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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드는 사람 지민규 Aug 22. 2021

이반지하, 우리 사회의 새로운 생존 레퍼런스

이반지하 에세이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감상문

이반지하 에세이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책이 너무 좋아 사고 또 사다 보니 다섯 권이 됐다. 두 권은 내가 갖고 세 권은 친구들에게 선물할 것이다.

여느 때처럼 읽을 만한 책이 있나 온라인 서점을 둘러보다 이 책을 발견했다. 이반지하?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조금 찾아보니 2004년부터 활동한 퀴어 아티스트인 모양이었는데, 문학동네라는 메이저한 출판사에서 마이너하게 보이는 이 아티스트를 어떤 이유로 소개하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큰 궁금증이었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저 주말에 읽을 책 한 권으로 선택할 만큼의 가벼운 호기심 정도는 들어 이 책을 구매하게 된 것이다. 가벼운 호기심, 처음 시작은 그랬다. 책을 모두 읽고 감상문까지 쓰는 지금은? 나는 이반지하라는 예술가에게 엄청난 호기심을 느낀다.




책은 다섯 개의 파트(퀴어 이반지하, 노동자 이반지하, 생존자 이반지하, 유머리스트 이반지하, 예술가 이반지하)로 나눠 이반지하라는 인물이 생물학적 여성으로, 퀴어로, 노동자로, 또 예술가로 그간 어떻게 생존해 왔는지 이야기한다. 책의 제목대로라면 '이웃집'에 있을 법한 친근한 퀴어의 좌충우돌 이야기여야 마땅할 테지만, 이반지하의 삶은, 이반지하의 생존은 친근과 거리가 멀다. 생물학적 여성이면서 퀴어이고, 또 한국 땅에서 "예술하고자 한 죄"를 짓고 살아왔으니…, 과연 절로 숙연해지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무작정 우울하고 무거운 이야기들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재밌다. 진짜 재밌다. 웃기다. 진짜 웃기다. 원래 좋아했던 아티스트도 아니고, 그저 가벼운 호기심으로 고른 책이었는데, 앉은자리에서 한달음에 읽을 만큼 재밌고 웃겼다. 글로 사람 웃기기 정말 어렵다는 거 모두 잘 알 테다. 이반지하는 그 어려운 일을 별것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해내는 프로페셔널 유머리스트였다.


웃음 뒤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는 메시지는 칼날 같아 따가웠다가, 얼얼했다가, 또 먹먹하고 그런다. 그러면서 뭉근한 위로를 준다. 위로, 그 위로! 요즘 사람들이 너나 할 거 없이 주려고 하는 그 위로가 이 책에 그득그득 담겨있다.


이반지하의 위로가 특별한 이유는 위로를 의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탄압과 차별, 트라우마 속에서 이반지하가 지금껏 생존해냈다는 그 사실만이 뚜렷하게 남아 읽는 이에게 위로로 가서, 닿는다. 온몸을 다쳐가며 획득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전달하는 위로는 일반의 위로와 무게감이 다르다. 묵직하다. 이반지하가 생존해냄으로써 우리에게 건네게 된 위로는 묵직하다.


이반지하가 생존했다는 사실은
퀴어 사회, 여성 사회를 넘어
우리 모두의 사회에 보편적으로 스며들어,
따뜻하고 새로운 생존 레퍼런스가 된다.


이반지하의 글에서 나는 세상에 대한, 사람에 대한 적지 않은 사랑을 느꼈다. 책에서 이반지하는 말한다. "이반지하는 날 때부터 많은 갈등과 트러블을 안고 이 땅에 태어나는 겁니다"라고. 나는 이반지하가 "날 때부터 많은 갈등과 트러블을 안고 이 땅에 태어나는" 때 사랑도 함께 안고 태어났다고 봤다.


생각해보자. 정상과 비정상, 강자와 약자를 너무나 손쉽게 가르는 이 세상에서 이반지하는 생물학적 여성인 동시에 퀴어로 살아왔다. 또, 나를 존재하게 만든 사람들로부터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얻었다. 이 세계에, 이 세계의 사람들에 잔뜩 환멸이 나 비관으로 일관했다 해도 납득이 갈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자신의 생존기를 나누며 또 다른 누군가의 생존을 빈다. 헤테로고 퀴어고 함께 생존하자고 북돋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쉼터의 "어메니티"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한다. 나는 이런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이 책에 드문드문, 그러나 결코 적지 않게 보이는 사랑의 마음들에 나는 무척이나 따뜻함을 느꼈다.


이 세상은 저마다의 이유로 생존하기 힘겨운 세상이다. 나는 퀴어도 아니고, 생물학적 여성도 아니지만, 나만의 이유들로 사회의 탄압을 받고, 차별을 받으며 온몸에 멍이 든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런 것은 특별한 사람만 겪는 게 아니니까. 그러므로 이반지하가 생존했다는 사실은 퀴어 사회, 여성 사회를 넘어 우리 모두의 사회에 보편적으로 스며들어, 따뜻하고 새로운 생존 레퍼런스가 된다. 각자의 버거운 삶을 생존해내는 데 이반지하의 신선한 생존력이 훌륭한 참고가 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좋았던 이유를 한 가지만 더 말하자면, 나는 이반지하가 퀴어라는 정체성에 갇히지 않았다는 점이 좋았다. 이반지하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은 그가 가지고 있는 많은 정체성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퀴어라는 소수자성이 이반지하의 전부로 작용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유일무이 퀴어 아티스트에게 요구될 법한 운동적 틀에 자신을 맞추지 않고, 고유한 개인으로 존재하는 모습이 참으로 멋스러웠다.


좋았던 점을 더하고, 또 더하고 싶은데 그러자면 끝도 없을 것 같으니 이 정도에서 마무리 지어보겠다. 정말 마지막으로 딱 한 가지만 더 말하자면! 이 책에는 현대미술가이기도 한 이반지하의 그림이 중간중간 적절하게 배치돼 글에 힘을 담뿍담뿍 싣는다. 책을 차례로 넘기며 이반지하의 그림만 감상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이반지하의 색채는 확실하다. 그 색이 무슨 색이냐 하면, 선명한 보라색? 채도 낮은 빨간색? 푸르스름한 색? 쿨톤의 회색? 새까만 색?…, 워낙에 입체적인 인물이라 콕 집어 말할 수 없지만, 색이 난다는 것, 빛이 난다는 것은 확실하다. 책에서 이반지하의 고유한 색채들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반지하가 이 책에서 본인의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았음을 동시에 느낀다. 문학동네라는 "큰 유통"을 기회로 삼아 자신의 전부를 설명하기보다는, 이 정도 이야기면 헤테로 사회가 거부감 없이 이 책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적절한 선에서 눙치듯 서비스한 느낌이다. 그러므로 책을 모두 읽고서도 이반지하를 이해하게 됐다는 느낌은 가질 수 없었다. 다만, 이반지하에 대한 엄청난 호기심을 가질 수 있었다.


이반지하의 생존은 완결되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반지하는 예술가로서 숱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생존하고, 또 생존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할 다양한 "문화적 혜택"을 한 명의 팬(나는 이 책을 기회로 이반지하의 열렬한 팬이 됐다)으로서 누릴 생각을 하니 내 인생에 +100 정도의 즐거움이 생긴 기분이다. 반가운 예술가가 오랜 세월을 생존해, 내 눈앞에까지 나타났다. 앞으로 나는 이 예술가에게 절대 눈을 떼지 않을 것이다.





*아래 책 선물은 신청 마감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지민규입니다. 저는 이 책이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제가 쓴 감상문을 읽고 그래도 3명 정도는 이 책에 흥미를 느껴 실제 구매까지 하셨으면 하는데, 제 글솜씨가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걸 알기에 저의 이런 소박하지만 원대한 소망이 이뤄질 확률은 낮을 것 같네요.


그래서 그냥 심플하게 이런 일을 벌여볼까 합니다. 이 글을 읽고 이 예술가에게, 또 이 책에 흥미를 느낀 분들은 제 메일(jiminkyou@naver.com)로 연락해주세요. 제가 책을 선물하겠습니다. 다만, 제 주머니 사정도 있는 관계로 선착순으로 세 분만 받겠습니다.


오픈 카카오톡 채팅방에 초대 후 제가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책을 선물 드리면, 받는 분께서 직접 주소를 입력하시면 돼 개인정보 노출 없이 선물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으시면 YES24 통해 보내드리려 하는데, 이 경우에는 연락처와 주소, 성함 정도의 개인정보를 어쩔 수 없이 받게 되겠네요. 자세한 사항은 메일 주시면 안내하겠습니다(우선은 개인정보를 적지 마시고 희망한다는 메일만 주세요!).


별스럽다면 별스러운 이벤트인데, 저는 이 예술가의 존재를 우리 사회에 조금이라도 더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제 브런치 글을 읽은 분들께도 책을 선물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니, 희망하신다면 불편한 마음 없이 메일 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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