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영화리뷰 2023 - <리바운드>
2012년 대한농구협회장기 전국대회에서 부산 중앙고 농구부가 교체선수가 거의 없는 6명의 선수만으로 결승까지 진출하는 기적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리바운드>는 제작 단계에서부터 예능에 활발히 출연중인 장항준 감독의 소개를 통해 알려진 영화이기도 하죠. 하지만 영화는 단지 감독의 열띤 홍보에 힘입은 덕을 넘어 상당한 만족감을 주는 영화인데, 그 이유는 만듦새도 만듦새지만 태도 때문입니다. 고작 10년 전에 있었던 실제 사건이기에 감정이 앞서는 미화나 과장된 서사 없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그려내는 이야기 속에서, 영화는 완주 자체가 기적인 출전을 눈부신 승리의 신화로 쓴 선수들의 젊음은 물론 더더욱 별나지 않은 우리의 삶까지 응원합니다.
2010년 부산 중앙고 농구부는 오랜 역사가 무색하게 침체의 늪에 있었고, 위에서는 이참에 농구부를 없애자는 여론까지 나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농구부에 애착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마땅한 지원을 받지 않고 그저 명목상 유지만 할 수 있게 하자며 설득했고, 폐지 여론은 가까스로 잠재워진 대신 학교에서 일하던 공익근무요원 강양현(안재홍)을 농구부 코치로 깜짝 발탁합니다. 외부로부터 코치 초빙할 돈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비용 절감 차원으로 때마침 중앙고 농구선수 출신인 그를 코치로 영입하게 된 것이죠. 그러나 유망했던 농구 경력을 끝낸 데 대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있었기에, 강양현 코치는 기왕 맡은 농구부로 일을 좀 내보려 했고 코치도 선수도 모두 처음인 중앙고 농구부는 팀워크도 제대로 맞춰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첫 경기에서 몰수패라는 치욕적인 결과와 마주합니다. 그렇게 농구부는 해체 수순을 밟는가 싶었지만, 양현은 좌절을 멈추고 자신이 농구에 진정으로 즐거워 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더 이상은 쫄리지 않고, 압박하지 않고, 하고 싶고 미치고 싶은 농구 그대로 만끽하는 마음으로 농구부를 다시 일으키기로 합니다. 한때 특급 유망주였으나 슬럼프에 빠진 가드 기범(이신영), 주목받는 선수였지만 부상으로 농구의 꿈을 접은 스몰 포워드 규혁(정진운), 축구선수 출신인데 어째 점프력이 더 좋은 센터 순규(김택), 길거리 농구만 해와 정식 출전 경력은 없는 파워 포워드 강호(정건주), 초등학교 때부터 농구를 했다는데 정작 뛴 경력은 없는 재윤(김민), 열정 가득한 자칭 마이클 조던 진욱(안지호)까지. 자신있게 상대를 기선제압할 선수가 마땅히 없는 최약체 팀과 새파란 신임 코치가 써내려갈 기적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공교롭게도 농구를 소재로 한 영화 세 편이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극장가에 걸려 있는 상황에서 <리바운드>는 다행히 선전합니다. 영화적 야심을 눈에 띄게 구현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이미 극적인 실화의 내용을 부끄럽지 않은 수준으로 옮겨내는 데 성공하죠. 농구 소재 영화인 만큼 가장 많이 주목할 농구 경기 장면에서는 코트 한복판을 역동적으로 누비며 선수들 한명 한명의 세세한 움직임을 좇음은 물론, 전반적인 경기의 흐름과 그 속에서 드러나는 선수들의 감정을 모두 포착하며 만족스런 경기 묘사를 보여줍니다. 실화가 워낙 극적이라 그 드라마틱함에 도취될 수 있음에도 이를 자제하며, 뾰족하진 않아도 정겨운 웃음과 넘치지 않는 감동을 적절히 버무리며 균형을 맞춘 장항준 감독의 안정된 연출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지닌 태도가 가장 호감 가는 부분입니다. 현실판 '슬램덩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극적인 실화가 소재인 데에 비해서 무척이나 소박하고 평범한 오프닝과 같이, 영화는 기적 같은 실화를 그리면서도 이것이 곧 우리의 무수한 삶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부산 중앙고 농구부의 성취를 강조하기 위해 상대 팀이나 대회 시스템을 '빌런화'하지 않습니다. 엔딩 크레딧을 보면 알 수 있듯 강양현 코치 역의 안재홍 배우를 비롯한 모든 배우들의 외모적 싱크로율에 심혈을 기울이고 부산 중앙고 농구부원들은 물론 매 이벤트마다 등장하는 선수들의 이름까지 실명을 그대로 사용할 만큼 이질감 없는 재현에 공을 들인 영화는, 다루는 이야기가 매우 극적인 사건이면서도 엄연히 우리 곁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다사다난한 일상의 한 순간'임을 주지하고 있는 듯 합니다.
영화에서 부산 중앙고 농구부에게 가장 큰 난관은 다섯 선수가 교체 없이 일주일간 매일 경기를 뛰어야 하는 상황 자체입니다. 이는 누군가가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 손을 댄 것도 아닌 원래 존재하는 농구 경기의 규칙이며, 인원 구성도 부산 중앙고 농구부의 선택입니다. 힘겨워질 수 밖에 없다는 걸 각오하며 출전을 결심한 그들은 예상대로 체력적인 장벽에 부딪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 멈추지 않고 끝까지 달렸는데, 그 배경에는 지금 이후로 언제 또 농구를 할 수 없을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 그러니 마지막처럼 뛰자는 절박함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크게 코치와 선수들을 움직인 것은, 실수하고 넘어져도 만회할 수 있다는 '리바운드'에 대한 믿음이었을 것입니다. 저마다 농구를 포기하거나 접어야 할지도 모를 상황에서 한 팀이 된 부산 중앙고 농구부는 선수들은 물론 코치까지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한번 이상의 실패를 겪은 그들 안에 내재된 조바심은 성급히 일을 그르치게 하거나 엇나가게 하는 과오를 범하게 하기도 하죠. 그러나 실수로 상대팀에게 넘어가고 만 공을 리바운드 기술로 다시 가로채와 우리 팀의 기회로 만들 듯, 상대팀의 철벽수비로 나갈 길이 막힐 때 다른 길을 찾음으로써 새로운 선수가 빛을 발할 기회까지 마련하듯, 좌절 뒤에는 반드시 만회와 반등의 기회가 따라온다는 것을 코치와 선수들은 경험으로 체득하며 확신하게 됩니다. 그렇게 '꺾이지 않는 마음'보다 '꺾여도 그냥 달리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는 코치와 선수들의 모습에 자연스레 우리의 삶이 오버랩됩니다. 꼭 유별난 위기와 시련이 없어도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적용된 규칙과 운동장 위에서 쉬지 않고 달리는 것만으로 이미 힘겨운 우리의 삶 역시 '리바운드'의 기회는 언제든지 존재함을, 우리 또한 그 숱한 리바운드의 기회를 살려내며 삶을 부지런히 드리블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젊은 배우들의 싱그러운 연기 앙상블 역시 <리바운드>의 선하고 긍정적인 활기를 북돋우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강양현 코치 역의 안재홍 배우는 웃음 포인트와 성장 모먼트, 투지의 메시지까지 함께 전하는 영화의 굳건한 축이 됩니다. 살짝 올드해 보일 수 있는 유머 코드도 그의 생활 연기에 실려 자연스런 웃음을 전하고, 중요한 터닝 포인트의 지점에서는 빤한 감동으로 흘러갈 수 있는 감정선을 인간미와 함께 부담없이 마무리하며, 메시지에 방점이 찍히는 순간에는 포장되지 않은 진정성을 담아내죠. 한편으론 그의 출세작인 <족구왕> 속 캐릭터의 연장선으로도 보이며 그가 성장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하는 흐뭇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넘어 팀의 가치를 꺠달아 가는 기범 역의 이신영 배우, 반항기 안에 농구를 향한 순수한 열정을 감춘 규혁 역의 정진운 배우, 상대적으로 덜 돋보일 수 있음에도 각자의 포지션에서 아낌없이 최선을 다하는 지금이 즐거운 순규 역의 김택 배우와 강호 역의 정건주 배우, 실전 경험 전무 상태에서 반전을 가져오는 재윤 역의 김민 배우와 열정 가득한 모습으로 팀의 에너자이저가 되는 진욱 역의 안지호 배우까지, 농구부원 역의 젊은 배우들 모두가 기복 없이 고른 연기력으로 분명 연기자들임을 아는데도 응원하고 싶어지는 부산 중앙고 농구부를 완성합니다.
<리바운드>의 엔딩 크레딧은 영화 속 코치와 선수들의 장면들과 그대로 오버랩되는 실제 경기 속 장면들이 장식합니다. 이만큼 높은 싱크로율로 재현했다는 장항준 감독의 자랑(?)이 깃든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가슴 졸이며 보고 한껏 카타르시스를 느낀 리바운드의 성취를 이들이 실제로 증명했으며, 그 성취를 이어 지금도 우리 곁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가슴 뭉클한 감정이 더 컸습니다. '실화의 힘'이란 실제로 일어난 극적인 이야기를 통해 그 이야기가 일어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동기를 얻음으로써 비로소 생기는데, <리바운드>는 성실한 연출과 연기, 드라마 이상의 의미를 짚어낼 줄 아는 태도로 바로 그 '실화의 힘'을 여실히 느끼게 하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