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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herine Nov 08. 2020

거인 킬러가 되려면

삼상 17:1-37 한홍 목사님

성령님이 떠난 사울은 왕의 부담감과 악령들로 인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신하를 통하여 다윗을 사울의 궁안으로 들이시는데, 그때 이미 다윗은 사울의 다음 왕으로 사무엘 선지자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후였는데도 사울의 신하가 그 정보만을 쏙 뺀 체 용맹함과 지혜가 남다른 자라고 소개한 것이 참으로 놀랍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신비로운 방법으로 그분의 일을 진행해 가신다. 다윗은 사울의 무기를 드는 자로 궁에서 생활을 시작한다. 그를 추천한 신하를 비롯하여 궁 안에 모든 사람들이 오며 가며 새로 온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쌓여 오늘,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물리치겠다고 했을 때 모두가 뜯어말리기보다 기회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기름 부 음 받은 다윗은 양치는 목자였다.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가 사울의 무기를 드는 자로 궁안에서 생활을 시작했을 때 만약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름 부으셨다는 이유로 스스로가 자신의 값을 올리고 교만하게 행동했다면 아마 사울에게 바로 죽임을 당했을 수도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때가 될 때까지 그저 낮은 자세로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는 매일 밤 사울의 업무들을 힐끔거리거나 본인이 대신 그 일을 하려고 골머리를 썩힌 게 아니었다. 그저 수금을 타고 무기를 들며 사울의 일을 보필했다. 힘든 점도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있는 곳에서 낮은 자의 마음으로 겸손한 자세를 배울 때까지 우리의 마음의 중심이 우리가 아닌 하나님을 더 귀히 여길 때까지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기쁜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위기가 기회라고 하는 말이 있듯이, 무시무시한 골리앗은 이스라엘에게 국가적 위기였다. 골리앗과 블레셋 군대는 세상 권세를 잡고 우리를 공격하는 어둠의 세력들을 나타내고 있다. 


첫째로 그들은 우리가 약할 때 공격한다. 블레셋 군은 40여 년 전 사무엘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에게 패 했었고, 20여 년 전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드는 자에 의해 또 한 번 참 패를 당했었던 전적이 있다. 이들은 오랜 기간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한 채 괴롭혀 오고 있었던 것이다. 기가 꺾여있었던 그들은 하나님의 영이 사울을 떠나고 이스라엘의 탑 리더십에 문제가 생긴 이때, 다시금 공격을 해오고 있다. 우리의 원수도 언제 우리를 공격해오는가? 우리가 약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을 바로 그때 허점을 노리며 공격해 올 것이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여기서 삼킬 자는 만만한 사람, 사울처럼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그 관계가 무너져있는 사람을 뜻한다. 예배의 자리를 떠난 사람이며 성령의 보호막 안에 거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스라엘 군사들이 골리앗 앞에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통해 블레셋 군대가 허점과 타이밍을 잘 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로 적은 무섭고 강하다. 4절에 보면 골리앗은 가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바로 거인 족인 아낙 자손의 후예들이다. 예전에 이스라엘 정탐꾼들은 아낙 자손을 보고 놀라서 메뚜기에 자신들을 비유했었고 그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지도 않았던 그들 앞에 다 죽었다며 불평불만을 시작했었다. 세대를 초월해서 악한 마귀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힌다. 우리가 믿음의 싸움을 승리하지 못하면 영적인 싸움은 후손들에게로 고대로 넘어갈 것이다. 


골리앗의 키는 2m 80cm로 추정된다. 온몸이 근육질로 이루어져 누가 봐도 전사였으며 그가 입은 놋 갑옷의 무게만 60kg이었다고 한다. 거기다 그의 다리까지 놋으로 무장시켜 놓았었기 때문에 창과 화살로 그를 쓰러뜨리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공격무기도 상당했다. 그는 어깨에 단창을 메고 비상용 표창까지 가지고 다녔는데, 그가 풍차처럼 휘두르는 창의 날은 7kg로 볼링공보다 무거운 무게였다. 거기다 그는 자기 앞에 방패를 든 자를 세워 이중으로 방어했다고 하니, 인간적인 힘으로 쓰러뜨리기 불가능한 세상 권세를 뜻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무시무시한 갑옷과 무기들은 오늘날 교회를 압박해오는 어둠의 권세가 사용하는 돈, 권력, 지위 등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힘이 있다. 골리앗처럼 무서운 존재들인 것이다. 빈틈이 없다. 그런즉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며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8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당시에는 양 진영을 대표하는 전사들이 대결을 펼쳐서 덜 피를 흘리고 승리하는 진영이 승리하는 관습이 있었다. 지금 골리앗은 그 대결을 청하고 있는 것이다.


9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골리앗은 자기가 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 힘에 도취되어 있다. 오늘날의 세상 권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하나님 백성들 앞에 나아와서도 하나님을 모욕하며 싸움을 거는 것이다. 세상의 힘들이 그렇다. 조금만 힘을 가져도 자기가 최고로 강한 줄 알고 약한 사람들을 사정없이 짓밟으려고 한다. 권력을 함부로 부리는 사람들, 남의 말을 듣지 않고 본인을 위하여만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 골리앗의 영에 도취된 사람들이다. 


9절에서 골리앗은 이 전쟁이 얼마나 큰 파급효과가 있는지를 알려준다. 지는 쪽이 이기는 쪽의 종이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꼭 승리해야 하는 냉혹한 현실이다. 우리는 스포츠 경기를 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스포츠는 지더라도 그다음을 기약할 수 있지만 전쟁은 지면 죽고 노예가 되는 것이다.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다. 내가 대표하고 있는 가족과 공동체가 모두 그렇게 되는 것이다. 협상은 있을 수 없다. 중재도 없다. 대화도 없다. 오직 이기는 쪽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는 매 순간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영적인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 자리를 우리가 물러서지 않고 지켜서 이기면 영적 전쟁에서 향방이 바뀔 수 있다. 우리는 비겁한 사울이 아니라 용감한 다윗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도망간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골리앗이 등을 보이고 도망가지 않는데 교회가 그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골리앗은 초장에 물리치지 않으면 점점 사이를 좁히며 압박해온다. 8절에서 골리앗은 '싸울자를 나에게 내려보내라'라고 얘기한다. 그는 지금 두 진영이 대치한 골짜기 한가운데서 이스라엘 진영을 향해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40일이 지나 다윗이 이스라엘 진영에 도착했을 때는 그의 위치가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5절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너희가 이 올라 온 사람을 보았느냐'를 보라. 여기서 올라온 사람은 바로 골리앗이다. 그가 40일 밤낮을 나와 이스라엘 군대를 희롱하고 압박하며 조금씩 조금씩 전진해 온 것이다. 그런 그를 향해 이스라엘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공격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귀와 싸움을 피하면 어떻게 되는가? 초장에 영적 전쟁을 승리하지 못하면, 그 전략과 전쟁의 지휘권을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순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어둠의 권세는 점점 내 생각과 감정과 삶의 전반에 어둠의 손길을 뻗치며 압박하며 들어올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이런 골리앗을 향해 너무나 힘없이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스라엘 군사들을 볼 수 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그나마 덩치가 큰 골리앗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자는 사울 왕이다. 보통 장정보다 그는 머리 하나는 더 컸다고 적혀있다. 사울 왕의 키는 2m 30cm는 될 것이라 추정된다. 체격도 제일 크고 전략도 있고 게다가 왕이었다. 백성들을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자였다. 8절에 골리앗이 뭐라고 고함치는가? '너희는 사울의 심복 아니냐' 이 말은, '정 싸울 사람이 없다면 사울, 네가 나와라'라는 말과 같다. 자존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싸우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울은 나갔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의 영이 떠났던 사울에게 남은 것은 두려움의 영인 악령이었다. 절대 못 싸우는 것이다.


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성경은 단어의 순서도 참 중요하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 사울에게서부터 그 두려움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사울부터 크게 놀라고 두려워하니까 그것이 삽시간에 번진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싸우려는 사람은 자기보다 힘 있고 권력 있는 사람 앞에서 이렇게 비굴해진다. 인간의 힘으로는 무너뜨릴 수 없는 골리앗과 같은 세상 권세 어둠의 권세를 그저 우리 힘으로 헤쳐나가려고 발버둥 치면 이렇게 사울처럼 비참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울은 지금 40일 밤낮을 도망가지도 못하고 싸우지도 못한 채 자리보존만 하고 있다. 이런 리더는 있으나 마나이다. 차라리 리더의 자리를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기도하며 힘을 얻는 것도 아니고, 결사적으로 싸워보는 것도 아닌 그저 자리보존만 하는 무책임한 사울을 믿고 싸워보겠다고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쌍해지는 순간이다. 인간적 리더십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 상황은 믿음이 없을 때 드러나는 인간의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골리앗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답 없는 직장 상사, 돈, 언론, 성적인 유혹, 자기 성격, 가족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골리앗은 골리앗적인 방법으로 이길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골리앗을 이기기 위해 그와 비슷한 신장과 체격을 가진 또 다른 거인을 찾아야 했던 것이 아니다. 찾을 수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골리앗은 다윗이 죽이는 것이다. 골리앗은 세상의 또 다른 창 칼이 아니라 믿음의 물맷돌로 죽이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무서워만 하고 있었던 그때 오직 하나님께서 타석에 세우신 다윗만이 골리앗을 죽일 생각을 했고 실제로 그를 죽였다. 죽일 생각을 해야 죽이는 것이다. 이길 생각을 해야 실제로 이기는 것이다. 


다윗은 평범한 사명을 성실히 감당하는 사람, 원래데로라면 다윗에게는 골리앗과 싸워 볼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어야 했다. 군대에 징집되려면 20살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이새의 막내아들이었던 그는 나이가 부족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였다. 골리앗과 이스라엘 진영의 팽팽한 대치 상황에서 갑자기 카메라를 돌리신 하나님은 평화로운 베들레헴으로 시선을 돌리시고 그곳에서 다윗에 집중하신다. 아버지 이새가 전쟁터에 나간 세명의 형들에게 나갈 음식을 챙겨주라고 한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항상 예비되어있는 정규군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시상황에만 남자들을 징집하여 진영을 세웠고 따라서 비축된 군량미는 없었다. 그래서 항상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가 식량 조달이었다. 


이새의 집에서 전장까지는 몇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고 아버지의 부탁에 막내아들 다윗은 겸손하게 순종한다. 구절에 보면 아침 일찍 일어나 음식을 챙겨 달려갔다고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작은 일에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온전한 순종을 올려드리는 다윗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다윗은 전장에 대한 호기심으로 간 것도 아니었고 목자의 일이 재미없어서 구경 나온 것도 아니었다. 그는 순종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순종을 들어 쓰셔서 그가 온 백성들 앞에 사울 왕과 견주어 보이는 터닝포인트가 되도록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단조로운 이 하루, 평범한 하루에 생겨 날 수 있음을 우리는 항상 잊어버리면 안 된다. 다윗은 그날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자신을 통해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역사를 일으킬 것이라고, 바로 오늘이 그날이라고 예감하지 못했다. 오늘이 골리앗을 잡는 날이고 온 카메라가 자신을 집중적으로 보도할 것이라고 꿈에도 예측하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는 내일, 골리앗을 잡게 될지도 모르겠다. 성경의 모든 영웅들도 날마다 똑같은 일들을 반복적으로 순종하다가 운명이 바뀌는 날을 맞이했다. 아무리 지루해 보이고 힘든 일도 적당히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신념이 아니다 하나님의 진리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다윗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열악한 조건을 극복해 내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무엘 선지자의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베들레헴의 이름 없는 촌사람이 왕이 되려면 전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정을 받아야 하고 큰 전쟁의 공로를 세우며 나라를 구해도 될까 말까 한 상황에서 객관적으로 그럴 기회도 여건도 안 되는 다윗을 하나님께서 도우셨던 것이다. 다윗은 전쟁터에 나갈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나이였다. 사실상 전쟁 공로를 세워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했다. 시험이라도 쳐야 입신양명을 할 텐데 시험을 칠 수 있는 기회가 아예 주어지지 않는, 왕이라는 자리로 갈 길이 전혀 생길 수조차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다. 어느 정도의 스펙을 쌓지 못하면 출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구인 환경, 학벌과 재력과 외모와 모든 것을 평가당해야 하는 상황 앞에 나 자신은 해도 안될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청년들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적인 생각이다. 다윗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우리가 자질이나 스펙이 부족해서 우리의 출전 자격이 안주 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하셨던 것처럼 작은 일에 기쁨으로 온전한 순종을 하는 이들에게 주님의 은혜의 손길을 더하셔서 기가 막힌 방법으로 우리의 삶을 일으키시고 도우실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상황이 얼마나 열악하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가진 능력과 힘은 어느 정도냐를 재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스펙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는 것도 아니다. 얼마나 신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헌신되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19세기 말에 말씀을 전했던 목사들은 모두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박사 출신들이었다. 그런데 당시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초등학교밖에 안 나온 D.L 무디에게 하나님은 학벌로는 따라잡을 수없는 능력을 부어주셨고 그는 당대 최고의 영향력을 끼치는 설교를 전할 수 있었다. 다윗을 통해 역사하시고 그에게 집중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부족하기 짝이 없는 우리의 삶도 같은 시선으로 보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다윗이 전장에 도시락을 들고 당도했던 날은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41일째 밤낮으로 희롱하던 날이었다. 40일 넘게 눌려있었던 이스라엘 군처럼 그날 처음 골리앗의 고함소리를 들은 다윗도 그의 흉 표한 모습에 많이 놀랐을 것이다. 


24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닌 눈 앞에 보이는 골리앗을 보며 40일 밤낮을 두려워했다. 그 두려움을 묵상한 것이다. 시작과 끝을 예배로 시작해야 하는데 세상 권세의 흉 표하고 답 없는 뉴스를 밤낮으로 들여다보며 걱정만 한 것이다. 기도시간보다 말씀 읽는 시간보다 세상 문젯거리를 곱씹는 시간이 많은 사람들은 영적으로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직 40일 동안 단 한 명의 사람들도 골리앗과 창이라도 한번 부딪혀 본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무조건 죽을 것이라는 심리전에 눌려 마귀와 붙어보기도 전에 패배를 확신한 것이다. 실제로 붙어보면 마귀는 그렇게 세지 않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보다 예수 믿게 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순교의 현장에서 더 담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래 예수를 믿은 사람들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이 아닌 골리앗을 더 많이 묵상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윗의 특징은 골리앗을 오래 보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날 아침에 보고 그날 싸워 그를 죽였다. 우리도 이렇게 단칼에 단번에 골리앗을 주님 손에 맡겨야 한다. 우리가 골리앗을 묵상해 보았자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는 통로만 더 좁히게 된다.


하나님의 사람이 딱 마음먹고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이 영적 교착 상태는 끊어내기 어렵다. 그들은 40일 동안 현상유지한 게 아니라 죽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두려워하던 사람들이 도망가고 있었지 않은가. 


25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너희가 이 올라 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의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버지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세금을 면제하게 하시리라


거기다 한술 더 떠 하나님의 임재가 떠난 백성들은 그 와중에도 골리앗을 죽인 사람에게 어떤 상금이 돌아가는지를 되새기고 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골리앗과 그나마 싸워볼 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사울 왕이었다. 그러나 그럴 용기가 생기지 않자 최고 리더십 자리에 있다는 사람이 포상금을 걸고 자기 대신 싸울 사람을 찾은 것이다. 그것도 아주 거창하고 그럴듯한 보상을 걸어서 어떻게든 그 상황을 모면해 보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자기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데 그런 보상은 하등 쓸모가 없었다. 인간적인 동기부여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을 하는가 보다 무엇을 위해 하는가가 너무나 중요한데 세상 사람들은 세상적인 보상을 위해 싸운다. 그러니까 이런 군대는 아무리 수가 많아도 모래알처럼 흩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전혀 다른 관점으로 이 상황을 바라본다. 그래서 40일 동안 아무도 깨지 못했던 이 교착상태를 하루 만에 깨버린다. 다윗이 물맷돌을 던지기 전에 여기서부터 다윗의 승리는 이미 예견되었다.


26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같은 문제였고 같은 상황이었지만 다윗은 해석하는 관점 자체가 달랐다. 하나님의 영이 없었단 백성들은 '저 칼 좀 봐봐, 어우, 저 키 봐, 저 주먹 좀 봐'하며 골리앗을 샅샅이 분석했다. 하면 할수록 절망만 늘어났다. 그러나 다윗은 듣자마자 '저 인간은 할례 받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도 아닌데 왜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다윗한테는 골리앗의 고함소리에서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향한 모독, 그리고 분노가 일었던 것이다. 그의 마음 안에 성령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예뻐하시는 이유다. 


골리앗은 다른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다윗에게는 그저 성령을 모독하는 자에 불과했다. 처음으로 다윗이 말로 그를 죽이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다윗이다. 그래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다. 그는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는 자여서 사이즈에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자였다. 


우리가 무엇에 대해 분노하는가는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나타낸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가 자기가 새로 구입한 자동차에 작은 흠집 하나만 내도 불같이 화를 낸다.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는 일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기 재산, 재력에 흠집이 나면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이다. 다윗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에 흠집이 나는 것에 참을 수없이 분노했다. 물질적인 보상만 생각했던 사울의 부하들과 자기 목숨만 아까 줄 알았던 백성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다윗의 열정이 주님의 마음을 위로한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성실히 하면 주님께서 보상해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동기는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 영광을 위해 살기로 다짐해야 우리도 사는 것이다. 우리의 가족이 살고 사회가 살아나는 것이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다시 말하지만, 다윗은 어린 소년에 불과했다. 그의 형제들 중 셋째 형까지만 전장에 징집되었던 것을 보면 여덟째였던 다윗은 한참 어린 목동이었다. 그런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서겠다고 말했을 때, 사울의 단단한 갑옷도 벗어던지고 칼도 없이 물맷돌만을 가지고 그와 싸우겠다고 했을 때 만약 사울이 그리고 그 백성들이 어른으로써 '안된다'라고 뜯어말렸다면 그들은 골리앗의 횡포와 블레셋 군과의 전투에 패배했을 수도 있다. 


우리가 보는 현실, 우리가 보는 미래는 하나님이 보시는 것과 하늘과 땅 차이이다. 믿음이 있어야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골리앗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이미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감과 같은 새 힘을 허락하시겠다고 약속해주셨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도 365번이나 해주셨다. 날마다 하나님을 묵상하며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라고 약속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이기기 위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열정이 가득했던 다윗이 전장에 나타남으로 인해 이미 이 전쟁은 승리의 깃발을 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다윗은 그 입술의 고백과 그 마음의 고백을 확인하러 나갈 일만 남았던 것이다. 


우리는 영적으로 너무나 압박당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사무엘이 다음 왕으로 기름 부을 때 이미 전에 한번 기름 부었었던 사울 왕과 비슷한 사람을 이새의 아들들 중에 찾았지만 하나님이 점찍으셨던 사람은 소년 다윗이었단 걸. 그리고 이 다윗만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어떻게 골리앗을 이길 수 있을까 두려움에 떨지 않고 성령의 힘으로 그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달랐다는 걸. 세상의 권세가 하나님의 가정과 교회를 압박해 오는 이때에 우리는 인간의 시선과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생각하며 믿음의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다윗이 있는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죽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우리가 있다면 이 세상은 아직 죽은 것이 아닌 것이다. 


https://www.godpeople.com/?GO=tv_detail&tv_mv_no=19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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