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영화리뷰 2023 - <토리와 로키타>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는 보는 이가 반드시 인물에 이입해야 하기 때문에 늘 그들의 곁에서 시선을 거두는 적이 없는데, 그 카메라가 이번 신작 <토리와 로키타>에서는 아프리카계 난민 청소년들이라는 '약자 중의 약자'들에게로 향합니다. 인간을 향한 애정을 여전히 견지하면서도 세상을 향한 한층 냉철한 시선이 더해지면서 유독 마음이 아프게 하는 이 영화는, 온정과 낙관만으로 걷히지 않는 세상의 커다란 그늘과 그 어떤 가치보다도 앞장서 지켜져야 할 인간의 고결함을 함께 절감하게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벨기에로 밀항을 통해 넘어 온 난민 청소년 토리(파블로 실스)와 로키타(졸리 음분두)는 '남매지간'입니다. 정확하게는 밀항선에서 만난 사이지만 남매보다도 더 끈끈한 우정으로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죠. 고향에 있는 어머니와 동생들의 생활비와 학비를 보내야 한다는 책임감, 기에로 들여보내준 빚을 갚으라는 밀입국 브로커들의 압박, 여기서의 유일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토리만은 마음 편히 학교에 보내려는 애정까지 겹겹이 짊어진 로키타는 요리사 베팀이 판매하는 대마초를 전달하는 등 해선 안되는 일까지 감수하며 위태로운 생활 전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난민 청소년들을 위한 쉼터에서 지내고 있는 둘은 언젠가 체류증을 취득해 벨기에에 정착하는 것이 꿈입니다. 아동 학대를 받은 사실이 인정되어 이미 체류증이 있는 토리와 달리 로키타는 인터뷰를 거쳐 체류증을 취득해야만 하는데, 많은 사실을 요구하는 심사관 앞에 둘이 사실은 친남매가 아니라는 것을 비롯해 숨길 것이 많은 로키타의 처지는 많이 불리합니다. 체류증을 취득하는 것은 여의치 않게 되고, 급기야 가짜 체류증을 얻기 위해 로키타는 베팀의 위험한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이를 위해 로키타는 토리와의 긴 이별까지 감내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둘은 누구도 떼어놓을 수 없는 우정 안에서 서로를 찾아 헤맵니다.
다르덴 형제 감독은 매 작품 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하는 사실적이고 집요한 시선으로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 주목해 왔습니다. 그들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그들이 '만들어낸다'기보다 '따라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만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현실감이 살아있습니다. 극적으로 보이기 위해 굳이 내러티브와 캐릭터의 굴곡을 작위적으로 가공하지 않아도 세상은 충분히 녹록치 않고, 선의와 불의가 뒤엉킨 그 세상의 변덕은 인물들에게 뜻밖의 좌절과 찬란한 순간들을 모두 다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는 '예술영화답지 않게' 늘 조마조마해 하며 몰입하여 보게 마련이었는데, <토리와 로키타>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이는 토리와 로키타를 바깥에서부터 떠밀려 온, 불필요한 '잉여 인력'으로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눈초리가 선연하기 때문일 것이고, 늘 휴머니즘을 바탕에 두어 온 다르덴 형제의 영화치고는 특히 그 싸늘한 세상을 차갑게 들여다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차가운 시선은 다르덴 형제 감독의 태도가 돌변한 것이 아니며, 기댈 곳이라고는 서로를 향한 절박한 우정 밖에 없는 토리와 로키타를 지지하는 뜨거운 마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반드시 수반되어야만 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어지간한 신파극도 손을 내저을 만큼 가혹한 세상 앞에서 토리와 로키타는 너무나 투명하고 고결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매 순간이 간절한 아이들의 태도에 비해 그들을 둘러싼 어른들의 태도는 가차없고 무자비합니다. 어떻게든 체류증을 취득해야만 하는 아이들의 불안에 떠는 얼굴마저도 '많은 서류더미들 중 한 장'인 심사관들은 눈 하나 깜짝않습니다. 아이들을 자신의 떳떳치 못한 돈벌이에 이용하는 어른은 자신의 더러운 욕망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고용인의 권력'을 행사하려 듭니다. 물질에 눈이 먼 자들은 고향에 생활비를 보내려는 아이의 뒷덜미를 잡아끌고는 우리 빚부터 갚으라며 협박합니다. 서로를 만나야만, 서로와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견딜 수 있다는 아이들의 외침은 그런 어른들에게 성가신 엄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누군가에겐 절실한 삶이 어떤 이에겐 번거롭고 신경쓰여서 칼같이 걸러내야 하는 불순물이 되고, 어떤 이에겐 필요할 때 쓰다가 내다버리면 그만인 소모품이 되는 현실이 비춰지며 마음을 쓰라리게 합니다. 그리고 영화가 그처럼 싸늘하게 바라보는 현실과 나란히 놓이는 것은, 흰 옷자락을 선뜻 끄집어내 생채기에 묻은 피를 닦아주는 어떤 우정입니다. 인간다움을 걷어낸 제도와 범죄의 무자비함이 가슴을 쿵 하고 때릴 때, 그 앞에서도 단 한 올조차 손상되지 않은 토리와 로키타의 고결한 마음은 차가운 세상보다도 더 깊고 무겁고 오래 우리의 가슴을 짓누르는 것입니다.
어둡고 무거운 사회상을 건조하게 그리는 가운데에서도 다르덴 형제 감독은 두 아이의 이 고결함을 지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토리와 로키타를 향한 세상의 착취적인 태도를 보여준다고 해서 그들의 실상까지 착취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철저히 지양하는 것이죠. 일일이 보여주지 않아도 아이들의 참담한 실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영화의 사려깊은 접근으로 인해, 우리는 무정한 현실에 휩쓸려 가면서도 끝까지 그 맑은 얼굴을 잃지 않는 토리와 로키타의 모습을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화가 두 주인공을 향해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에서, 비전문 배우인 토리 역의 파블로 실스와 로키타 역의 졸리 음분두는 정제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진실한 연기로 착취하는 세상의 모진 모습이 아닌 착취에 굴하지 않는 인간의 광채에 주목하게 만듭니다.
영화에서 토리와 로키타는 이탈리아의 한 민요를 종종 부르곤 하는데 그 가사가 무척 재미있게 쓰여 있습니다. 그러나 엔딩 크레딧에 이르러서야 끝맺음을 알 수 있는 그 노래는 사실 아이들이 처한 세상을 가리키는 듯해 일면 통렬하기도 합니다. 먹고 먹히는,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세계의 생리에 주목하는 바람에 외면당하는 먹히고 착취당하는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는 그 얼굴들이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 우리에게 건네는 물음에 흔쾌히 응답할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무심코 외면하게 될지. <토리와 로키타>는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지만 카메라가 데려다 줘야만 만날 수 있는 어떤 세상으로 우리를 안내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할까 부단히 고민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우리가 알아야 할 세상과 지켜야 할 사람들을 또 한번 만나게 되는 중요한 영화입니다.
+ 시사회 무대인사로 만난 다르덴 형제 감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