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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Apr 16. 2023

그가 그토록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던 이유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3 - <존 윅 4>

<존 윅 4>(John Wick: Chapter 4, 2023)


사별한 아내가 남긴 반려견을 잃은 전직 암살자의 복수'라는 소박한(?) 내용으로 시작된 '존 윅' 시리즈는 전 세계를 아우를 만큼 커지며 이번 네번째 편 <존 윅 4>에 이르렀습니다. 이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거대해질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만, 더 놀라운 것은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보존된 그 남자 '존 윅'의 진의였습니다. 한 남자의 각성을 계기로 들어선 처음 만나는 암살자들의 세계와 그 안에서 펼쳐지는 그의 지난한 액션 여정은, 단순히 볼거리와 돈벌이에 대한 욕심 때문이 아니라 거대한 세계에 깊게 뿌리내려야만 했던 인간의 본심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그 과정이 지금껏 이 시리즈가 보여준, 아니 할리우드 액션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액션으로 채워져 있음은 당연하고요.


전편에서 존 윅(키아누 리브스)은 암살자들의 세계를 지배하는 최상위 조직인 '최고 회의'의 위협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바워리 킹(로렌스 피시번)의 도움으로 절치부심한 존 윅의 목표는 이제 사사로운 복수가 아니라 진정한 자유를 찾는 것이 되었습니다. 존 윅이 살아있다는 것을 안 최고 회의는 존 윅을 확실하게 끝장낼 인물로 새로운 실권자 그라몽 후작(빌 스카스가드)을 앞세우고, 그라몽 후작은 그 기대에 발맞춰 존 윅의 옛 동료인 케인(견자단)을 추적자로 고용하고 역시 존 윅의 동료인 코지(사나다 히로유키)가 있는 오사카의 컨티넨탈 호텔을 급습하는 등 비열하고 악랄한 방식으로 존 윅을 향한 압박에 불을 붙입니다. 존 윅은 자신의 진정한 자유를 찾으려면 이 세계를 끝장내야 한다는 것을 예감하고, 그라몽 후작과 직접 격돌할 각오로 최후의 반격에 나섭니다. 이 어렵지 않은 이야기를 <존 윅 4>는 2시간 50분에 육박하는 대서사시급 분량으로 풀어나가는데, 심지어 그 대부분이 액션으로 가득 들어차 있어 지루함과 늘어짐은 느낄 수 없고 거대함과 박력만이 느껴질 뿐입니다.


<존 윅 4>(John Wick: Chapter 4, 2023)


<매트릭스>로 '불릿 타임 액션'이라는 세기의 액션 혁신을 몸소 재현했던 키아누 리브스가, 20여년 뒤 환갑을 앞둔 나이에 속도나 CG의 도움을 받지 않은 채 순전히 맨몸으로 전작을 압도하는 액션 연기의 역사를 새로 남기리라곤 누구도 쉽게 예상 못했을 겁니다. '존 윅' 시리즈는 편을 거듭할수록 그 액션의 밀도와 규모를 키워가며 그것을 가능케 했는데, 이번 4편은 가히 그 꼭대기에 있다 할 만합니다. 총, 칼, 둔기, 쌍절곤, 자동차, 연필, 카드 등 갖은 도구로 2시간 50분 가까운 시간을 살뜰하게 채우는 액션의 볼륨은 압도적입니다. 존 윅의 동료 코지가 있는 오사카 컨티넨탈 호텔에서의 격투, 존 윅의 반격을 위한 과정으로 킬라 하르칸(스콧 앳킨스)와의 결전이 벌어지는 클럽 격투 등 이미 중반부까지만 봐도 눈이 즐거운 액션 장면들이 즐비하게 펼쳐지만 영화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파리에서의 최후 결전으로 들어서면 저런 연출이 가능한가, 어떻게 저런 장면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싶을 만큼 즉각적인 서스펜스와 카타르시스를 전함은 물론 미적으로도 뛰어난 액션 스턴트가 만족을 모르고 끝장을 보듯 쏟아집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손에 쥔 무엇이든 무자비하게 (심지어 총알까지도) 때려박는 계산적인 몸놀림을 힘겨운 표정과 절박한 의지로 시전하는 존 윅이 있어 장면장면의 인상을 더욱 강렬히 남깁니다. '존 윅은 고뇌할 시간에 한 명이라도 더 죽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제아무리 천하무적이라고 해도 점점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 속 존 윅의 저런 표정을 보고 있으면 비로소 그가 왜 그토록 다 죽이려고 하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존 윅' 시리즈가 구현한 암살자들의 세계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현실 세계와 철저히 유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뉴욕, 파리, 오사카 등 현실 세계에 섞여든 듯 하지만 일상의 세계와 암살자들의 세계는 물리적으로만 공존할 뿐 교류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보이지 않는 벽이 공고하게 세워져 있고, 그 벽 아래에서 무자비한 체제 속에 굴러가는 암살자들의 세계는 그 세계를 떠났다 반려견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살인본능의 눈을 뜬 존 윅을 무섭게 집어삼키고 잠식하려 들죠. 존 윅이 그나마 잠들 수 있었던 때는 본격적인 복수를 시작하기 전 아내와 반려견이 함께 살았던 집에서의 시간이 마지막이었을 정도로, 암살자들의 세계는 존 윅의 악명만 떨칠 수 있었을 뿐 그에게 안식처도 삶의 이유도 주지 못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세계는 마치 존 윅에게 '너는 언제까지나 이 세계의 일원이며 죽어야만 벗어날 수 있다'고 일갈하는 듯 합니다. 존 윅의 거대한 이름은 이 저주받은 세계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너무나 강하게 새겨버렸고, 그 흔적은 비로소 자유를 꿈꾸는 지금 웅크리고 있던 수많은 적들을 자극하며 온 세상이 존 윅을 향해 덤비게 하는 나비효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이미 '다정한 남편'으로서의 평범한 삶에 대한 꿈이 산산조각 나버렸지만, 존 윅은 비로소 암살자의 명예 아니 '오명'을 벗고 보통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이 최후의 전투에서 자신의 흔적들과 대면하고 그 여파와 정면으로 맞서게 되는 것이죠.


<존 윅 4>(John Wick: Chapter 4, 2023)


그러니 강렬하고 긴 호흡의 장면 연출과 존 윅의 필사적인 태도, 무자비한 폭력으로 이루어진 액션 장면들은 그 자체로 자신의 일부가 된 어둠의 세계를 부수어야만 자유를 꿈꿀 수 있는 존 윅의 고난에 대한 서사가 되는 셈입니다. 돌고 도는 자동차들 속에서 벌어지는 파리 개선문 로리 액션, 밀려오는 적들과 맞붙다 굴러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몽마르트르 222개 계단 액션 등 후반부 파리에서의 액션 명장면들은 존 윅의 이러한 서사를 더욱 또렷하게 상기시키며 눈요기 이상의 감정적 임팩트를 줍니다. 디테일한 감정 표현보다 이렇게 무감정 속 한 줄기 비애감을 드러내는 연기가 뛰어난 키아누 리브스는 대부분 직접 소화하는 액션의 힘과 고됨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도 감정의 파동을 놓치지 않으며 존 윅의 서사를 멋지게 완성합니다. 바워리 킹 역의 로렌스 피쉬번, 윈스턴 역의 이안 맥쉐인, 최근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난 샤론 역의 랜스 레드딕 등 시리즈의 기존 배우들은 물론 그라몽 후작 역의 빌 스카스가드, 케인 역의 견자단, 코지 역의 사나다 히로유키 등 존 윅의 세계를 더욱 넓고 두텁게 하는 새 인물들의 연기 또한 기품 있게 펼쳐지며 알고보니 한 인물을 넘어 한 세계의 이야기였던 '존 윅 연대기'의 피날레를 장중하게 장식합니다.


4편까지 본 '존 윅' 시리즈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에 맞서 자유를 부르짖는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역시 키아누 리브스의 대표작인 '매트릭스' 시리즈의 리얼 액션 버전인 것도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일관성과 완결성 면에서 (현재까지는) '존 윅' 시리즈가 우위에 있는 듯 합니다. 1편에 비하면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의 스케일로 한껏 확장하면서도, 오히려 이 모든 것이 '다정한 아내'와 '착한 반려견'과 함께 하는 '다정한 남편'의 삶을 꿈꾼 존 윅의 갈망에서 시작되었음을 잊지 않고 상기시켰고 그 덕에 존 윅의 행보는 두터운 의미를 지니게 됐기 때문입니다. 키우고 넓히면서도 견고한 뜻을 잃지 않은 이 기념비적인 액션 프랜차이즈는 익숙한 장르 안에서도 무한한 우주가 가능하다는 걸 실감하게 합니다.

<존 윅 4>(John Wick: Chapter 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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