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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형 딴짓마스터 Jun 12. 2017

도시꽃을 부케로 만드는 방법

사진가의 도시 #4

도시꽃 시리즈, 서울. 2011

"부케 같아요 선배!" - 2011년 과 후배로부터.


해마다 그 자리에 똑같이 피어나는 꽃들을 다르게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꽃은 매력적이지만 쉽게 만날 수 있는 만큼 누구나 촬영할 수 있는 피사체입니다. 화사하지만 상상 가능한 이미지죠. 다르게 찍어보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달리 바라볼 수 있을까요? 오늘은 대학생 때 찍었던 사진을 몇 장 준비해봤는데요. 오로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구입했고, 그 목적을 충분히 이뤄준 뒤 다른 주인에게로 떠난 추억의 카메라와 함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도시꽃 시리즈, 서울. 2011

필름 한 면에 사진 두 장을 찍어보기로 했습니다. 많이들 알고 계시는 '다중촬영'-혹은 다중노출-입니다. 지금도 일부 DSLR, 미러리스 카메라에 해당 기능이 탑재돼있습니다. 포토샵으로도 어렵지 않게 흉내 낼 수 있는 합성법이죠. 하지만 저는 전통적인 다중촬영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촬영한 필름을 되감아 그 위에 다시 셔터를 누르는 방식 말이죠. 그런데 사진 두 장을 겹치면 색이 많이 바랩니다. 저는 발색이 좋은 필름 카메라가 필요했습니다. 마침 가수 김동률 씨의 '출발' 뮤직비디오가 눈에 띄었습니다.


도시꽃 시리즈, 서울. 2011

뮤직비디오에서 제 눈을 끌었던 그 카메라. 콘탁스 G2입니다. 김동률 씨가 애용하는 사진기로도 유명하죠. 콘탁스는 한때 라이카와 양대산맥을 이룬 짜이즈 이콘의 대표 브랜드입니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화사한 색감과 쨍한 해상력을 갖춘 렌즈의 조합이 인상적이었죠. 대학생이었던 제게 라이카의 가격은 큰 부담이었습니다. 콘탁스를 대안으로 선택했지만 G2 역시 비싼 카메라에 속했죠. G2의 전작인 G1을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느린 자동 초점은 꽃을 찍으려는 제게 큰 장애가 되지 않았으니까요.


도시꽃 시리즈, 서울. 2011
도시꽃 시리즈, 서울. 2011
도시꽃 시리즈, 서울. 2011

콘탁스 G1에 애용하는 필름을 물리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대학 캠퍼스와 어린이대공원, 선유도공원, 구청 앞 화단 등 꽃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스튜디오가 됐습니다. 이제 흐드러지게 핀 꽃을 머릿속 사각형에 가두고 어떤 꽃을 덧입힐지 상상할 때입니다. 물론 상상한 느낌 그대로 담지 못할 때도 많았습니다. '필카'를 들고 있었고 결과물은 며칠 뒤에나 볼 수 있었으니까요. 순전히 '필'에 의존해 촬영해야 했습니다. 떠오른 이미지대로 나오면 나오는 대로, 예상치 못한 이미지가 나오면 그 나름대로 매력적입니다. '계획대로 이뤄졌을 때 느끼는 만족감'과 '의외성이 주는 쾌감' 덕분이죠. 결과물을 볼 수 없다는데서 오는 긴장감은 필름 카메라만의 매력입니다. 그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영역이 또 하나 있는데요. 그것은 다른 편에서 계속돼야 할 이야기입니다.


도시꽃 시리즈, 서울. 2011
도시꽃 시리즈, 서울. 2011

'필름은 감성이다'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예측할 수 없기에 그만큼 더 상상하게 되는 감정의 순환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필름이 상상력을 그려내는 도화지라면 다중촬영은 상상력을 표현하는 다채로운 물감입니다. 사진과 회화의 경계에 선 촬영법이기 때문이죠. 한 폭의 유화를 그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아직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있지만 편의성 때문에 디지털카메라를 집어 들게 됩니다. 직장인이 되면서 사진 찍을 시간이 줄고, 적은 시간에 더 많은 결과물을 얻어내고픈 욕심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더 필름이 그리운 것 같습니다. 한 대학생의 상상력을 끌어내 준 그날처럼 말이죠.



'사진가의 도시'는 제가 사는 매력적인 도시 서울의 순간과 여행하면서 만난, 만나게 될 다양한 공간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사진가의 도시'는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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