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영화리뷰 2025 - <주토피아 2>
전편이 기대 이상의 큰 성공을 거둔 뒤 9년 만에 <주토피아 2>가 나왔습니다. 캐릭터 디자인, 유머감각, 스토리, 감수성, 사회적 메시지까지 다방면에서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며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21세기 르네상스의 빛나는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전편에 이어 9년이 흘렀으니 기다림이 좀 길긴 했습니다. 그 적지 않은 시간동안 날이 무뎌져 (많은 애니메이션 속편들이 그러했듯) 전편만큼 즐겁지 않을까봐 우려되기도 했고요. 그러나 <주토피아 2>는 더욱 넓어진 시야 속에서 안정적인 선택을 행함으로써 만족스런 속편이 되었습니다. 전편을 뛰어넘지 못할 바에야 전편만큼의 감각을 유지하되 시야를 넓혀보자는 영화의 전략은 성공했고, 이후의 생명력까지 충분히 가늠케 했습니다. 프랜차이즈의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로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생명력을 꼽는다면, 그런 점에서 <주토피아 2>는 '주토피아'를 현존하는 디즈니 최고의 프랜차이즈 자리에 올려놓았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식성에 상관없이 초식동물과 육식동물, 잡식동물이 어우러져 다양한 환경 속에서 공존하는 '주토피아'의 특징에 매료되어 우리가 간과했던 것은 이곳에 포유류만 존재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번 편의 이야기는 이곳 주토피아에 포유류만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출발합니다. 토끼 주디(지니퍼 굿윈)와 여우 닉(제이슨 베이트먼)이 전편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정식으로 경찰 파트너가 된 지 일주일이 흘렀는데, 그들의 넘치는 (정확히는 주디의 의욕을 닉이 힘겹게 따라가는) 의욕이 때론 불미스러운 상황을 일으키고 동료들의 따끔한 눈초리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주토피아가 기후 장벽을 토대로 다양한 동물들이 공존하는 지금의 주토피아가 된지 100주년을 맞이했고, 지금의 주토피아가 있게 한 캐나다스라소니 링슬리 가문을 중심으로 성대한 행사가 준비됩니다. 그러나 행사장은 갑작스런 뱀 게리(키 호이 콴)의 습격으로 난장판이 되고 말죠. 그런데 정작 불청객 게리는 자신은 누굴 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진실을 알리기 위해, 그리고 자기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려고 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게리의 진심을 읽은 주디와 그런 주디를 얼레벌레 따라온 닉은 얼떨결에 위기에 처한 게리를 구해주게 되고, 그들은 졸지에 수배 대상이 되어 링슬리 가문과 주토피아 시, 경찰 동료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과연 닉과 주디는 게리의 진실을 밝히고, 다시 한번 주토피아를 구하여 명예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전편 <주토피아>는 가히 혁신적인 캐릭터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캐릭터 애니메이션은 캐릭터의 매력으로 이끌어갈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뜨렸기 때문이죠. 이 영화에서 캐릭터의 매력은 전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디폴트값이었고, 거기에 추리, 스릴러, 느와르 등 성인 취향 장르물의 색깔을 과감히 이식하며 흥미로운 이야기와 재기 넘치는 패러디, 날카로운 풍자와 가족물다운 긍정의 에너지를 모두 담아냈습니다. 디즈니가 드디어 픽사와 드림웍스의 영역까지 넘보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의 영화가 나왔다는 느낌이었고, 속편이 나와도 이보다 더 나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번 <주토피아 2>는 전편보다 낫다고 단언할 순 없어도 적어도 전편만하다고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토피아 2>는 전편에 이어 주토피아를 '탐험'하는 태도를 견지합니다. 주디를 따라 열차를 타고 주토피아 중심부로 들어설 떄의 기대감과 설렘을 느꼈던 전편처럼, 이번 편 역시 전편에서는 미처 다 누비지 못했던 주토피아의 새로운 면면들을 지켜보며 주토피아를 관광하는 듯한 쾌감을 유감없이 선사하죠. 습지 포유류와 파충류 등 전편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더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이 저마다의 뚜렷한 개성을 품고 웃음을 자아내며 전편에서 만났던 친숙한 캐릭터들 사이에 새로운 재미를 심어넣기도 합니다. 여기에 카체이싱, 워터 슬라이드, 대규모 파괴 장면 등 한층 강화된 볼거리로 액션 어드벤처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일반적인 속편의 의무 또한 충실히 이행합니다.
하지만 전편에서 주토피아는 단지 보기 좋은 곳만 둘러보는 탐방의 대상이 아니라 어두운 이면까지 들여다 봐야 하는 탐사의 대상이었고, 이번 <주토피아 2> 역시 이를 잊지 않습니다.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간다는 건 그만큼 새로운 문제에 직면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공존을 주창하는 주토피아에 여전히 차별은 존재하는데, 전편에서 그 차별이 식성이라는 본능적 차원에서 전개되었다면 이에는 성향과 의지라는 사회적 차원에서 전개됩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에 융합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어나는 차별과 그 모든 차별의 벽을 타파하고 다른 모습 그대로, 우리의 지금 존재 그대로 화합해 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 사회에 대한 비유로 더 강하게 작용합니다. 전편에서 식성의 문제는 어느 한쪽이 통제해야 하는 것이어서 이견의 여지가 있었다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을 지향하는 이번 편의 메시지는 더욱 보편적인 설득력을 얻을 만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는 본격적으로 파트너로서 움직이게 된 주디와 닉의 관계성과도 이어지며 극의 응집력을 높입니다. 이번 편에서 주디와 닉은 단지 타고난 종의 차이가 아닌 성향의 차이를 보입니다. 철저한 계획과 준비성으로 무장한 주디는 주토피아를 위해 목숨까지 걸 준비도 되어 있는 반면, 무계획과 즉흥성으로 다져진(?) 닉은 꼭 목숨까지 걸어야만 하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다른 것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 수도 있는...) 그렇게 절실함의 대상이 서로 다른 주디와 닉이 그래서 비로소 상호 보완적인 파트너가 되어가는 과정 역시, 영화가 지향하는 공존과 화합의 메시지와 부합하는 부분입니다. 더불어 '닉-주디'를 이른바 '되는 주식'으로 밀었던 팬들은 이렇게 '파트너'로서 더 끈끈해지는 그들의 관계성에 더욱 감질날 것입니다.
한편 주토피아의 보이지 않는 주변부로 밀려난 파충류의 투쟁에 관한 이야기는 정복과 배척으로 점철된 미국의 역사에 대한 유쾌하지만 날카로운 풍자로 다가오는 대목입니다. 그 매개로 다름아닌 뱀이라는 동물을 택한 것은 아마도 기막힌 한 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확히는 살모사에 속하는 뱀 게리는 특유의 날렵한 움직임을 과시하면서도, 뱀이 지닌 일반적인 이미지와 달리 비열하거나 악의에 차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의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죠. (그의 목소리 연기를 키 호이 콴이 맡았다는 점에서 이미 짐작되는 대목입니다.) 100년이 흐르고도 자신의 터전을 되찾기 위한 투쟁을 분노와 악의에 차서가 아니라, 절실함과 선의를 담아 이어가는 그의 모습은 외적으론 인간이 동물에 부여한 얄팍한 선입견을 깨면서 내적으로는 미국의 시작이었고 역사의 일부였음에도 외면당한 이들에 대한 애정이 담긴 모습일 것입니다. 포스터 속에서 게리는 유쾌한 표정으로 주디와 닉을 비롯한 다수의 캐릭터들을 똬리 틀며 옭아매고 있는데, 영화를 보고 나면 이 모습이 어떤 의미인지 기분좋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캐릭터는 더 다채로워진데다 저마다 사랑스러운 개성을 자랑하고, 관객들이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주디와 닉의 관계성은 더욱 돈독해졌으며, 주토피아의 빛과 어둠을 관통하는 이야기 속에서 풍자는 여전히 날카롭고 화합의 세상을 향한 메시지는 (전편에 이어 이번에도 가젤 역으로 등장하는) 샤키라의 노래와 함께 유쾌하게 울려 퍼집니다. 이러니 <주토피아 2>는 웬만해선 불호를 얻기 힘들, 올해를 마무리 하는 남녀노소를 위한 엔터테인먼트로 손색 없을 것입니다. 9년의 긴 기다림이 아쉽지 않고 그저 다음 편을 향한 기다림 또한 이만큼 길까봐 아쉬울 뿐인, 총체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영화입니다.
+ 주디와 닉의 관계성에 '과몰입'하는 분들이라면 엔딩 크레딧 후 쿠키영상을 놓치시면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