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를 끝마치고 오래된 건물의 온갖 폐기물을 다 싣고 인부들은 떠났다. 한동안 부수고 자르고 내던지는 소리에 소란스러웠던 현장은 적막하리만큼 고요해졌다. 다 덜어낸 공간 앞에서 큰 숨을 내쉬어본다. 해결해야 할 거리들이 산적했지만 오래 묵은 체증이 사라진 듯 가벼워졌다. 아이러니였다.
모래알이 신발 바닥에 닿아 그슬리는 소리가 천둥같이 느껴질 만큼 고요한 가운데 마치 회한을 다 털어낸 것처럼 공간을 찬찬히 둘러본다. 뜯어보아야만 아는 상황이니 다 뜯고 보자 했다. 그러나 막상 이렇게 여실히 드러난 민낯으로 마주하고 나니 황당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고 그저 겸허히 수용할 뿐이다.
벽을 트고 창턱을 털어낸 공간이 180도 달라진 건 더 이상 놀랍지 않았다. 고심한 끝에 천장을 털어낸 각 룸의 발코니가 꽤나 괜찮은 공간이 되어 있었다. 천고를 높인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높은 창에 맞추어 테이블을 짜고 앉아 커피 한 잔 곁에 두고 글 쓰는 모습이 한눈에 그려졌다. 털어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라며 미쳐 털어내지 않았던 창이었지만 천고를 높이고 오히려 창의 높이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변화를 맞이한 곳도, 손댄 듯 아닌 듯한 공간도 마치 전혀 다른 공간이 되어버린 공간도 다시 태어나기 충분했다. 다시 본 현장에서 상상 이상의 곳곳이 눈에 들어오고 그렇게 살며시 <강정동>은 내 마음에 스며들고 있었다.
철거 완료-모두가 떠나간 고요한 현장
띁어놓으니 마음이 조금은 더 급해졌다. 외부 문이며 창을 다 뜯어내니 안인데 꼭 밖인 것 같았다. 안이지만 결코 안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렇다고 밖은 아닌데. 창을 짜 넣을 차례였다.
사실 철거가 마무리되길 얼마나 기다렸던가. 철거가 끝나는 날 늦은 오후 마치 '이때다'라는 듯 현장에서 D창호 K사장님을 만났다. 창과 문을 짜 넣을 벽면의 정확한 사이즈를 다시 한번 실측하고 오더 할 사이즈와 구성을 최종적으로 정하기 위함이었다. 이리저리 꼼꼼히 재고 세부적인 것을 정한다. 어떤 문인지, 프로젝트 창인지 시스템 창인지, 어느 쪽으로 문을 열 것인지, 손잡이는 어떻게 할 것인지. 창 안에서 사이즈 분할은 어떻게 할 것인지. 끊임없이 선택의 시간이 이어졌다.
건축물의 색을 안색이라고 한다면 건축물의 표정은 바로 창호다. 건물 디자인을 바꾸지 않는 한 건축물을 표정을 바꿀 수 있는 가장 큰 오브제가 창호라 생각한다. 창호의 종류, 구성 방식과 디자인, 유리의 질감과 색 등 다양한 조합으로 얼마든지 감각적으로 세련된 무드를 가지고 올 수 있다. 한눈에 보기에 건물의 가치를 확실히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에 창호만큼은 아끼지 않았다. 창호는 이건창호나 LG 같은 브랜드에서부터 다양한 구성과 소재 등 다양한 만큼 가격도 천차만별. 창호는 투자하는 만큼 만족도가 확실히 높아진다. 개인적으로는 소리에 매우 민감한 나로서는 방음이 잘 되는 내구성 있는 창호시스템이 선호하는 편이라 가능한 한 최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선택은 과감했지만 결과는 탁월했다.
창의 변화로 전혀 다른 무드가 된 공간
창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늘 논리적인 설명을 충분히 해주는 D창호 K사장님이 맡아서 해주시기로 했다. 적어도 창호만큼은 타 업체와 비교견적을 하지 않았다. 그간 봐온 정확하고 믿음이 가는 작업은 물론 제주 강풍에 유리라도 깨지고 갈라지면 손님 오는 곳에 위험하고 보기 싫으면 안 된다며 늘 예상보다 빨리 교체해주었던 그의 배려심을 알기에. 창호에 관한 것은 늘 그를 믿고 간다. 작업 다 된 현장을 둘러볼 때에도 예상과 다른 설치가 되어 있더라도 '왜 이래 놓았지?!' 라 생각하기보다는 '무슨 이유가 있겠지'라고 먼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내가 있던 없던 큰 변화 없을 공정이기에 일이 있을 때마다 걱정 없이 서울로 움직였다. 그동안 K사장님 창호팀은 시간 될 때 알아서 틀 작업하고 공정에 맞게 문틀 끼우고 유리 끼우고 알아서 다 마무리해놓으셨다. 마치 우렁각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