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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서를 향한 리스펙트, 레이싱을 향한 경외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5 - <F1 더 무비>

by 김진만
<F1 더 무비>(F1: The Movie, 2025)


영화 <F1 더 무비>는 3년 전 극강의 극장 체험을 선사했던 <탑건: 매버릭>의 감독, 제작자, 각본가가 다시 만나,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라 불리는 'F1'을 아예 제목으로 내세워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영화입니다. 이런 영화를 또 한 명의 대체 불가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를 주인공 삼아 만든다고 하니 제작 단계에서부터 기대가 모으지 않을 수 없었죠. 이번엔 우리를 어떤 체험으로 안내할 것인가, 과연 <탑건: 매버릭>을 잇는 또 한번의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할 것인가 주목되었던 <F1 더 무비>는 기대한 바를 정확히 충족시킵니다. 극장 가기가 점차 까다로워지는 현실에서 대중은 기대치가 명확한 영화를, 그 기대치를 제대로 충족시켜주는 영화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데, <F1 더 무비>는 그런 현대 극장용 영화의 조건에 완벽히 들어맞는 영화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땅 위의 탑건'이랄까요.


30년 전 유망주로 주목받았지만 경기 중 큰 사고로 인해 드라이버들에겐 꿈의 무대인 F1 우승의 꿈을 접은 후, 중년이 된 드라이버 소니 헤이즈(브래드 피트)는 부와 명예에 대한 야망도 없이 그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찾아가 달려주며 자신의 역량을 쏟아붓는 '용병 드라이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데이토나 24시간 레이스 우승컵을 안겨준 후 여느 때처럼 다음 목적지를 찾아 길을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날, 오랜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루벤 세르반테스(하비에르 바르뎀)가 불현듯 찾아와 뜻밖의 제안을 합니다. 현재 바닥을 기는 성적으로 까딱 잘못하면 팔릴지도 모르는 자신의 팀 APXGP에 들어와 F1에 참가해달라는 것입니다. 돈도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닌 소니는 30년 만에 찾아온 이 기회를 고민 끝에 수락하고 팀에 합류합니다. 소니는 어쩌면 30년 전 자신의 처지와 비슷할지 모를 루키 드라이버 조슈아 피어스(댐슨 이드리스)와 호흡을 맞추게 되지만, 팀의 주인공이 자신이라 믿었던 조슈아는 어디서 난데없이 나타난 '어르신' 소니와 각을 세웁니다. 소니는 축적된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대담한 전략을 제시하며 팀을 이끄는데 이는 뜻밖의 성과를 불러오기도, 뜻밖의 위기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차를 향한 열망에 이혼까지 감수하며 설계 디자이너의 길을 택한 케이트 맥케나(케리 콘돈)의 서포트 속에 차량도 팀의 전략도 진화하는 가운데, 과연 그들은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드라이버들이 총집결한 F1에서 위기를 벗어나 우승으로 향할 수 있을까요.


<F1 더 무비>(F1: The Movie, 2025)


'F1'이라는 세계 굴지의 스포츠 이벤트를 아예 영화 제목으로 쓴 만큼, F1이 자신의 타이틀을 영화 제목으로 쓰도록 흔쾌히 허락해주고 제작을 지원해준 만큼 <F1 더 무비>는 관객이 영화에 걸어 마땅하고 영화가 관객에 채워줘야 마땅한 기대치가 확실히 존재합니다. 그 확실한 기대치란 세계 최고의 드라이버들이 한 자리에 모인 F1 현장의 열기를, 그 트랙 위를 달리며 한계치에 이를 만큼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 확실한 기대치를 확실히 충족시킵니다. <탑건: 매버릭> 때 관객으로 하여금 배우들이 실제로 지금 전투기를 타고 날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케 할 정도의 사실감을 땅 위를 달리는 레이싱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재현시키죠. 지표면에 바싹 붙은 채 마치 땅에 불꽃이라도 일 것처럼 질주하는 드라이버의 시점은 시속 300km라는, 일상에서 운전하는 사람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속도로 도로를 누비는 이가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를 간접적으로 전합니다. 이러한 1인칭 시점과 긴장감과 쾌감이 함께 서린 듯한 드라이버들의 눈빛을 꿰뚫는 대면 클로즈업, 경쟁 차량과의 대결과 추월 등 급작스런 변수에서 차량이 처하는 위기를 생생하게 전하는 측면 시점 등 그 좁은 차량 곳곳에 살뜰하게 배치된 카메라가 살떨리는 현장감을 전합니다. 평소 현실에서는 들어볼 일이 거의 없는 상상도 못할 울림을 자랑하는 엔진음은 4DX 포맷까지 아니더라도 아이맥스나 돌비 시네마 등 음향 특화 상영관이라면 어디서나 상영관을 뒤흔드는 동력을 느낄 수 있고, 속도감과 더불어 이를 따라 쏜살같이 달려나가는 풍경을 함께 담아내는 카메라워크는 움직이지 않는 걸 알면서도 팔걸이를 움켜쥐고 입을 벌리며 바라보게 만듭니다.


이처럼 극강의 영화적 체험을 선보이는 데 몰두하기 위해 <F1 더 무비>의 스토리라인은 지극히 간결하게 구축되어 있습니다. 반골 기질의 베테랑 드라이버와 야심만만한 신예 드라이버의 대립과 화합이 빚어내는 팀워크의 카타르시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전형성을 벗어나볼 욕심을 조금도 내지 않죠. 이는 감독과 제작진의 전작 <탑건:매버릭>이 구사한, 고전적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향한 향수를 자극하는 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탑건: 매버릭>의 경우 전편으로부터 비롯된 30여년 세월의 간격이 중요한 서사로 작용하는 반면, 전편이 없는 <F1 더 무비>는 30여년간 이어온 야인으로서의 삶을 기본 설정으로 지닌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이 차이일 겁니다. 이로 인해 <F1 더 무비>가 전하는 감흥은 고유성보다 전형성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영화가 오롯이 담아내는 F1이라는 세계와 그 세계에 전력으로 투신하는 레이서들의 세계에 대한 경외감 어린 사실적 묘사 덕에 이야기는 전형성을 넘어 진정성을 획득합니다. 세계 최고의 대회를 앞둔 드라이버들의 들끓는 야망, 그러면서도 그 야망으로 인해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 모든 감정들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현장의 뜨거운 승부, 그 승부 끝에 마침내 찾아오는 성취의 감격과 축제의 카타르시스까지, 관객은 이 영화를 통해 마치 F1 대회에 다녀온 듯 도파민을 가득 충전하게 될 것입니다. 예상 가능한 이야기의 끝에 다가오는 예상되었던 순간임에도 그 감동에 저항하기란 어렵습니다.

<F1 더 무비>(F1: The Movie, 2025)


영화의 주인공인 소니 헤이즈는 카레이싱이라는 아찔한 스턴트를 해내야 하는 동시에 영광의 가장자리에서 오랜 세월 맴돌다가 뒤늦게 영광의 중심에 뛰어드는 드라이버의 노련함 또한 표현해내야 하는 캐릭터인데, 브래드 피트는 이 만만치 않은 연기를 그것도 대단히 매력적으로 해냅니다. 이루지 못한 꿈에 얽매여 여전히 미숙해 있지만 뒤늦게 성장하며 도약해가는 중년의 드라이버를,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변함없는 특유의 야성미로 재현하는 그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라 할 만하죠. 한편 소니 헤이즈에 맞서 자신의 야심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한편 그와 함께 하며 팀워크의 진가를 배워가는 신예 드라이버 조슈아 피어스 역의 댐슨 이드리스 역시 에너제틱한 연기로 브래드 비트에 뒤지지 않는 활기를 극에 불어넣습니다. 젊은 시절 라이벌이었지만 지금은 함께 나이 들어가는 동료로서 진심으로 소니 헤이즈를 응원하고 걱정하는 팀의 핵심 관계자 루벤 세르반테스 역의 하비에르 바르뎀, 팀을 승리의 가도로 이끄는 차량 디자이너이자 소니 헤이즈와 동병상련에 힘입은 미묘한 관계로 얽히는 케이트 맥케나 역의 케리 콘돈 역시 원숙한 연기로 서사를 안정감 있게 잡아줍니다.


모든 면이 완벽한 '육각형' 형태의 영화가 아니더라도 관객이 기대한 바를 너끈히 만족시킬 때, 단순한 만족감을 넘어 벅찬 쾌감을 선사하는 데까지 이르는 영화를 만날 때 '이 영화는 많은 이들이 열광할 만한 영화'라는 감이 오고는 합니다. <F1 더 무비>가 아마 그런 영화일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결코 경험해 보지 못할 세계로 우리를 데려가 주는 것이 영화의 큰 역할이라고 한다면, 이 영화는 그 역할을 완벽에 가깝게 해내는 것만으로도 인정해줄 만합니다. 고전적이지만 반박 불가능한 체험의 쾌감으로 실존하면서도 한없이 궁금하기만 했던 세계 속으로 기어이 우리를 발들이게 함으로써, <F1 더 무비>는 극장의 존재가치를 보란듯이 입증할 영화입니다.


<F1 더 무비>(F1: The Movie,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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