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영화리뷰 2023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이제 마블 스튜디오의 경쟁사인 DC 스튜디오의 수장을 맡게 되는 제임스 건 감독이 이적(?) 전 마지막으로 연출을 맡은, MCU '가오갤' 사가의 (일단은) 대단원을 장식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이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는 왜 감독이 이 마지막 작품까지도 반드시 자신이 직접 쓰고 연출하려고 했는지 그 마음이 짐작될 만큼 진심 어린 애정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누구 하나 무던하지 않은 각양각색 캐릭터들에게 골고루 쏟는 애정, 그들을 위한 가장 거대하고 소중한 모험을 만끽하다 보면 현재 살짝 방황 중에 있는 MCU를 우리가 가장 사랑했던 시절을 상기시키며 MCU의 진정한 매력이 이런 것이었구나 되새기게 됩니다. 결국 세계가 MCU를 사랑했던 것은 별나고 독보적인 세계관 이전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들 덕분이었다는 것을 말이죠.
타노스와의 결전에서 가모라(조 샐다나)를 잃은 이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분위기는 줄곧 술독에 빠져 있는 스타로드(크리스 프랫)를 비롯해 드랙스(데이브 바티스타), 네뷸라(카렌 길런), 맨티스(폼 클레멘티에프), 그루트(빈 디젤), 로켓(브래들리 쿠퍼)까지 전체적으로 우중충합니다. 그런데 그 우중충한 분위기를 깨고 하늘 위에서 난데없는 기습 공격이 들이닥치고, 이에 로켓이 큰 부상을 입습니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로켓을 가디언즈는 기필코 구해야 하지만, 로켓을 수술하려면 몸 속에 장치된 스위치를 해체해야만 하는 상황. 시간이 많지 않은 가운데 가디언즈는 로켓을 구하기 위해 또 다시 머나먼 우주로 모험을 떠납니다. 암호화된 스위치를 해체하기 위해 가디언즈는 로켓을 (대단히 영리하고 공격적이며 말을 할 줄 아는)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곳을 찾아가는데, 그 배후에는 잔악한 동물 실험과 생태계 파괴를 통해 우주를 '완벽한 세상'으로 만들려는 자인 '하이 에볼루셔너리'(추쿠디 이우지)가 있습니다.
다양해지는 캐릭터, 확장되는 세계관으로 MCU는 그 몸집을 나날이 불려 왔지만 어느 순간 버거워지기 시작한 것도 사실입니다. 많아지는 캐릭터들의 히스토리도 저마다 따라가야 하는데다가 멀티버스라면서 세계관이 넓어지는 걸 넘어 가짓수를 늘려가고, 극장용 장편 영화 뿐 아니라 OTT를 통한 시리즈물을 통해서까지 그 모든 것들이 전개되는 MCU라는 바다는 슬슬 범람한다는 느낌도 들었죠. 캐릭터 각자의 서사를 단단하게 구축하기보다 새롭게 들어서는 세계관을 소개하기 위해 캐릭터가 이용된다는 느낌도 적잖이 받았고요. 그래서인지 캐릭터에 대한 애착에 충실하여 저절로 세계관에 뛰어들 수 있었던 과거의 MCU가 그리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는 바로 그 그리웠던 MCU를 오랜만에 실감케 하는, 예기치 못한 3부작의 훌륭한 완성입니다. 궁극적으로 우주를 위한 것이 되긴 하지만 그 시작은 어디까지나 '친구를 구하기 위한 미션'에 뛰어드는 가디언즈의 모험은, 우리가 처음 이 별종 히어로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조목조목 상기시킵니다. 시대불명의 우주 어드벤처에 올드 팝이 이렇게나 잘 어울린다는 걸 처음 알게 해준 선곡의 감각이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빼곡하게 채우는 가운데, 유기체가 되거나 탈것이 되기도 하는 독특한 행성 디자인, 난장판 속에서도 현란하고 효과적으로 펼쳐지는 개인 및 팀플레이의 디테일한 연출, 때때로 심장을 철렁하게 하는 광대한 우주 전투 등 시리즈 중 최고 수준으로 크고 파워풀하고 섬세하게 구축된 액션 퀄리티도 유감없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를 빛나는 대단원으로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캐릭터들을 향한 아낌없는 애정입니다. 그 애정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마음과도 그대로 이어지기에, 우리는 캐릭터를 넘어 영화와 세계를 향한 애정까지 깊이 느끼게 됩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까지 이르러 나타나는 캐릭터들의 성장은 팀으로서의 성장보다 개인으로서의 성장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습니다. 광활한 우주에서도 아웃사이더였던 그들이 비로소 동반자가 되어가는 과정에는 그들의 능력보다 그들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인정이 있습니다. 3편까지 왔다고 해서 그들의 호흡이 찰떡 같아지진 않았습니다. 여전히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소리지르기 바쁘고 계획도 어긋나기 일쑤죠. 그들의 유대는 '누구가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능력과 매력이 아니라 존재를 향한 애정으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조건이 거의 없다시피 한' 유대는 그 어떤 외부로부터의 위협에도 깨지지 않고,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한다는 것을 증명해내죠. 지난 두 편동안 베일에 싸여 있다 이제야 드러나는 로켓의 과거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이야기였지만, 이런 점에서 매우 긴밀히 통합니다. 영화는 로켓을 구하려는 가디언즈 동료들의 여정과 로켓의 과거를 자주 교차해서 보여주는데, 너무나 혹독해 누군가는 똑바로 보기 힘들지도 모를 로켓의 생애와 그런 로켓을 살리려 자기 목숨을 거는 가디언즈의 병치는 서로의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뿐인 가디언즈의 우정을 빛나게 합니다. 무수히 많은 종류의 존재들이 그만큼의 무수한 매력과 흠결을 갖고 살아가는 드넓은 우주라는 곳은, 완벽에 대한 강박으로 학대되고 통제될 곳이 아니라 그 모습 그대로 서로를 보듬고 품어야 할 곳이라는 것. 그런 우주의 수호자로서 안 맞고 귀찮고 신경쓰이는 친구들을 목숨 걸고 구하는 그들의 '가디언즈'로서 자격은 차고 넘칠 것입니다.
불행한 과거를 지닌 로켓을 비롯해 영화가 어느 때보다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리는 가디언즈 멤버들을 우린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인피니티 워' 때 대재앙을 자초했다고 자인하는 스타로드는 진정한 캡틴이자 과거와 화해하는 어른으로서 기특한 성장을 보여주고, 시도때도 없이 민망한 농담이나 날릴 줄만 알았던 드랙스는 비로소 본연의 힘과 함께 숨겨져 있던 귀한 능력을 발휘하며 활약합니다. 맨티스는 가디언즈 곁에서 자존감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며 서로를 있는 그대로 애정할 수 있게 하는 등불 역할을 하며, 그루트는 사춘기를 무사히 지나 팀의 결속력을 증명하는 구심점으로서 든든한 '버팀목' 자리를 지킵니다. 여기에 이제는 더 이상 '화가 많은 라쿤'으로 바라볼 수 없는 고맙고 미안한 존재 로켓까지, 이번 3편까지 본다면 가디언즈 멤버 누구도 공평하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배우들은 어느 때보다 흐뭇한 호흡으로 그렇게 자기 모습 그대로 성장해 가는 가디언즈를 유쾌하게 그려냅니다. 한편 이번 영화의 메인 빌런인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극의 특성상 '강함'보다는 '악함'이 두드러지는 인물인데다 동물 학대와 같은 매우 현실적인 악행을 저지르므로 매력적으로 보이면 곤란한 인물이지만, 추쿠디 이우지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로 제 역할을 잘 해냅니다. 이번 편의 메인 빌런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던 워록(윌 폴터)의 활약은 예상한 방향이 아니었지만, 독특한 캐릭터로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1편이 나왔을 때에는 MCU에서 가장 이단아 같은 영화로 보였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3편까지 나온 지금은 그리웠던 MCU 감성의 정수를 끝까지 가장 잘 지키고 있는 이들이 되었습니다. 그 MCU 감성이란 부족하고 철없지만 사랑하고 성장하는 이들을 향한 애정, 그럼으로써 우러나는 세계를 향한 애착입니다. MCU와의 연결 요소까지 최소화하면서 제임스 건 감독은 가디언즈의 마지막 여정을 온 애정을 쏟아 그려냈는데, 불완전한 존재들이 서로 사랑하며 현재를 즐기는 친구들 아니 가족들이 있는 그 진짜 '갤럭시'가 무척 그리울 것만 같아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