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영화리뷰 2026 - <프로젝트 헤일메리>
역시 영화화된 바 있는 베스트셀러 소설 '마션'의 작가 앤디 위어가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인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마찬가지 이 드넓은 우주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다만 <마션>이 단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온 지구촌이 노력하는 보다 낙관적이고 희망찬 분위기였다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단 한 사람에게 지구의 운명을 건다는 점에서 보다 무턱대고 희망차기만 할 수 없는 고뇌와 진중함이 수반될 수 밖에 없습니다. 들여다 보면 무척 속시끄러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영화가 그럼에도 우리에게 그늘보다 빛처럼 다가오는 것은, 까마득한 우주 한복판을 기약없이 질주하는 여정의 연료로 시공간, 종, 그 이외 모든 것을 초월한 순수한 교감과 우정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미지에 대한 탐구, 그 기저에 세계를 이루는 모든 존재를 향한 애정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과학교사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는 어느 날 눈을 뜨니 자신이 우주 한복판을 떠 다니는 낯선 우주선 안에서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함께 탑승한 동료들도 있었으나 그들은 모두 사망했고 우주선 안에 살아있는 것이라곤 그레이스 자신과 그를 돌보는 로봇 뿐입니다. 몸에 밴 과학 지식이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와중에도 그레이스는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 곳에 와 있는 건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사실 그레이스는 태양이 점점 죽어감으로 인해 수십년 뒤 생명이 사라지고 멸망의 길을 걷게 될 지구를 살릴 희망으로서, 11광년이 넘는 거리에 있는 행성으로의 항해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상태입니다. 기억이 희미한 와중에도 과학 지식과 생존 욕구를 바탕으로 우주선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던 중, 그레이스는 자신과 같은 목적으로 역시 우주를 헤매고 있는 거대한 비행 물체를 만나게 됩니다. 자신이 있는 우주선을 공격하기보다 이상하게 따라다니고 교류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 그 비행 물체에로부터 그레이스는 돌덩이 여러 개가 붙어 있는 듯한 형상의 외계 존재를 만납니다. 바위 같이 생겼다고 '로키'(Rocky'라 이름 붙인 그 존재에게 그레이스는 고유의 음성 신호를 활용한 목소리를 부여하고, 그렇게 그레이스와 로키는 서로 소통하고 교감하며 각자의 고향별을 살리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 시작합니다. 각자 고향별의 운명이 달린 그들의 여정은 과연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요. 설령 그들 자신은 그들이 이룬 성취를 직접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말입니다.
배우도 감독도 다르지만 원작자가 같다는 점에서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마션>과 비교하며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일단 공통점은 주인공이 우주 한복판에 고립되어 있는 와중에도 매우 활동적이라는 점입니다. 소심한 소시민일지언정 절체절명의 상황 앞에서 위축되고 주눅들지 않고 그 와중에도 말은 또 쉴 새 없이 하죠. 또 다른 공통점은 아득하고 무섭도록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하며 그런 우주의 몸집과 무게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안에서 낙천성을 잃지 않는다는 점일 겁니다. 하지만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결정적으로 <마션>과 다른 점이 있다면, 훨씬 고독하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레이스는 우리가 영화의 현재 시점에서 만나는 유일한 인간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에게 우주로의 여정을 제안한 스트라트(산드라 휠러)를 비롯한 다른 인간 캐릭터들은 그의 과거에 존재하는 인물들이고, 그레이스가 홀로 우주에서 고군분투할 때 지구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마션>에서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지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동시에 보여준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입니다. 그런 그레이스에게 하염없이 거대한 우주는 일면 매우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순간을 덜컥 던지는 것도 같습니다만, 영화는 거기까지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레이스에게서는 <그래비티>의 주인공과 같은 과거의 아픈 기억도, <인터스텔라>의 주인공과 같은 내밀한 관계의 역사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만난 로키와 나누게 되는 절박한 상황 속의 진실한 우정입니다. 영화에서 우리가 몰두할 것은 고독한 존재들의 기적같은 유대와 거기서 발현되는 용기입니다.
영화는 그레이스가 기억을 잃은 뒤 우주에서 활약하는 이야기와 기억을 잃기 전 지구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이야기를 교차해 전개합니다. 과거 시점과 현재 시점의 두 이야기가 교직하면서 각각은 그레이스가 평범한 과학 교사였다가 우주로 '떠밀려' 나오기까지와 그렇게 떠밀려 나온 우주에서 '용사'로 거듭나기까지로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마주 보며 뻗어나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일찌감치 알게 되는 두 가지 사실은 그레이스가 분연히 지구를 구하겠다며 나설 위인이 될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과, 그가 나선 여정이 돌아옴을 장담할 수 없는 여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어느 배포 큰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영웅의 자리로 떠밀려 나온 보통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영화 속이나 현실에서의 영웅을 예찬하는 것은, 보통사람은 제발로 영웅이 되려 나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개는 누군가가 불려 나와 영웅이라는 '감투'를 뒤집어쓰게 될 뿐이죠. 이는 내 뜻과 상관없이 흘러가면서 나를 절체절명의 순간으로 몰아넣어 졸지에 용사의 자리로 떠밀곤 하는 우리의 인생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떠밀려 나온 영웅과 용사의 자리에서 금방 나가떨어질 줄도 모르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런 우리들을 향한 굳건한 믿음과 연대가 있다면, 영웅의 자리에 떠밀려 앉게 된 우리는 어느덧 진짜 영웅이 지녀 마땅한 용기를 키워내며 영웅이 되어가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용기를 키워내어 영웅으로 거듭한 이에게 우주는 여전히 두려울지언정 기꺼이 모험의 장이 되어 품을 열어줍니다. 그레이스가 로키와의 만남을 통해 '교사'에서 '용사'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이 모든 짐을 오롯이 내가 짊어져야 할 거라고 믿었던 그에게 로키가 마치 우주가 선물한 기적처럼 찾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맺어진 우주의 친구가 목격하는 우주의 장관은 인간을 무한히 작은 존재로 느껴지게 하는 압도감과는 또 다른, 무수한 가능성으로 이 작은 존재들을 품어주는 우주의 너른 품을 마주하는 듯한 감동을 줍니다.
라이언 고슬링은 <라라랜드>와 <바비>에 이어 이번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또 한번 필모그래피의 정점을 찍습니다. 2시간 반이 넘어가는 러닝타임의 제작비 2억불짜리 SF 블록버스터에서 나오지 않는 장면이 거의 없는 절대적 분량을 감당해야만 하는데, 우리가 다르지 않은 소심한 보통사람이 용사의 기질을 키워가며 우주를 무대로 삼아 마땅한 이로 나아가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고 역동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내며 영화가 주는 감흥의 중추 역할을 해냅니다. 그가 과학교사라는 거 외에 관객이 그에 대해 습득할 수 있는 정보가 극히 제한적인데도, 당장의 서사 속에서 그가 보여주는 풍부하고 조밀한 감정 표현만으로 우리는 그에게 온전히 몰입해 함께 두려워 하고 함께 힘을 얻고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활약한 라이언 고슬링과 함께 결정적으로 감정을 건드리는 존재로서 로키를 결코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본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돌덩이 자리에 등극할 로키는, 매우 영특하고 기민하면서도 자신에 대한 강한 확신을 바탕으로 한없이 이타적일 수 있는 존재로서 영화 속 우주 생명체의 계보 속에서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지구를 살리기 위해 그레이스가 뛰어드는 임무에 누구보다도 그 어떤 방식으로든 열정적이어서, 그에게 지원군이 될 인물인지 대립각에 설 인물인지 가늠할 수 없게 하는 입체적 인물인 스트라트를 연기하는 산드라 휠러의 비중을 뛰어넘는 존재감도 인상 깊습니다. 이야기 특성상 우주에서의 이야기에 힘이 한껏 실릴 수 밖에 없음에도 그가 보여주는 미묘하고 세밀한 연기 덕에 지구에서의 이야기에 적잖은 힘이 실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계 최고의 천문학자였던 칼 세이건이 "이 드넓은 우주에 우리밖에 없다면 그것은 엄청난 공간의 낭비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우주라는, 어쩌면 인류가 영원히 풀지 못할 미지를 향한 끝나지 않는 호기심을 대변하면서도 동시에 그 미지를 향한 어떤 희망을 품은 말 같기도 합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바로 그 희망 어린 호기심을 대변하는 듯한 영화입니다. 당최 어디 있는지도 모를 만큼 까마득히 먼 우주에서 일어나는 우정, 성장, 성취의 기적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저렇게 넓은 우주의 품 안에서 '고독'이라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과정에는 복잡한 과학 지식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겠지만 그 과정 끝에 다다르는 종착지에는 전공을 불문하고 누구나가 도달 가능한 인간과 우주에 대한 희망을 만날 수 있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