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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난인형 Mar 27. 2020

남자들의 로망 자동차에 관하여


“10분 있다 나와~”

외출할 때마다 남편이 하는 소리인데 이유는 10분 일찍 내려가서 보물 1호인 자동차를 닦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남편은 손에 걸레를 들고 출고된 지 한 달도 안 된 따끈따끈한 우리 집 애마 그랜저를 찾아 나선다. 지난 주말 자취하는 둘째 딸 이삿짐을 옮기느라 화물차 노릇을 했으니 마음이 어찌나 아플지, 고생시켜 미안한 마음을 담아 평소보다 더 열심히 닦고있다. 

뒤늦게 내려갔더니 저 멀리 검은 차량 옆에 걸레질을 열심히 하는 남편의 모습이 보이고 역시나 우리 차는 반짝반짝 돋보인다. '아이고, 웬수탱이. 마누라를 저리 좀 아껴보지….'

우리가 다가가는 모습이 보이자 남편은 세차하던 걸레를 넣기 위해 트렁크 버튼을 눌렀다. 

"어, 이상하네??“ 그런데 트렁크가 안 열린다. 

‘새 제품인데 벌써 고장인가?’ 

바지 주머니를 뒤져 차 키를 찾아 눌러보지만 역시 안 열린다. 

뒤늦게 번호판을 확인한 남편, "어, 우리 차가 아니네."

남편은 10분 동안 남의 차를 그리 열심히 닦아준 것이다. 

화물차 노릇 시켜 미안한 마음까지 듬뿍 담아서. 




여보일어나눈이 많이 내려서 길 미끄러우니까 오늘은 그냥 걸어가.“     

언젠가 한참 꿀잠 자고 있는데 남편의 호들갑에 눈을 뜨고 창밖을 봤다. 남편의 말대로 밖은 새하얀 눈으로 덮여있고 아직도 눈발이 펄펄 날리고 있었다. 요즘 남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새로 장만한 그랜저.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오로지 차 생각뿐이니 가까운 거리라 조심해서 끌고 가도 되지만 잔소리쟁이 남편의 노심초사하는 모습에 기꺼이 동조해줬다.      

퇴근길에 주차장에 들러 닦아주고, 비 오는 날 빗방울 맞고 돌아다녔다고 닦아주고, 주말에 낮잠 자다 심심하면 닦으러 나가고, 남성 전용 화장실인 안방 화장실에는 차량용 걸레가 항상 젖은 상태로 걸려있다. 혼자 닦는 게 성에 안 차는지 매일 안 닦았다 해도 "오늘은 차 좀 닦았나?"라며 묻는다. "안 닦았다고, 오늘도 안 닦았고, 어제도 안 닦았고, 내일도 안 닦을 거라고~~"


워낙 차를 귀하게 여겨 주변에서도 별나다고 인정하는데 요즘 많이 나아진 게 이렇다. 20년 전 구매한 소나타는 처음 몇 년간은 아깝고 걱정돼서 차 키도 잘 안 줬는데 치사해서 중고차를 따로 타고 다녔지만 나에게 자동차는 이동수단에 불과했으므로 불편함을 몰랐다.      

한데 머리 허옇게 변하더니 처음부터 차 키 하나를 나눠 준다. 차 키만 주면 좋은데 부담스러운 관심도 같이 준다. ”방지턱은 멈추 듯 서서히 넘어라, 익숙하기 전까지 밤 운전은 하지 마라, 눈비 오는 날은 타지 마라. 낮에는 주차장에 내려가서 넓은 자리로 옮겨놔라.“ 

오토매틱도 아닌 스틱 운전 이십오 년 차인 나에게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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