭐?'



물론 안다. 평생 최면에 걸린 채로 살아온 탓에 미적 기준에 나를 맞추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지고 가끔은 아름다워지기 위한 고난의 과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길 원한다고 착각하기도 한다는 걸. 나 역시 한국에 돌아와 외모에 대한 지적을 듣거나 강남역을 빼곡히 채운 성형외과의 광고를 볼 때마다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자신의 단점을 성형수술로 고쳐버리는 것이 어찌 보면 가장 빠르고 쉬운 해결책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괴물들은 단순히 내가 코끝을 고친다고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다음번엔 내 입술에 대해, 내 다리에 대해 말하겠지. 따라서 결국 이 거대한 싸움에서 진정 승리하는 길은 자신의 단점까지 모조리 포용해버리는 것뿐.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꼭 해줬으면 하는 게 하나 있다. 거울 앞에서 자신의 두 눈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그리고 다음 문장을 스스로에게 소리 내서 말해보는 것이다. "사랑한다. 너의 단점을 포함한 모든 것까지." 아마 온몸이 오그라들고 누군가 이런 내 모습을 볼까 봐 부끄러울 것이다. 이는 우리 자신이 평소에 얼마나 스스로에게 사랑을 표현하는데 인색했는지를 증명한다.



당신에게 단점은 없다며, 우리 모두는 아름답다며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중요한 건 단점이 당신을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신은 고작 그 몇 개의 단점을 초월하는 존재다. 400조 분의 1의 확률로 지상에 태어난 그 존재 자체가 기적인 당신이다. 그 지지부진한 단점까지 포함해 당신과 같은 인간은 존재한 적도 없으며 앞으로 존재할 일도 없다.



무엇보다 나는 당신이 그저 아름다운 눈매를 가진 것 이상의 사람임을 잘 안다. 어쩌면 당신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폭발적인 추진력을 지닌 사람일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보살필 줄 아는 어른스러운 사람일 수도 있다. 섬세한 감수성으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발견해내는 사람 일수도 있다. 그런 당신에게 외면의 아름다움까지 바라는 세상이 너무 많은 걸 요구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무엇보다 이러한 장점들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퇴색되는 외면의 아름다움과 달리 시간이 훔쳐갈 수 없는 성질의 것들이다.



Choose your battles wisely

아름다움을 향한 열망은 언제나 있어왔고 이를 추구하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선택이라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싸움에서 개인은 언제나 지고야 만다. 불가능한 미적 기준을 모두 맞춰내는 성취를 일구었다고 해도 시간은 순식간에 이를 앗아갈 것이며 더 젊고 아름다운 누군가에게 급히 왕관을 돌릴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두 손으로 일구어낸 성취, 커리어, 인간관계,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시간에 따라 상승곡선을 이어나갈 것이다. 우리는 전쟁터를 선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승리를 쟁취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싸움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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