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네가 내 옆에 있는 것’, ‘내가 네 옆에 있는 것’만으로 엄마는 만족하고 행복하단다.
네가 중학교 1학년 즈음이었을 거야.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을 맞아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사주었지. 그때부터 넌 스마트폰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었어.
숙제도 안하고 새벽까지 스마트폰을 붙잡고 블로그와 카톡을 했지. 우리는 점점 더 많이 부딪혔고 으르렁거렸어. 넌 네 자유를 구속하는 날 이해하지 못했고 난 새벽까지 잠을 안자고 스마트폰을 하는 네가 많이 걱정됐지.
그 해 겨울의 어느 날을 기억할까? 네가 며칠 동안 학원에 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나는 마침내 폭발했어. 그게 벌써 여러 번이었지? 숙제도 안 해가고 단어시험에도 번번히 패스 못하고 혼자 남아서 나머지 공부를 하고 돌아오는 날들이 이어졌는데도 넌 나한테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 네 친구 엄마들 앞에서 난 번번히 바보가 되었어. 그건 나한테는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이었어. 왜냐하면 너에 대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우리 둘은 친구 같은 모녀라고 여전히 믿고 있었거든.
그리고 그날 난 절대로 해서는 안될 말을 너한테 했지.
“그렇게 말 안 들을 것 같으면 나가 버려. 나가서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넌 단호한 얼굴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어. 코트를 걸치고 맨발에 슬리퍼를 끌고서. 밖은 한겨울이었어. 난 네가 현관문 밖에 있을 줄 알았어. 아니면 아파트 계단에 앉아서 널 찾으러 나간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지.
그런데 넌 거기 없었어. 핸드폰도 받지 않았지.
5분, 10분. 미칠 것 같았어. 전화를 받고 온 아빠는 너를 찾아 주변을 뒤지고 다녔고 난 네가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핸드폰을 손에 쥐고 집안에 있었지.
15분, 20분. 째깍째깍 흐르는 시계 초침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마치 북 소리 같았어. 날은 추운데 맨발로 슬리퍼를 끌고 나간 네가 걱정돼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
진심이 아니었는데, 네가 변하기를 기대하고 그런 말을 했던 건데. 혹시라도 진심으로 생각하고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혹여 나쁜 사람을 만나서 이상한 곳으로 가 버리면 어떻게 하나.
별의별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지.
난 도저히 참을 수 없었어. 돌아오라고, 무조건 돌아오라고, 엄마가 잘못했다고 카톡을 보냈지. 무조건 돌아오라고. 절대로 혼내지 않겠다고. 아마 수십 번을 보냈을 거야. 그리고 조금 뒤에 너한테서 카톡이 왔지.
‘네’라고.
모두 합쳐서 1시간 안에 일어난 일이었어. 그런데 너를 기다리는 그 시간 동안 시계가 정지된 것 같았어. 시간이 멈추고 영원의 차원에 갇힌 것 같았어. 아니, 그 반대였나? 1초 1초가 한 시간처럼 느껴졌지.
아빠랑 같이 돌아온 너를 붙잡고 난 눈물 콧물을 쏟으며 울었어. 창피하다는 생각도 없었지. 네가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 지옥에서 살아온 것처럼 안도가 되고 기뻤어.
지금 생각하니까 너무 창피하다. 넌 이미 잊어버렸을 지도 모르지만 엄마는 평생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아. 그날 이후 엄마는 완전히 백기를 들었지.
네가 스마트폰으로 뭘 하는지 물어 보았고 새벽에 몰래 일어나 스마트폰을 하는 대신에 차라리 낮에 하라고 말했어. 막을 수 없다면 너의 세계에 동참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지. 너는 그렇게 조금씩 너의 세계를 나한테 보여주었어.
그날은 한 인간으로서의 모든 에고가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 와르르 무너졌던 날이었어. 난 확실히 깨달았던 거야.
네가 내 곁에 무사히 있는 것,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걸.
만에 하나 내 아집 때문에 너를 잃거나 너한테 나쁜 일이 생긴다면 엄마는 한시도 제정신으로 살 수 없다는 걸.
너라는 존재 앞에서 난 세상에서 가장 약한 사람이라는 걸. 자존심도, 신념도, 그 어떤 이유도 필요 없다는 걸 말이야.
그냥 ‘네가 내 옆에 있는 것’, ‘내가 네 옆에 있는 것’만으로 엄마는 만족하고 행복하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