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영화리뷰 2025 - <웨폰>
호러 영화 <웨폰>은 올 여름 미국에서 먼저 개봉해 현지에서 떠들썩한 반응을 이끌어낸 바 있습니다. 최근 몇년 간 장르적으로 뛰어날 뿐 아니라 탄탄한 드라마와 또렷한 메시지까지 갖추면서 호러 장르는 현재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트렌디한 장르가 되었는데요, <웨폰> 역시 그러한 요즘 호러 영화 트렌드의 정점에 있는 영화 중 한 편입니다. 최초의 사건부터가 기괴하기 짝이 없으나 그것은 그저 이야기의 시작일 뿐입니다. 영화는 능숙하고 노련한 스토리텔링으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한편, 호러 장르 본연의 사명에 충실하게 말초적 자극에만 기대지 않은 대단한 공포감을 수시로 불러일으키며, 거기에 자연스럽게 우리가 마주한 세상의 공포스런 일면을 투영시키며 사회적 함의까지 충실히 갖추었습니다. 장르에 충실히 복무하는 동시에 장르를 가지고 놀고, 이를 통해 관객을 쥐락펴락하면서 파워풀한 메시지까지 관철시키는 이 영화는 올해의 호러 영화로 손꼽기에 손색 없습니다.
메이브룩이라는 미국의 작은 마을에 괴이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18명으로 이루어진 메이브룩 초등학교의 한 학급에서, 단 한 명을 제외한 17명의 아이들이 일제히 실종된 것입니다. 실종된 아이들의 공통점은 새벽 2시 17분이 되자 잠자리를 박차고 집을 나와 두 팔을 4시-8시 방향으로 뻗은 채로 뛰쳐나간 것만 확인되었고 어디로든 돌아온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을을 발칵 뒤집어놓은 이 사건을 두고 각기 다른 처지의 여러 인물들이 얽힙니다. 아이들이 실종된 반의 담임이라는 이유로 학부모들로부터 마녀사냥을 당하는 교사 저스틴(줄리아 가너), 영문 모를 사건에 대한 분노에 가득 차서 홀로 사건의 뒤를 캐는 실종 아동의 아버지 아처(조슈 브롤린), 마약에 쩔어 무법자처럼 마을을 쏘다니다 사건에 얽히게 되는 제임스(오스틴 에이브럼스), 제보를 받고 사건을 수사하러 나선 경찰 폴(엘든 이렌리치), 아이들이 실종된 메이브룩 초등학교의 교장 마커스(베네딕트 웡), 그리고 유일하게 실종되지 않은 아동 알렉스(캐리 크리스토퍼)까지. 그들의 뒤를 쫓다 보면 아연을 실색하게 하는 사건의 전말과 마주하게 됩니다.
<웨폰>을 연출한 잭 크레거 감독은 역시 할리우드의 또 다른 걸출한 호러 감독인 조던 필과 마찬가지로 코미디언 출신으로서, 미국 현지에서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국내에서는 OTT로 직행한 전작 <바바리안>으로 빼어난 호러 감각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전작에서 평범해 보이는 공간 뒤에 숨겨진 무시무시한 공포를 반전의 스토리 전개로 그려냈던 감독은 이번 <웨폰>에서 그러한 스토리텔링의 기량을 본격적으로 발휘합니다. 예고편과 포스터에서부터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아이들이 기이한 자세로 일제히 집에서 달려나가는 이미지를 통해 공포감을 선사했지만, 놀라운 것은 '집단 아동 실종'이 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여섯 명의 인물들의 시점을 갈아타며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인물과 인물이 만나는 일정 시점이 오버랩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선형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식의 이러한 전개는 말그대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사건의 전말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의 실종이라는 충격적이고 비극적이지만 현실적인 사건에서 출발해 비로소 영화를 호러물로 만드는 사건의 기괴한 전말로 나아가기까지, 영화는 일상의 공간에 충격적인 이미지들을 불쑥불쑥 던지면서, 정해진 패턴 없이 관객의 예측을 비웃으며 활보하는 카메라워크와 전형적인 공포감 조성에 머물지 않고 장면장면을 주무르듯 폼을 바꾸어가는 음악까지 더해가며 갖가지 모양새의 공포감을 관객에게 전합니다. 마치 그 마을에 전해내려오는 도시괴담을 들려주듯 던져지는 이야기의 파편들이 비로소 맞춰진다 싶을 때, 영화는 또 다시 관객의 예상을 기분좋게 배반하며 공포에 코미디까지 뒤섞인 예상 밖의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합니다.
한편 영화의 이야기와 '웨폰'(무기, 영제로는 '무기들(Weapons)')이라는 제목의 연관성을 영화를 보기 전에는 좀처럼 짐작할 수 없었으나, 실상 영화는 그 연관성을 무척 긴밀하게 보여주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는 영화가 여러 인물들의 시점을 갈아타며 이야기를 풀어내야만 했던 이유와도 연결됩니다. 우리가 목격하게 되는 건 사건의 진상이 직선적으로 규명되는 과정이 아니라, 사건으로부터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며 형성되는 마을의 풍경입니다. 아이들의 난데없는 실종으로 인해 마을은 상실의 슬픔에 잠겨 있으면서, 동시에 언제 뭐가 터질지 모를 일촉즉발의 분위기 역시 품게 되면서 공포로 잠식되어 갑니다. 사라졌다는 것만 분명하고 그 외의 모든 것은 알 수 없는 상황은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공포를 가져다 줍니다. 저스틴은 하루아침에 '아이들을 잡아먹은 마녀' 취급을 받으며 안락했던 마을에서 공포에 떨어야 하게 되었고, 아처는 잃어버린 아들로 인한 악몽에 시달리는 한편 그런 두려움과 불안이 반대로 타인에게 폭력적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기 전부터 공포가 타인을 위협할 수 있는 무기이자 나를 위협할 수 있는 무기로 작용하는 풍경을 목격하게 되고,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면서 비로소 마을을 피로 물들인 가장 결정적인 무기가 바로 그 공포였음을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공포를 무기삼아 우리의 세상을 움켜쥐려는 자가 어딘가에 존재할 수 있다는 영화의 함의는 곧 현대 미국의 실상을 향하는 듯 합니다. 세상의 평화를 위협하는 사건 앞에서 그로 인한 상실의 아픔을 겪는 이들을 위한 애도를 보내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그 슬픔과 그로 인한 두려움을 담보로 세상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려는 이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현실에 빗대게 되며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됩니다. 그런 이들의 손아귀에 쥐어진 세상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슬픔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타인의 공포를 무기삼는 무서운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불현듯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화적으로 충분히 무서우면서도 사회적으로도 시의성 있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아처 역의 조슈 브롤린, 저스틴 역의 줄리아 가너, 제임스 역의 오스틴 에이브럼스, 폴 역의 엘든 이렌리치, 마커스 역의 베네딕트 웡, 알렉스 역의 캐리 크리스토퍼, 그리고 보기 전까지는 실감할 수 없는 영화의 씬스틸러인 에이미 매디건까지 빼어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 모여 이 '공포의 마을'을 섬뜩하게 그려냅니다.
과거 [토요 미스테리 극장] 같은 프로그램부터 현재 [심야괴담회] 같은 프로그램까지, 호러 장르와 '이야기'라는 형식은 특히 떼어놓을 수 없는 형태로 다가와 우리에게 꾸준히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웨폰>이 전하는 이야기가 사실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으며 반전을 거듭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사건의 전말에 다가갔을 때 사뭇 싱겁게 느끼게 되는 경우도 없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웨폰>은 호러 장르의 승부는 결국 무엇을 이야기하느냐가 아닌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상기시키며, 대략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감이 잡힌다 할지라도 사각지대를 놓치지 않는 입체적 화법을 통해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스토리텔링을 선사합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신선하면서도 이것이 그저 기교가 아니라 영화적으로 필요한 기술이었음을 깨닫게 되고, 호러라는 틀 안에서 연출되는 다채로운 공포감에 무서우면서도 동시에 매우 즐겁게 영화에 뛰어들게 되죠. 이렇게 <웨폰>은 진보하고 있는 전세계 호러 장르 트렌드의 선봉에 선 영화 중 한편으로서, 장르에 대한 정통적 접근과 참신한 변주를 교차하며 호러 엔터테인먼트의 정수란 바로 이런 것이었음을, 무서운 마음을 부여잡고서 끊임없이 다가가게 만들고야 마는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의 두려움이 이 영화에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 셈이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