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미 훌륭한 원작으로 가능한 최상위급 실사화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5 - <드래곤 길들이기>

by 김진만
<드래곤 길들이기>(How to Train Your Dragon, 2025)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여러 히트 IP 중에서도 가장 먼저 실사화 프로젝트의 중책을 떠안게 된 <드래곤 길들이기>는, 최근 디즈니 실사화 프로젝트가 연이어 좋지만은 않은 평가를 받은 가운데 등장해 군계일학의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유명 애니메이션의 실사 버전은 어떤 당위성을 갖고 만들어져야 하는가, 스튜디오는 유명 애니메이션의 실사 버전을 어떤 인사이트를 갖고 만들어져야 하는가, 관객은 유명 애니메이션의 실사 버전을 왜 보고 싶어 하는가를 모두 새삼 되새겨보게 하는, 이 영화는 원작에 대한 존경심과 실사 버전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모두 증명하며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의 시작을 성공적으로 장식합니다. 현재의 디즈니가 보고 배워야 한다는 세간의 평가가 허언이 아님을 입증하면서 말이죠.


세계 곳곳에서 온 바이킹들이 모여 사는 버크 섬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해충(?) 문제입니다. 그 해충이라는 게 모기나 파리, 바퀴벌레 따위가 아니라 드래곤이라서 더 큰 문제죠. 드래곤들은 주기적으로 섬에 나타나서는 양 등 가축을 사냥하고 살림을 파괴하기 일쑤입니다. 입에서 불을 쏘아대는 그들의 공격은 대단히 위협적이기에 바이킹들은 목숨을 걸고 그들과 맞설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바이킹 전사들의 덕목으로 드래곤을 사냥하는 자질이 중시됩니다. 버크 섬의 족장 스토이크(제라드 버틀러)는 전설처럼 전해내려 오는 타고난 드래곤 사냥 역량과 뛰어난 리더십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만, 그의 아들 히컵(메이슨 테임즈)은 정반대로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나오기만 하면 사고만 친다고 드래곤의 침략으로 마을이 시끄러운 와중에도 잠자코 들어가 있으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죠. 여느 때와 같은 드래곤들과의 전투 중 히컵은 자신이 발명한 대형 새총으로 우연찮게 드래곤을 맞춰 추락시키는데, 히컵은 그 드래곤이 누구도 그 실체를 확인한 적 없어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신비의 드래곤 '나이트 퓨어리'임을 직감합니다. 하지만 쌓인 전적이 있기에 역시나 누구도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고, 이에 히컵은 자신이 추락시킨 나이트 퓨어리를 직접 찾아나서기로 합니다. 가까스로 나이트 퓨어리를 찾아낸 히컵은 제 손으로 그를 죽여 전사의 자격을 입증하려 하지만, 자신이 알고 배워온 대로가 아닌 드래곤의 커다랗고 겁에 질린 눈망울 앞에서 히컵은 스스로가 드래곤을 죽일 깜냥이 되지 못함을 느낍니다. '투슬리스'라는 이름까지 붙인 드래곤을 날마다 찾아가 먹이를 주고 곁을 주며 가까워진 히컵은, 그와의 교류가 낳는 뜻밖의 결과들을 통해 어쩌면 자신이 그 어떤 바이킹 전사들과도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음을 깨닫기에 이릅니다.


<드래곤 길들이기>(How to Train Your Dragon, 2025)


<드래곤 길들이기>의 원작 애니메이션은 이미 훌륭한 영화입니다. 드래곤을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이 주는 스펙터클의 말초적 쾌감은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뚫고 나오는 수준이었고, 마치 검은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드래곤 투슬리스의 캐릭터 디자인은 첫 등장부터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더불어 당시 가족용 애니메이션에서 나올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던 대담한 결말과 그로 인해 오히려 드러난 속깊고 시대에 부응하는 메시지는 원작 애니메이션을 <슈렉>과 더불어, 혹자는 오히려 그를 넘어선다고도 평가하는 드림웍스 최고의 애니메이션 자리에 올려놓았죠. 그러니 이런 원작에 대한 재해석은 오히려 반감을 더 살 것이고, 충실히 옮겨도 어지간해서는 '실사 재현물' 이상의 평가를 받기 쉽지 않을 것이다. 여타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와 달리 원작 애니메이션 감독이 직접 연출한 실사 버전 <드래곤 길들이기>는 그 딜레마를 절묘하게 피해갑니다. 원작 애니메이션을 만든 사람의 손에서 탄생했기에 원작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고 그에 대한 존중을 오롯이 유지하는 한편, 애니메이션에서 실사영화로 옮겨지는 과정에서의 기술적 업그레이드가 정서적 강화로 이어짐으로써 단순한 실사 재현물에서 벗어나는 데에도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은 액션의 쾌감과 질감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애니메이션은 어떤 물리 법칙도 거스른 채 마음껏 과장된 액션을 펼칠 수 있지만, 실사 영화에서는 실제 사람이 등장하는 현실 세계에 기반하여 물리 법칙이 작용하는 액션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드래곤 길들이기>가 보여주는 액션은 원작 애니메이션의 스펙터클은 유지하는 한편 중량감을 더함으로써 파괴력을 한층 강화한 느낌입니다. 실제 배우가 CG화된 투슬리스를 타고 연출하는 그 유명한 '시험 비행' 장면은, 드래곤을 타고 날 때의 속도감과 무게감을 보다 현실적으로 상상하게 하면서 한층 피부에 와닿는 전율을 일으킵니다. 영화의 후반을 장식하는 거대 드래곤과의 결투 또한 인간과 드래곤의 극적인 크기와 힘 대비로 그 규모감이 더 강조됩니다. 묵직하고 무자비하게 불을 뿜고 때려부수는 드래곤들의 액션은 사람이 죽지 않고 피가 나오지 않을 뿐이지 '전체 관람가' 등급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액션의 최대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러한 액션 장면들은 많은 부분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된 덕분에, 확장된 아이맥스 화면비 안에서 하늘과 땅을 마음껏 누비는 쾌감이 4DX 영화와 견주어도 손색 없을 만큼 짜릿합니다. 캐릭터 디자인 또한 애니메이션의 매력을 지키면서 실사화의 이질감 없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원작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인기 요인 중 하나인 메인 캐릭터 '투슬리스'는 항간에 '실제 투슬리스를 섭외해 왔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만큼, 애니메이션 속 검은 고양이 같은 투슬리스에 오돌토돌한 비늘의 질감만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캐릭터성과 사실감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밖에 등장하는 다양한 종류의 드래곤들도 실사 영화다운 규모감과 무게감을 강화하면서도 실제 생김새에 가깝게 재구성하려 하기보다 애니메이션의 다소 과장된 이목구비와 보디라인을 유지하며 익숙하고 친근한 느낌을 유지했습니다. 이는 드래곤이 어디까지나 상상 속 동물이기에 더 가능한 접근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래곤 길들이기>(How to Train Your Dragon, 2025)


실사 영화가 되면서 캐릭터들의 표정과 감정에 드라마틱한 묘사는 다소 희석된 반면, 그만큼 진실성이 더 돋보이게 됐다는 것 또한 이번 <드래곤 길들이기>의 장점이 되겠습니다. 히컵과 투슬리스의 우정은 물론 히컵과 스토이크의 갈등과 화해, 히컵과 아스트리드의 이성적 교감으로 이어지는 캐릭터간의 감정 묘사가 더 섬세해졌죠. <블랙폰>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메이슨 테임즈는 자신의 한계를 자각함으로 인한 불안감과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보다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안정된 연기로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한편 원작 애니메이션의 목소리 연기에 이어 이번 실사 버전에서 같은 역할을 다시 맡게 된 스토이크 역의 제라드 버틀러는, 풍성한 수염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던 아버지 스토이크의 감정을 강렬한 연기로 보여주며 관객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덕분에 히컵과 스토이크의 서사는 '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는 아들' 서사를 넘어 끈끈한 애정과 존경으로 채워진 부자의 관계를 보다 꼼꼼하게 그려냅니다. 버크 섬 청소년들 중 리더십으로는 일등인 아스트리드 역의 니코 파커 역시 동료로서 히컵을 존중하고 전사로서 더욱 용맹해져가는 캐릭터를 매끄럽게 소화합니다.


이 모든 업그레이드 덕분에 원작이 도발적인 결말을 동반하려 전하려 한, '우리들 각자는 필연적으로 불완전하지만 함께 함으로써 비로소 완전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 역시 이번 <드래곤 길들이기>에서 더욱 무르익은 채로 보존되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다행스럽습니다. 우리나라보다 1주 늦게 개봉하는 미국 현지에서는 원작에 충실한 실사화에 대해 마냥 우호적인 평가만 하고 있진 않은 걸로 알고 있지만, 원작을 부정하거나 대체하지 않고 그렇다고 성의없는 동어반복 또한 하지 않은 채, 원작의 오락적 쾌감을 기술적으로 진보시키고 원작의 진취적이고 바람직한 메시지에 더 또렷한 진실성과 설득력을 부여함으로써 실사 버전 <드래곤 길들이기>는 관객이 기대하고 바라마지 않은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냈습니다. 이미 빼어난 원작의 가치를 온전히 존중하면서 시대의 변화에 따른 대중의 요구에 충실히 부응하고 그로 인해 한층 무르익은 메시지를 담아내는,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로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최상위급 성취가 아닐까 싶습니다.


<드래곤 길들이기>(How to Train Your Dragon, 2025)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