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기류의 시작

선생님, 이 우울의 끝은 죽음뿐인 것 같아요.

by 지민




작년을 기준으로 4년 전부터 앓아왔다고 했다. 왜 이제야 왔느냐며 토닥이는 의사 선생님 앞에서 기어코 눈물이 났다. 글쎄, 무엇이었을까.


되돌아보면 나의 성장에는 늘 고군분투가 따라왔다. 무언가 내 뜻대로 쉽사리 되는 일이 없었다. 나름대로 애쓰기를 수만 번, 애를 써도 되지 않는 일은 너무나 많았고, 애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씁쓸한 위안이었다. 그렇게 하나씩 애써 버텨왔던 것들을 놓아왔다. 아닐 걸 알면서도 붙잡고 있었던 미련이 문제였을까. 태생부터 잘못되었다는 끊임없는 자책과 후회들 그 모든 미련이 쌓여 나를 짓눌려갔던 것일까. 뚜렷한 이유를 안다면 내 아픔을 조금 덜어낼 수 있을까. 평탄할 줄만 알았던 사회초년생의 생활은 나의 난기류의 시작과 함께 전개되어갔다.

아침에 일어나 빽빽한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맡기고 회사로 향한다. 일찍이 출근한 동료들을 지나쳐 제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발랄한 성격의 이미지를 입은 나는 그 들의 건네 오는 대화에 웃으며 실없는 농담을 던진다. 사실 모든 대화가 달갑지 않지만, 그 들이 나에게 거는 기대에 부합하기 위한 노력이다.


주어진 업무가 있는데도 한 없이 미룬다. 내 능력 밖의 일이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순간 갑자기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고, 깜빡하고 잊어버리는 일들이 잦았다. 그렇게 끊임없이 실수를 한다. 그럼에도 나를 믿어주는 팀원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든다. 민폐만 끼치는 것 같아 면목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왜 이런지 나도 모르겠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수익의 절반을 언제 입을지도 모를 치장품들에 투자한다. 헹거가 쓰러질 정도로 아슬하게 걸린 옷들이 침대에 누운 내 발 끝을 스치며 괴롭힌다. 그래도 또 무언가를 사들이고 거울 속 내 모습에 영 만족하지를 못해 또 반복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내가 못난 탓일까.

날이 갈수록 제날에 퇴근하는 일이 없었다. 자정을 넘기고 피곤함이 극에 다다랐을 때도, 목적지인 닭장 같은 자취방은 나에게 정차된 지하철 속 한 켠의 자리와 다름없었다. 그 속에서 나는 또다시 숨을 쉬지 못할까 늘 두려움에 떤다. 막말로 진짜 미쳐버릴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가끔은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기엔 층수가 너무 낮나, 하고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다 생각한다.


비교적 퇴근이 이를 때면 집 앞을 정처 없이 배회하다 무작정 여의도행 버스를 타고 한강에서 내린다. 버스가 끊길 때까지 땀을 흘리며 자전거를 탔다. 그렇게 나는 너덜너덜해진 몸을 뉘어 쓰러지듯 눈을 감기를 반복하고, 또 아침이 오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눈치 없이 떠오르는 새로운 하루는 나를 놀리고, 뒤이어 다가오는 달콤한 주말조차 나에겐 그다지 달갑지 않다. 온종일 잠을 잘 수 있으면 모를까. 그럴 수도 없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오만 가지의 생각들이 부유하고, 그 속에서 점점 잠식되어갔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뭐라도 하고 싶은데. 그러나 전화 한 통으로 시시콜콜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도, 커피 한 잔 마시며 여유를 부리고 싶어도 함께해줄 그 어느 누구도 없었다. 혼자이고 싶은데 마냥 혼자인 건 싫었다. 일단 집 밖을 나선다. 불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정처 없이 걷고 걸었다. 애를 썼다. 숨 좀 쉬어보려고, 살아보려고 애썼다. 사회초년생의 삶이란 다 이렇게 팍팍하고 힘든 거였구나 하고 일반화했다.


그렇게 무심코 넘겨보려 하던 찰나 내 몸은 사이렌을 울렸다. 출근길의 지하철에서 나는, 숨 쉬는 법을 잊었다.


그 와중에도 지각을 우려한다. 지금 내리면 지각이고, 조금만 참자. 귀가 먹먹해져 온다. 수많은 인파 속에 주저앉아 심호흡했다. 나 진짜 왜 이러지? 아 머리도 아프고. 너무 잠을 못 잤나. 그래. 그래서 그런 줄 알았다. 조금은 너른 퇴근길의 지하철에서도 어김없이 조여 오는 때가 찾아올 때면 이름 모를 역에 하차해서 숨을 골랐다. 이 모든 게 괜찮았다. 괜찮은 줄 알았지만 다시금 번복된다. 내성이 없는 이유 모를 고통은 고개를 들려고 할 때마다 낯설고 아프다. 자연스레 아물 줄 알았던 형상 없는 상처는 더 곪고 짓물러 깊숙이 파고들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생은 나에게 있어서 죄와 같았다. 생은 그저 이 격동적인 난기류이며, 난기류를 그치게 해 줄 유일한 방법은 죽음이라는 도착지라고 여긴다. 나의 난기류는 부풀어 나는 우울을 껴안고 더욱 요동친다. 그렇게 수년간 내 생의 시차는 수백 번 바뀌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