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누피가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
제주에는 수많은 테마파크가 있는데 그중 가장 추천하는 곳은 이곳이다. 친구가 추천해 줬고, 공항에서도 스누피가든 사진을 보고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곳이다. 10년 전에 제주도에 갔을 때만 해도 스누피 가든은 없었고, 어렸을 땐 곰돌이 인형이 좋아 제주도에 갈 때면 항상 테디베어 박물관을 들렸던 기억이 난다. 찾아보니 이곳은 2020년에 개장한 곳이었는데 최근에는 루나폴(2022년), 무민랜드(2020) 등이 개장하며 신세대 콘셉트의 테마파크들이 개장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 제주에 갔을 때는 자연만 있는 곳이거나, 내부만 둘러볼 수 있는 박물관들. 이렇게 느껴졌는데 이곳은 자연과 스누피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제주의 자연 있는 그대로를 관람하거나 박물관을 가는 것도 좋지만 지형이 험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인공적이지도 않은 이곳은 여유의 공간이었다. 어디에서 사진을 찍어도 인생샷이 나와서 즐거웠고 코스도 굉장히 길었다. 이곳을 다 도는데 우리 가족은 2시간 정도 걸렸는데 규모가 8만 2천500㎡(약 2만 5천 평) 일 정도니 볼거리가 어마무시하게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오늘 오후는 쉬자
스누피가든을 들어서는 순간, 스누피와 찰리, 샐리브라운 친구들이 피너츠 언덕에 누워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야외가든 중 '소설왕 스누피 광장'의 일부이다. 스누피가 드는 스누피의 대사 "일단 오늘 오후는 쉬자"를 콘셉트로 하여 평화로운 분위기이다. 저 친구들 옆에 같이 누워 하늘을 보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집에 갈 때쯤엔 노을도 졌는데 매일매일 저렇게 누워있고 싶었다.
스누피 가든은 가든하우스와 야외가든으로 나뉜다. 먼저 실내인 가든하우스로 들어가 보았다. 가든하우스에는 5개의 테마홀이 있으며 실내에서 스누피를 만나볼 수 있다. 테마는 '관계, 일상, 사색과 휴식, 행복, 상상'이고 카페와 기념품숍도 있었다.
실내 가든하우스에는 피너츠 에피소드의 컷만화와 관계도, 스누피의 변천사와 작가인 찰스 M. 슐츠에 관한 이야기, 각종 드로잉이 있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사실 스누피가 그려진 가방과 여러 굿즈를 가지고 다니면서도 오래전에 만들어진 만화라 본 적은 없었는데 이렇게 스누피를 알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스누피 컷만화들을 구경했는데 어린이 대상인 것 치고는 내용이 꽤나 교훈 있다. 짤막짤막한 이야기가 진행되고 마지막엔 "걱정은 단순히 시간낭비일 뿐이야.", "인생에서 불쾌한 일들을 피하려 드는 것은 잘못이야."같은 멘트로 마무리되는데 만화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위로도 받고 배우기도 했다. 스누피가 강아지인데 견(犬)생 2회차의 비글인 건지 나보다도 똑똑한 것 같았다.
참여형 전시라 찰리브라운네 집 문도 열어볼 수 있다. 스누피 캐릭터들과 횡단보도를 건너도 좋다. 영상물을 보고, 공중전화기로 스누피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도 있다. 단순히 전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참여하며 만화 속으로 들어간 것 같아서 더 재밌었다.
실내 관람을 마치면, 야외가든으로 연결된다. 야외는 실내보다 볼거리가 더 많았는데 호수도 있고 제주의 자연물과 함께하는 스누피는 힐링 그 자체였다. 야외가든도 테마가 있다. '소설왕 스누피 광장, 비글스카우트 캠프, 피너츠 사색 들판, 찰리브라운의 야구잔드 광장, 피너츠 컬러가든, 스누피 페르소나 암석원, 호박대왕의 호박밭, 라이너스의 담요 숲, 우드스탁의 빅 네스트, 웜 퍼피 레이크, 루시의 가드닝 스쿨' 이렇게이다. '소설왕 스누피 광장'은 앞에서 보고 왔고, 사진을 못 찍은 공간들도 있다.
나는 발 닿는 곳으로 자취를 옮겼는데 둘러보는데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으며, 워낙 넓기 때문에 지도를 참고하는 것도 좋다.
'호박대왕의 호박밭'은 핼러윈의 콘셉트로 꾸며져 있었다. 스누피에서 라이너스는 핼러윈마다 호박대왕을 기다리는데 스누피가든이 이를 재연해 놓았다. 이렇게 야외공간은 캐릭터들 하나하나의 공간을 마련해 놓았는데 그래서 만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제주 자연 암석과 이끼가 있는 곳곳에 스누피들이 숨어 있다. 자세히 보면 스누피가 입고 있는 옷들이 다 다르다. 어떤 건 병정 모양을 하고 있고, 조종사도 있고, 화가 난 스누피도 찾을 수 있다. 실제로 만화 속 등장하는 스누피 수식어만 100개가 넘으며 이를 '스누피 페르소나'라고 부른다고 한다. 상상력 많은 스누피답게 한 가지 모습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공간도 꽤 넓어 길을 걷다 보면 각기 다른 스누피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루시의 가드닝스쿨'은 정말 학교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빨간 벽돌집의 학교 안에 들어가면 드로잉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고, 루시는 방울토마토, 로즈메리, 옥수수를 아기자기하게 기르고 있었다. 이곳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듯한 느낌을 내었다.
찰리브라운의 야구광장이 있었는데 찰리브라운이 시구 중이었다. 이 광장은 평지로 되어 있어 여기저기 뛰어노는 아이들이 많았다. 오른쪽 사진은 '찰리브라운의 야구광장' 구역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귀여워서 가져와봤다. 찰리브라운도 걱정이 참 많은 모양이다.
스누피가든 산책이 끝나갈 때 즈음 '찰리브라운의 야구광장' 앞 '피너츠 사색들판'엔 사색담장에서 고민에 잠겨있는 듯한 캐릭터들이 있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사색에 잠겨 보았다. 스누피 등장인물들은 어린데도 고민도 많이 하고 사색하는 성숙한 친구들 같았다. 만화 스누피와 함께한 독자들도 스누피와 함께 성장했을 것이다. 같이 간 부모님도 처음에는 어린아이들 가는 유치한 곳으로 생각했다가 한 번 더 생각해볼 만한 글귀들을 보고 어른들이 와서 보고 느끼면 좋을 장소라고 말하셨다.
스누피만 있는 게 아니라 스누피와 각자 개성이 두드러지는 친구들이 함께하는 곳이라 더 이야기가 있는 곳이었다. 나는 스누피가든을 겨울에 갔었는데 다른 계절의 스누피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오늘 하루만 해도 오후풍경도 좋았지만 달이 뜨기 시작했을 때, 노을이 지기 시작했을 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풍경도 바뀌었고, 그 모든 장면이 그림 같았다. 그리고 그만한 크기의 캐릭터들 때문에 내가 마치 만화 속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낭만, 휴식, 한가함의 스누피와 제주는 잘 어울리는 조합인 듯했다. 제주의 풍경을 기억 속에 간직하고, 느긋해지고 싶다면 이곳 스누피가든을 무척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