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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린씌 Apr 11. 2021

이상과 현실 사이

[책 리뷰] 달과 6펜스 | 서머싯 몸


안정적인 직장과, 결혼 생활을 유지 해오던 중년의 찰스 스트릭랜드. 그는 돌연 자신의 책임 하에 있던 모든 것들을 놔두고, 홀연히 '예술을 하겠다'는 이상만을 바라본 채 가족 곁을 떠난다. 돈, 명예, 인정, 타인의 시선 그 어떤 것도 그를 자극하지 못했고, 오직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며 살아간다. '그려야 하기에'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다던 스트릭랜드. 남은 생은 가진 것 없이 비루한 삶을 살았지만, 그는 죽은 뒤 천재적 예술성을 인정받게 된다. 예술을 위해 가정과 사회적 지위까지도 버렸던 한 화가의 창조적 열정과 고뇌가 담긴 작품이다.




기준


어려서부터 우리는 교육을 통해 수많은 규범과 규칙을 배운다. 쓰레기를 땅에 함부로 버리면 안 되고, 교통법규를 지켜야 하고, 자신이 맡은 일에는 끝까지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는 도덕적 양심을 품어야 한다. 관념에 벗어나는 행위를 할 경우, 우리는 사회로부터 심한 간섭과 비난, 욕을 듣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자라며 정답이라고 배운 전통, 매너, 양심, 기준 이 모든 관념들이 정말 인간 개인을 위한 진리일까? 사회가 커질수록 개인에게 부여되는 책임과 의무감도 함께 커진다. 국가가 비대해질수록 인간의 존재감은 작아지고, 개인을 구속하는 사회적 기준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집단 안의 개인은 자신의 가치를 상실해감으로써, 한 집단의 소속으로 굳건히 자리 잡는다. 열심히 공부해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결혼해 아이를 낳아 책임감을 갖고 사는 것. 사회가 개인에게 가르쳐준 것이지만, '나'라는 인간을 대신하진 못한다.


나는 양심이란 각 개인의 마음속에서 사회가 그 자체를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낸 여러 규칙을 지켜보는 감시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양심이란 또한 우리 마음속에서 근무하는 경찰관과 같은 것이어서 우리가 사회의 법률을 깨뜨리지 않나 지켜보고 있다. 그것은 자아 저 깊숙한 본거지에 자리한 정찰병이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이익보다 중요하다고 받아들인 집단의 이익을 따름으로써 의지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을 영예로운 자리에 앉혀 놓는다. <달과 6펜스> P83




이상과 현실 사이


나는 다른 무엇보다 '스트릭랜드'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집중했다. '이상'을 위해 가족을 버리는 무책임함, 뇌를 거치지 않고 내뱉는 막말, 불륜, '예술'에 대한 광기, 이기심, 여성 폄하. 내가 지닌 관념에 따르면, 그의 모든 행동은 도덕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기에, 그를 비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가족과 사회에는 해악을 끼치는 사람으로 비칠지는 몰라도, 그 개인을 위해서는 참 행복한 인생이지 않았을까. 


스트릭랜드는 마지막 여생을 '타히티'라는 작은 섬에서 보내게 된다. 그곳의 원주민 여자와 결혼을 해, 마지막까지 그림만 그리다 병에 걸려 생을 마감한다. 사회규범이 엄격한 거대도시에는 맞지 않던 그가, 그 작은 섬에서 가진 것도 없이 초라하게 살았지만, 그의 모든 창조적 열정과 영혼을 불사 지른다. 시선, 평가, 허례허식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자신만의 창대한 이상을 가지고 지 꿀리는 대로 사는 인생, 그것도 누군가에겐 하나의 정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모든 것을 '통용되는 관습'내에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구나 한 번쯤, 마음속으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맞본 순간이 있을 것이다. 과감하게 이상을 따르고 싶지만, 사회적 기준에 걸리는 것이 많아, 본연의 생각 자체를 부정했을 수도 있다. 저자는 스트릭랜드의 삶을 통해 그 안에 내재된 인간의 본심을 일깨운다. 저마다 내부에 모순된 양면성을 지니고 있고, 사회적 가치로부터 일탈하고 싶은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일탈했을 때 쏟아지는 비난을 감당할 수 없기에 스스로의 욕망을 억제하고, 부정한다. 삶에 정답은 없음에도, 우리는 스스로 너무 많은 것을 '기준'에 맞추려 자가 검열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나는 아직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성실성의 이면에 얼마나 많은 위선이 들어 있고, 고상함 속에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그리고 패륜 속에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내재해 있는지 아직 알지 못했던 것이다. <달과 6펜스>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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