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숭배/ 가장 근본적인 죄
팀 켈러의 <복음과 삶> 성경공부 Chapter 3는 '우상숭배'에 대하여 나누고 있다.
1주 차에서는 도시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깊은 마음을 알 수 있었다. 2주 차에서는 종교, 비종교, 그리스도인 사이의 존재하는 극명한 차이점에 대해 알아보았다. 종교는 '죄, 행위'만을 회개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선한 일 일지라도 그 마음의 중심이 나를 향해있진 않을까 그 '의'도 회개하는 사람들이다.
지난 한 주간을 그렇게 살았을까? 아니, 답은 당연히 'NO'이고, 이 질문은 할 필요가 없다. 깨어있는 시간 동안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졌었는지 저녁만 되어도 다 기억할 수 없다. 선한 일 일지라도 그 동기의 향방을 감찰할 수 있는 혜안을 가진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시기 때문이다. 오늘 드린 주일 예배 설교에서 목사님은 휴지에 관한 예를 들어주셨다. 내용은 이렇다. 어떤 사람이 차를 운전하다가 빨간 신호에 멈춰 기다리던 중이었단다. 그러다 옆좌석에 있는 휴지곽에서 휴지를 한 장 뽑았는데 그 찰나 햇빛이 차 안으로 쏟아지며 엄청난 양의 먼지가 낱낱이 보였다는 것이다.
종교인들이 하는 것처럼 우리의 잘못된 '행동'들을 스스로 솎아 내어 뉘우치고자, 그렇게 떳떳하고자 아무리 노력해도 주님의 거룩한 수준까지는 닿을 수가 없을 것이다. '구원'은 착한 행실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죗값은 선한 일로 삭감시킬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 '칭의'로만 가능하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서는 테레사 수녀도, 간디도 의인이 될 수 없다. 입으로 백번넘게 설명했던 에베소서 2장 8-9절 말씀이 깨달아지는 순간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와 세상이 말하는 '의'는 모든 점에서 다르다. 나란하지만, 한쪽은 계속 끊기고 일시적인 반면 다른 한쪽은 무한하고 높은 차원이다. 이것을 마음으로 보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은 어떤가.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 '왜 우리는 중독에 빠지는가?', '왜 우리는 용서하지 못하는가?'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런 질문들은 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우리의 본성은 왜 악한가를 묻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하자.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악한 마귀 사이에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어주신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마귀가 밀고하는 수많은 죄명들보다 우리를 변호하시는 예수님의 널따란 등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를 감싸 안은 그분의 팔도.
그러나 덮어놓고 감사하기보다 더 나아가 보자면, 위의 질문들에 대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무엇이 있어야만 행복하다고 느끼는 우리의 마음상태 때문이다. 형상화된 어떤 것만이 우상이 아니다. 지나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은 다 우상이다. 우리는 잘못된 우상을 성취하기 위해 쉼 없이 달린다. 때로는 불법을 마다하지 않으며 승자가 되기까지 함부로 쓰러지지도 못한다. 어떻게 보면 지루하고 무료할 수 있는 삶에 뚜렷한 '목표'를 주고 달려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듯한 우상이 나쁜 기만 한 걸까? 성경은 우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1. 모든 우상은 헛되고 무능하다. (사 2:8, 렘 1:16)
2. 모든 우상은 영적으로 위험한 세력으로, 인간의 모든 에너지를 빼앗아 간다. 마음과 생각에 심각한 영적 어두움을 가져온다. (사 44:9, 18) 우상숭배자들은 거짓의 거미줄에 미혹된다. (사 44:20)
3. 우상은 포로를 만든다. (렘 2:25)
- 팀 켈러의 복음과 삶 성경공부, 66P
그렇다. 성경에서 여러 선지자들이 설명한 것과 같이 우상은 아무런 힘이 없기에 그것에서 희망과 힘을 얻으려 할수록 더 힘들어지고 피폐해질 뿐이다. 정확히 알아야 한다. 우리의 삶 속에 우상이 있다면, 누구나 다 하니까 그래야만 하니까 회개하지 말고 궁금하다면 한 달이든 일 년이든 직면해보라. 그 삶이 얼마나 부정적이고 완벽하고 싶으나 항상 불완전한 삶 인지를 말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들이 결국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똑똑히 보고 새겨야 한다. 그래야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비로소 진리와 영으로 예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종교인, 그리스도인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이니 죄에 대한 성경의 기준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 안에 보이셨기 때문이다 (롬 1:19). 이때, 하나님의 음성은 '돌아오라'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죄 가운데 내버려 두는 것이기 때문이다(롬 1:24-25). 잘못을 깨닫고 그것을 삭감해보고자 노력하지 말고, 그렇게 자기 자신을 위한 '의'를 행하려 하지 말고 예수께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거저 얻은 유일한 의로움의 자리로 겸손하고 신속하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를 포함하여 대학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지식인들, 곧 종교인들은 도덕적인 측면과 심리적인 측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팀은 이 두 가지 접근법의 한계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 도덕화 접근법
행동에 초점을 맞춤, 깊이 들어가지는 못함. 행동을 유발한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내야만 함. 왜냐하면 여전히 도덕 표준을 따라 산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것을 갖지 못한다면, 실패자라고 믿기 때문이다.
- 심리화 접근법
느낌에 초점을 맞춤, 행동보다 더 깊이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불충분함. 마찬가지로, 감정에 대한 '이유'를 찾아내야만 함.
도덕적으로 봤을 때 그럭저럭 괜찮은 표면적인 '회개'는 불충분하다는 이야기다. 심리적으로 봤을 때 치료가 된 것 같아 보이는 '감정적 해소'가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간과 상황만 달라질 뿐 넘어짐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팀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복음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 복음 접근법
'거짓말, 사기, 폭력, 중독 등' 행동 너머의 진짜 죄, 우상숭배를 회개해야 한다. '우울감, 실패감, 나쁜 기분 등' 느낌 너머의 진짜 죄,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에서 행복을 찾으려 했던 우상숭배를 회개해야 한다. 오직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운 존재라는 것을 새롭게 인식할 때 비로소 우상의 권세가 깨진다(롬 6:14).
복음 접근법은 마치 손전등과 같다. 이것을 들고 우리의 삶 구석구석을 예수님과 조밀하게 살필 때 진정한 회개가 가능하며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과 사랑 안에 안식할 수 있을 것이다. 복음에 대한 믿음이 성장하며 깊어진다는 것. 이것을 진지하게 꿈꿔본 적이 있는가? 동기가 새롭게 만들어지면 자기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며 정체성이 달라지고 세상을 보는 방식도 바뀔 것이다. 공동체는 그래서 필요한 것이고, 믿음의 동역자들이 그래서 필요한 것 아닐까.
2주 뒤에 이어질 Chapter 4. '공동체-변화의 장' 시간이 되기 전까지 본책 17P, 79P, 89P에 있는 질문들을 더 묵상해보며 정리할 것이다.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정리한 데로 한 걸음씩 예수께 나아가기를 기도할 것이다. 이제 나의 피상적인 행동과 허망한 감정들에 집중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