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의 대면

우울을 전시하다.

by 지민




2019년 6월 14일, 나는 불가피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대체 후생의 이면에는 어떤 지옥이 있길래 죽음에 여한이 없는 삶을 연명하게 만드는지 울분에 받쳐 절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들 눈에 멀쩡해 보이는 건 꽤 쉬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멀쩡한 겉면과는 어울리지 않는 내 속은 곯고 짓무른 채 축적되어 지독한 악취를 풍겼다. 이 삭아버린 마음들을 폐기처분할 수 없다면, 적어도 악취를 풍기진 않아야 했다. 그렇다고 나는 내 손으로 삶의 끈을 잘라버릴 용기 따위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그저 당장 이 과잉된 감정을 배출해내야만 했다.

순간 눈 앞에 보인 메모지에 나를 삼켜버릴 듯 몸집을 부풀린 오만가지 생각의 실타래의 끝을 잡고 하나씩 매듭을 풀었다. 그렇게 두서없이 호소했다. 이 날 처음으로 나는 반쯤 죽어버린 나를 인정했다. 처음이었다. 가능하다면 한 치 앞을 모르는 내 목숨보다 남을 수 있는 글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혹시나 내 죽음에 이유를 묻는다면 내 글을 한 번 읽어봐 달라고.

몇 달이 지나고 우연히 그 글을 다시 펼쳐보았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꾹꾹 힘주어 새겼던 울분은 그 자리에 고스란히 남아있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막상 그때의 울분이 한없이 가여워 보였다. 글 속의 나는 지금의 나를 위로했다. 이때부터였을까.

그 이후 나는 내키는 대로 써 내려갔다. 마치 대나무 숲에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듯이, 음침하고 비밀스러운 마음들을 질러냈다. 노트와 펜을 쥔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솔직했다. 그렇게 작년부터 서너 개 정도의 마침표로 끝내는 짧은 문장의 글을 시작으로 느리지만 그래도 꾸준히 글 쓰는 시간을 만들어왔다. 기분이 내키는 대로 썼다. 어떤 날에는 한 대상을 향한 끊임없는 미움을, 열등감에 몸서리치는 부끄러운 나의 마음을, 혹은 사랑에 대한 애달픈 진심을. 그리고 현실을 향해 쏟아내는 악에 받힌 절규를 썼다. 정체 없이 부유하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을 붙잡아 글로써 정리하다 보면 어디에 뿌리내렸는지 모르는 그 부정적인 요소들이 눈에 띄게 된다.

지독한 면피 주의였던 나와의 대면. 나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피하려고만 하다 보니, 내가 아닌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내가 속한 환경에 책임을 전가했다. 그렇게 나를 짓눌려 허덕이게 했던 무형의 감정들이 형체화 되어 나를 대면했다. 나는 그들과 대면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지난 일의 후회는 무용함을 받아들이고 나를 다독인다. 하루를 가볍게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나는 글 쓰는 걸 놓지 않아야만 했다. 그렇게 글은 나를 지켜주었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알게 된 이후로, 매 순간 새로운 삶으로 채워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세상살이가 전보단 가볍다. 전보단 만물에 적당히 초연해진 것 같기도. 빛이 닿는 책상 앞에서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며드는 요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