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영화리뷰 2024 - <에이리언: 로물루스>
'에이리언' 시리즈의 일곱번째 영화인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에이리언 4> 이후 27년만에 리들리 스콧 감독이 직접 연출하지 않는 영화로 기대와 함께 우려를 낳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메가폰을 잡은 페데 알바레즈 감독은 '에이리언' 시리즈의 열혈 팬으로 알려져 있었던 바, 영화는 그 팬심이 고스란히 깃들어 '에이리언' 영화에 관객들이 기대하는 모습으로, '에이리언' 영화가 마땅히 보여줘야 하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프로메테우스>, <에이리언: 커버넌트> 등 21세기 들어 나온 '에이리언' 시리즈 영화들이 프리퀄 성격을 띠다 보니 세계관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정작 주인공 격인 에이리언의 활약은 미미하거나 충분치 않은 느낌을 주었는데, 이번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그런 서운했던 시간들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에이리언이 아주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합니다. 아마 감독도, 영화 팬들도 바랐을 모습으로요.
서기 2142년, 거대 기업 '웨이랜드 유타니'의 우주 식민지 계획은 수많은 사람들을 노예와도 같이 끝모를 노동과 착취의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부모를 광산 사고로 잃은 레인(케일리 스패니) 역시 부모가 떠난 도시에서 벗어날 날만을 기다리며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죠. 그녀의 곁에는 그녀가 남동생이라고 부르는 합성 인조인간 '앤디'(데이비드 존슨)가 있습니다. 또 다시 동의없이 계약 기간이 연장되면서 도시를 벗어나 독립 자치행성 이바가로 가려는 레인의 꿈이 좌절되던 차에 친구인 타일러(아치 르노), 케이(이사벨라 메르세드), 비요른(스파이크 펀), 나바로(에일린 우)는 매력적인 제안을 합니다. 멀지 않은 거리의 우주에 버려진 우주선이 있는데, 그곳에 있는 동면 장치들을 빼돌려 그 길로 꿈에 그리던 이바가로 떠나자는 것입니다. 레인은 주저하면서도 합성 인조인간인 앤디의 기능이 필요하다는 친구들의 설득에 함께 따라나섭니다. 그렇게 그들은 화물선 코벨란호를 타고 우주로 떠나고, 목표로 한 우주선에 도착합니다. 그들은 '로물루스'라 이름 붙여진 기지에서 필요로 하는 장비들을 찾던 도중, 절대로 깨어나선 안될 것이 깨어나면서 비명조차 지를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위협과 마주합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시리즈의 1편과 2편 사이 시간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1편이 나온지 45년이나 된 긴 역사를 자랑하는 시리즈인 만큼, 시각효과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화가 다루는 시간대의 환경적 질감을 1편으로부터 고스란히 이어받아 재현하는 것일 터입니다. 영화는 1편을 오마주한 오프닝 크레딧부터 투박한 브라운관 모니터와 큼직한 버튼들과 레버들로 가득한 우주선 내부 디자인까지, 45년의 세월을 생각나지 않게 할 만큼 전편의 질감을 충실히 계승합니다. 뿐만 아니라 '에이리언' 하면 흔히 떠올리는, 곡선과 둔중함이 어우러진 생김새나 특유의 맨들맨들하고 끈덕진 피부, 뚝뚝 떨어지는 체액 등 크리처의 질감마저도 디지털보다 아날로그에 가까운 방식으로 재현하며 지난날 1편편이 영화 팬들에게 보여준 (잊지 못할 공포로 귀결되었을) 그 모든 이미지들에 대한 존경 어린 존중을 또렷이 보여줍니다. 또한 과거 <이블 데드>, <맨 인 더 다크>를 통해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극한의 공포를 매콤하게 보여주었던 감독은, 그 재능을 '에이리언' 시리즈의 전통에 성공적으로 이식하며 우주 기지라는 제한된 공간 안을 누비며 벌어지는 갖은 끔찍한 상황들을 빠르고 명료하게 전개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최후의 최후 순간까지도 긴장을 놓을 수 없게 합니다. 뒤에서 앞으로, 위에서 아래로, 거기에 우주선 내에 탑재된 여러 기능들까지 살뜰히 활용하며 공간을 입체적으로 다루는 덕분에 인물들이 크리처와 맞닥뜨리며 벌어지는 살떨리는 상황들은 동어반복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주됩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가 보여주는 이 순도 높은 공포는 새삼스럽게도 한동안 이 시리즈에서 절실히 기대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에이리언' 시리즈는 끔찍한 생김새의 크리처와 인간들이 벌이는 사투라는 단순명료한 콘셉트의 호러 프랜차이즈로 보일 수 있으나 실은 보다 복잡한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시리즈의 창조자인 리들리 스콧 감독 본인이 두 편이나 만든 프리퀄을 통해 세계관이 한층 거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양한 방향으로 급격한 진화를 거듭하는 크리처는 그 특성에 걸맞게 생김새와 캐릭터도 가지각색입니다. (시리즈를 다 챙겨보지 못한 저도 이를 제대로 다 구분하지 못합니다.) 물론 세계관과 크리처의 세세한 내용들을 다 알고 본다면 더 흥미롭게 볼 수 있겠지만, 이는 '에이리언' 시리즈가 생명력을 이어가는 데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번 <에이리언: 로물루스>의 감독이자 시리즈의 광팬인 페데 알바레즈는 이런 점을 정확히 짚고 영화를 만든 것 같으니, 바로 이야기와 세계관과 인물 구도를 한층 간결하게 구축한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에이리언' 시리즈에는 학자, 사업가 등 복잡한 속내를 품고 있어야 할 것 같고 방대한 지식을 뽐내야 할 것 같은 인물들이 구성원으로 등장했는데, 이번 영화의 주인공들은 그런 전문직 인물들이 아니라 하나같이 그저 젊고 의욕적인 청년들입니다. 기업의 지시에 따라 원치 않는 기나긴 노동을 하고 있는 그들이 버려진 우주선에 다다르게 된 이유는 무언가를 연구하거나 일생일대의 성과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먼 우주여행에 필요한 장비를 얻어 목적한 곳으로 떠나기 위함입니다. 그런 그들 앞에 난데없이 나타나는 크리처들은 여태껏 살면서 본 적 없는,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은 미지의 공포 그 자체일 따름입니다. 미지이기에 더욱 암담한 그 공포 앞에서 그저 빠져나오는 것만이 목적인 그들의 사투를 따라,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짧지 않은 세 거대한 세계와 역사를 다루느라 잠시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었던, 그러나 실은 이 시리즈에서 관객들이 그 무엇보다도 원했을 감흥인 '미지의 공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그것도 모자라 아주 사정없이 날뛰게 하고야 맙니다.
주인공들이 원숙한 전문가들이 아니라 새파란 젊은이라는 점은 한동안 '에이리언' 시리즈가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던 속도감과 에너지를 영화에 부여합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에이리언의 버전인 '제노모프'를 중심으로 페이스 허거, 체스트버스터, 그 외 다양한 모습의 에이리언들에게 새로운 모습과 숨겨졌던 성질을 부여하면서 장면장면마다 새로운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한편 살기 위해 도망치면서도 용감하거나 무모하다고 할 수 있는 도발 또한 불사하는 젊은이들의 사투를 역동적으로 전개하며 여느 액션영화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박진감을 선사하죠. 그러니까 <에이리언: 로물루스>에는 원작을 향한 경의를 한껏 담은 '정통성'과 이 시대의 감독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동시대성'이 공존하는 셈입니다. 또 한 명의 시리즈 속 강인한 전사 이미지를 탄생시키는 레인 역의 케일리 스패니, 시리즈에 줄곧 등장해 온 합성 인조인간 캐릭터를 변주하면서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주는 앤디 역의 데이비드 존슨을 비롯해, 영화를 내내 이끌어 가는 20대 배우들의 활기가 스릴의 동력을 유지시켜 줍니다.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지 않는, 오히려 전편들보다 서사를 좁혀 들어가는 듯한 <에이리언: 로물루스>의 시도가 야심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45년 역사에 빛나는 클래식 시리즈가 클래식에 머물지 않게 하려는, 현재의 어느 관객들도 어렵지 않게 진입할 수 있도록 시리즈의 정수만을 집약해 놓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야심이 지극히 강한 영화일 수도 있을 겁니다. 최고의 팬으로서 시리즈를 가장 잘 사랑하고 가장 잘 알고 있을 감독이 '우리가 사랑한, 당신이 원하는 '에이리언'이란 바로 이런 것'임라고 단호하게 선언하는 것만 같은 이 영화는, '최고의 팬'은 '최고의 감독'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는 동시에 리들리 스콧 감독의 손을 떠나 걱정되었던 '에이리언' 시리즈가 이대로만 지속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