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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Feb 04. 2024

입 안에선 찰나여도 마음 속에선 영원하기에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4 - <웡카>


<웡카>(Wonka, 2023)


로알드 달의 동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주인공 윌리 웡카의 청년 시절을 다룬 영화 <웡카>는, 이미 우리에게 팀 버튼 감독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 속 인물로서 친숙한 인물의 과거를 그리기에 궁금증을 자아낼 만하지만 실은 (본디 로알드 달의 원작과도 거리가 있었던) 팀 버튼 버전과는 전혀 다른 터치의 윌리 웡카를 만날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익히 알려진 캐릭터 IP를 토대로 독립적으로 구축된 스토리랄까요. 개인적으로는 은은하게 돌아있는(?) 팀 버튼 식의 윌리 웡카도 마음에 들었었고, 이 영화를 연출한 폴 킹 감독의 전작인 <패딩턴> 시리즈 또한 무척 즐겁게 보았기에 어느 쪽으로든 얼마나 재미를 줄지 궁금했는데, 결과적으로 팀 버튼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보다는 <패딩턴>에 한결 가까운 인상으로서 달콤하고 따뜻한 감흥을 선사하는 영화였습니다.


청년 윌리 웡카(티모시 샬라메)는 세계 최고의 초콜릿 메이커가 되기 위해 초콜릿의 성지인 도시로 왔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샐리 호킨스)가 카카오열매를 모아 직접 만들어준 하나뿐인 초콜릿의 맛을 간직하며, 어른이 되면 꼭 그 때 그 맛으로 세계를 매료시키는 초콜릿 메이커가 되리라는 꿈을 품고 있죠. 최고의 디저트 상점들이 모인 '달콤 백화점'에 매물로 나온 공간을 바라보며, 웡카는 여기에 꼭 자신의 이름을 건 초콜릿 가게를 열리라 다짐합니다. 7년간 원양어선에서 일하며 세계 곳곳을 누빈 덕에 터득한 독보적인 초콜릿 레시피를 바탕으로, 웡카는 신묘한 재료들과 마법 같은 제조 기술로 완성된 초콜릿을 선보이며 삽시간에 상점가의 손님들을 매료시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상권을 독점해 온 세 초콜릿 재벌 - 슬러그워스, 피켈그루버, 프로드노즈가 카르텔을 이루어 온갖 계략으로 그를 무섭게 견제하고, 그들의 사주를 받은 경찰서장(키건 마이클-키)의 협박도 이어집니다. 한편 꿈은 무겁게 손은 가볍게 도착한 탓에 웡카가 가까스로 외상으로 몸을 누인 여관의 주인 스크러빗 부인(올리비아 콜맨)과 일꾼 블리처(톰 데이비스)는 되도않는 약관을 빌미로 웡카에게 터무니없는 빚을 지우고 그를 여관 인부로 묶어둡니다. 같은 처지로 여관에 발이 묶인 고아 소녀 누들(칼라 레인)의 도움으로 몰래 여관 밖을 드나들 수 있게 된 웡카는, 누들을 비롯해 같은 처지에 놓인 동료들과 힘을 모아 자신의 초콜릿을 팔고 여관을 탈출할 계획을 세웁니다.  


<웡카>(Wonka, 2023)


우리가 알고 있는 초콜릿 공장의 공장장으로 성공하기 전 집도절도 없던 시절 웡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에 <웡카>는 프리퀄로 받아들여지는 영화이지만, 웡카가 주인공이던 이전 영화와 아예 다른 노선을 취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버지에 얽힌 이야기를 다뤘던 팀 버튼 버전과 달리 어머니와 얽힌 추억을 다루는 것부터도 그렇고, 윌리 웡카의 성정 역시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웡카>에서 웡카는 반항과 일침이 아닌 꿈과 희망의 아이콘으로 그려집니다. 세상의 억압과 통제에 맞서는 무기이자 탐욕에 대한 일침의 수단으로서 초콜릿을 이용하던 이전의 웡카가 아니라, 어릴 적 맛본 잊지 못할 맛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저마다의 꿈과 희망까지 담아 특별한 초콜릿을 만들어 내려는 초콜릿 메이커로서의 순수한 꿈을 꾸는 웡카를 만나게 되죠. 또한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켜 은둔하는 '고독한 별종'이 아니라, 함꼐 살아가는 세상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괴짜 발명가로서 그려지기도 합니다. 7년간 머물던 배에서 떠나 도시로 향하는 도입부에서부터 알 수 있듯 영화 속 웡카는 예민하여 다가가기 어려운 인물이 아니라 누구라도 만나는 순간 매료될 수 밖에 없는 호감 어린 인물로 그려지죠. 이처럼 <웡카> 속 웡카는 한층 경쾌하고 인간적인 인물로 나타나지만 그가 처한 현실은 오히려 더 씁쓸한지도 모릅니다. 자본은 인간을 속박하는 가장 강력한 족쇄로서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하고, 기득권은 자신들이 거머쥔 부와 권력에 중독된 채로 그 기득권을 공고히 하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웡카의 희망찬 태도로 영화가 물들라 치면 사뭇 섬뜩한 그들의 탐욕이 심심찮게 찬물을 끼얹고는 하죠. 이런 현실을 돌파하는 힘은 역시 웡카의 '괴짜 마인드'입니다. 다만 삐딱하게 반항하는 식이 아니라, 진실한 꿈을 담은 초콜릿을 밝은 얼굴로 흩뿌리는 식으로 말입니다.


영화는 초콜릿이라는 먹거리를 인간의 꿈 혹은 욕망이 투영된 것으로 묘사합니다. 어느 한쪽에서는 초콜릿을 철저한 돈벌이 수단으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쌓아두고 몸이 불어나는 것도 개의치 않으며 탐닉에 몰두하게 되는 중독적 쾌락으로 그려집니다. 반면 웡카의 초콜릿은 현재의 마음과 앞으로의 소망을 담아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행복을 주는 꿈의 결정체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그런 웡카의 초콜릿은 남몰래 숨겨두고 먹는 게 아니라, 소주한 사람들과 흔쾌히 나누면서 그 달콤한 행복을 가능한 널리 퍼뜨리는 역할을 하죠. 꿈을 포기하고 현실을 짊어지는 게 익숙했던 누들은 웡카가 선사하는 초콜릿 앞에서 초콜릿을 먹지 않을 다른 나날들이 두렵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단지 초콜릿이 선사하는 비주얼과 맛의 향연에만 치중하는 게 아니라 그 초콜릿들을 함께 즐기며 행복을 나누는 사람들의 얼굴을 비추며, 설령 달콤합은 입 안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한들 나누는 순간의 추억은 마음 속에 무한히 남을 것임을 상기시킵니다. 그렇게 꿈을 사라지지 않게 하고, 행복의 순간을 간직하게 하는 초콜릿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에 웡카는 훗날 그런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 그토록 커다란 공장까지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영화는 맛보고 싶은 다채로운 비주얼의 초콜릿 향연에 처음 들어도 귀에 감기고 마음을 사로잡는 노래들까지 더해, 그처럼 꿈과 희망을 품은 초콜릿의 맛을 관객도 일부나마 느낄 수 있도록 해줍니다.


<웡카>(Wonka, 2023)


현실을 잠시 지우는 낙관마저 그렇게 납득할 수 밖에 없게 하는 데에는 예쁘면서도 얕지 않고 밀도 있는 만듦새를 보여준 폴 킹 감독의 역량 덕도 크지만, 영화 내내 그야말로 '두둥실 초코'를 먹은 듯 날아다니는 티모시 샬라메의 활약이 결정적입니다. <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본즈 앤 올>, 심지어는 <작은 아씨들>에서도 일부 보여준 나른하고 어두운 기색은 온데간데 없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꿈으로 반짝이며 생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스크린을 내내 밝힙니다. 판타지를 곁들여 영화 속에서 현실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장면들도 꽤나 나옴에도, 밝음과 더불어 자연스러움과 진실함까지 담긴 그의 연기 덕에 그 모든 장면들을 그저 천진하게 웃으며 바라보게 됩니다. 고아 소녀 누들을 연기한 칼라 레인과의 호흡도 좋아서, 둘의 순수한 우정이 만들어가는 흥미진진한 모험과 뿌듯한 성취의 순간도 재미와 감동을 주기 충분합니다. 한편 경찰서장 역의 키건 마이클-키, 스크러빗 부인 역의 올리비아 콜맨, 줄리어스 신부 역의 로완 앳킨슨 등 베테랑 배우들은 빌런이나 감초 등 빤하게 정형화될 수 있는 캐릭터에 위트를 불어넣어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움파룸파 역을 연기한 휴 그랜트의 코믹 연기는 그의 커리어에서 새 지평을 여는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파격적이면서도 웃음에 대한 수요를 정확히 충족시킵니다. 2005년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나올 때만 해도 휴 그랜트 같은 배우가 훗날 움파룸파를 연기하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개인적으로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웡카>가 초콜릿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초콜릿이 무척 달고 영양가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많이 먹으면 살찌고 몸에도 안 좋은 먹거리라는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베어 문 초콜릿이 입 안에서 녹을 때의 달콤함, 그 달콤함을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며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할 때의 행복감, 그 순간을 문득 그릴 때 지친 마음을 뚫고 구름처럼 솟아나는 몽글몽글한 기분 또한 부인할 수 없죠. 박차오를 수 없기에 등에 지고 가는 게 익숙한 하늘처럼 근심을 익숙하게 안고 사는 우리들에게, <웡카>는 진짜 하늘을 날 수는 없을지언정 하늘을 나는 꿈은 꿀 수 있게 해주는, 그 꿈으로 세상을 더욱 다채로운 맛으로 채워주는 초콜릿의 마법을 선사하며 그 달콤한 감흥을 되새기게 해줍니다.


<웡카>(Wonka,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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