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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Jul 27. 2024

MCU 이전의 우주에 보내는 러브레터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4 - <데드풀과 울버린>

<데드풀과 울버린>(Deadpool & Wolverine, 2024)


- 스포일러 있습니다 -


세번째 데드풀 영화이자 네번째 울버린 솔로 영화, 그리고 그 둘이 처음으로 MCU에 등장하는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은 나올 때마다 제4의 벽을 넘나들며 마블 세계관을 뒤흔드는 데드풀의 다음 이야기, 이미 전세계를 눈물바다에 빠뜨리며 작별한 바 있는 울버린의 재등장, 그 두 '문제적 히어로'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더구나 최근 영화와 시리즈를 막론하고 부진을 이어가고 있는 현현재 MCU의 상황과 영화 속 대사가 하필이면 딱 맞아떨어지는 바람에 그 말대로 과연 '마블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지에도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죠. 결론부터 말하면 <데드풀과 울버린>은 (흥행과 별개로 세계관을 다시 활성화시키고 대중의 호응을 다시 끌어모오는 역할로서) '마블의 구세주'가 되긴 힘들 것 같습니다. 그것은 MCU라는 큰 물에 들어와서도 데드풀의 자아 인식이 여전히 변함없기 떄문일텐데, 이 사실에 한편으론 실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안도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히어로 생활을 접은 후 웨이드 윌슨(라이언 레이놀즈)은 한때 어벤져스의 멤버를 꿈꾸기도 했지만 결국 중고차 딜러로서의 평범한 삶을 택합니다. 그 삶에는 소중한 사람들이 그의 곁에 언제나 함께 하고 있고, 이전 같은 악의 위협이나 죽음의 공포 같은 건 더 이상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원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웨이드의 성격이 이런 평범하고 고요한 생활과 맞지 않는 듯도 합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시간 변동 관리국(TVA)로부터 세계를 구할 적임자로 지목되고, 줄곧 스스로를 마블의 아웃사이더로 여겼던 웨이드는 마침내 MCU에 합류하는 것인가 하는 마음에 한껏 들뜬다. 그러나 세계를 구하기 위해 그가 반드시 소환해내야 하는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울버린' 로건(휴 잭맨)입니다. 그가 이미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걸 관객들은 물론 웨이드도 빤히 아는데 그를 어떻게 다시 살려내야 하는지. 어찌저찌해서 기껏 로건을 다시 소환하니, 웨이드와 거의 모든 면에서 상극인 로건은 웨이드를 만나자마자 죽이려 들 정도로 극심한 충돌 양상이 벌어지는데. 과연 이 두 사람은 어떻게 팀이라는 이뤄 세계를 구하는 어마어마한 임무를 수행해낼 수 있을까요.


<데드풀과 울버린>(Deadpool & Wolverine, 2024)


<데드풀과 울버린>의 고유한 특징들을 이야기하기 하기 위해서는 극중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겠기에 부득이하게 스포일러 지점이 있겠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의 내용이 '데드풀과 울버린이 의기투합해 세계를 구하러 나선다'는 한 줄의 시놉시스 너머로 예측불허의 전개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데드풀과 울버린>은 최근에 나온 다른 MCU 작품들에 비하면 전작들과의 연결고리가 느슨한 편이라 데드풀과 울버린이 출연하는 각각의 영화들 외에 다른 MCU 작품들을 챙겨봐야 하는 수고로움은 덜한 편입니다. (시리즈 [로키]에 등장하며 알려진 'TVA' 조직에 관한 설정만 미리 숙지하면 좋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오히려 더 많은 레퍼런스를 참고했어야 함을 알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영화 속 세계관 내가 아닌 영화 밖의 산업적인 부분들에 대한 것입니다. MCU 캐릭터들 중에서 유일하게 제4의 벽을 넘어 영화 밖 현실에 대한 인식을 관객과 공유할 수 있는 데드풀의 특수성 때문일 겁니다. MCU 전후로 전개된 마블 영화들의 판권 소유와 제작 문제, 마블 히어로들의 영화화 과정에서 나타난 그들의 산업적 흥망성쇠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을 때 이 영화를 가장 온전히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의 진입장벽이 낮다고 장담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을 숙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데드풀과 울버린>은 어쩌면 현재의 MCU보다도 마블의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일종의 '메타마블 무비'로서 영화를 무척 즐겁게 봤습니다. 제4의 벽을 깸은 물론 자신이 마블의 세계 안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데드풀의 캐릭터성이, MCU의 현재를 통렬하게 바라보는 방향으로 작용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매콤하게 발휘된 것입니다.


영화를 에워싸고 있는 큰 줄기의 사건은 다른 MCU 영화처럼 타노스의 습격이나 멀티버스의 등장 같은 영화 안의 이슈가 아니라, '디즈니의 폭스 인수 이후 폭스 산하 마블 캐릭터들의 MCU 편입'이라는 영화 밖의 이슈입니다. 디즈니 산하의 마블 스튜디오가 MCU로 한창 활황을 누리는 동안 폭스가 상대적으로 곁다리(?) 위치에서 엑스맨 캐릭터들로 마블의 효과를 일부분만 누리고 있을 때, 데드풀은 당시의 디즈니라면 엄두도 못낼 거친 입담과 폭력적인 퍼포먼스로 일약 주목을 받았더랬습니다. 그러나 데드풀 솔로 무비는 스튜디오의 대대적인 지원이 아니라 배우와 팬들의 열정이 멱살 잡다시피 해서 끌어온 끝에 어렵게 탄생한 것이었고, 그로 인해 데드풀은 흥행 대박을 일구면서도 '마블의 아웃사이더'라는 입지가 뚜렷했습니다. 같은 마블 코믹스의 영향 안에 있으면서도 마치 마블을 패러디하는 위치에 있는 듯한 대접을 받았달까요. 때문에 이번 <데드풀과 울버린>은 그런 데드풀이 드디어 디즈니 산하 마블 스튜디오의 MCU에 정식으로 합류하며, 스튜디오의 대대적인 지원까지 받아 이전과 같이 타협없이 R등급으로 만들어지는 첫 영화로서 달라진 위상에 격세지감을 느낄 법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데드풀은 더 커다란 세계를 향한 동경에 집중하는 대신, 확장되는 세계를 위해 희생되어야 했던 숱한 과거들을 향한 애정을 표시함으로써 '마블의 아웃사이더'라는 입지를 자랑스럽게 지킵니다. 그런 그의 동반자가 20세기의 관객들에게 마블을 비로소 본격적으로 소개시켰던 '엑스맨'의 주인공이라는 점 또한 의미심장하고요. 영화는 수많은 인물들의 깜짝 등장으로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데, 이들은 반갑기도 무척 반갑지만 그저 잠깐의 기쁨만을 위한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MCU로 덩치를 키우기 전부터 이미 우리 앞에 존재했던 마블의 세계관을 곱씹게 하며 각별한 의미를 남깁니다. 


<데드풀과 울버린>(Deadpool & Wolverine, 2024)


그렇다고 영화가 갑자기 진지해지는 건 아닙니다. 데드풀이 워낙 입이 걸고 무자비한 인물이면서도 소중한 사람들을 향한 애정은 아낌없이 표현하는 진국의 남자였듯, 영화 역시 우리가 기대하는 것들을 원없이 보여주며 그런 속깊은 마음을 표출할 따름입니다. MCU로 본격적으로 넘어오면서도 폭력과 입담의 수위는 전혀 양보없이 구현된 듯 하기에, 이 부분은 여전히 취향을 탈 것입니다. 특유의 찌르고 베고 써는 핏빛 액션은 여전히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데다 이번엔 울버린까지 가세해 그 강도를 더 높였으며, 자막 따라 읽기도 때로는 벅찬 입담의 양과 수위는 여전히 도파민이 넘칩니다. 데드풀을 연기한 라이언 레이놀즈의 구강 액션은 볼거리에 일절 양보하지 않은 채 그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자랑하고, 울버린 역의 휴 잭맨은 오랜만의 컴백에도 여전히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야성과 깊은 고뇌를 함께 보여주며, 빌런인 카산드라 노바 역의 엠마 코린 역시 비범한 광기로 적절한 긴장감을 형성합니다.  


<데드풀과 울버린>의 두 주인공, 데드풀과 울버린은 '힐링 팩터'라 불리는 자가 치유 능력이 있는 마블의 대표적인 히어로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죽었다가도 다시 일어나는 그들 곁으로 얼마나 많은 세계가 나타났다 무너지고 때로는 나타나지도 못한 채 사라지기도 했는지. 영화는 그런 힐링 팩터도 없이 죽었다 살아나기를 수차례 반복해 온 마블 세계의 흔적을 데드풀과 울버린의 눈으로 돌아보며, 데드풀 말마따나 '무지성으로 나타난 멀티버스'가 간과했던 의미를 묻습니다. 그 어떤 엔딩도 가능한 세계라면 여기서 우리의 진짜 엔딩은 무엇이 될까, 라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가 수많은 작은 세계들을 집어삼키거나 없애는 역학관계가 그대로 일어났던 MCU 안에 들어온 후에야, <데드풀과 울버린>은 비로소 MCU 이전부터 존재했던 그 수많은 세계들을 향한 러브레터를 보냅니다. 잊고 있었던 그 모든 지난 세계들을 향한 새삼스런 향수에, 엑스맨 시리즈와 데드풀 시리즈를 봤고 마블 영화의 역사를 어느 정도 아는 관객이라면 예기치 못한 짜릿함과 일말의 감동까지 안길, 좀 더 나이든 어른들을 위한 '노웨이 홈'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데드풀과 울버린>(Deadpool & Wolverine,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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