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서울환경영화제 방문 후기 및 상영작 리뷰
올해로 14회를 맞은 서울환경영화제가 열리는 이화여대 아트하우스 모모에 다녀왔습니다.
서울환경영화제 포스터 속 꽃무늬 만큼이나 봄을 지나 초여름으로 가고 있는 날씨도 화창해 좋았네요.
5월 18일에 개막했지만 직장일 때문에 평일에는 찾지 못하다가 일요일 하루 날 잡아 방문했습니다.
환경재단이 주최하고 환경부와 산림청이 후원하는 만큼 서울환경영화제는
환경을 테마로 한 영화들(장편/단편, 극영화/다큐 등)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전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지금, 더 이상 지성인들의 이슈만이 아니라
우리 일상 곁에 가까이 다가와 있는 환경에 관한 문제를 영화를 통해 만난 시간이었습니다.
이화여대 삼성홀과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리는 이번 영화제에 많은 분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주말이어서인지 아트하우스 모모 앞에 북적이는 관객들이 있어 영화제 분위기를 실감케 했습니다.
영화제 현장에 도착하여 받아든 프레스 ID 덕분에 풍성한 기념품들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환경영화제의 파스텔톤 로고가 새겨진 에코백을 비롯해
스태들러의 지우개 연필 2자루, 럭스 비누, 두툼한 티켓 카탈로그까지 받았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올 때마다 구수한 도라지차도 나눠주셔서 갈증을 느낄 새가 없었습니다.
이번 제14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의미 있는 영화도 두 편 보았습니다.
첫번째 영화 <익명의 정자 기증자>는 이번 서울환경영화제 심사위원이기도 한
유명 다큐멘터리 감독 제리 로스웰이 연출한 2010년 작품입니다.
제리 로스웰 감독 특별전 상영작으로 초청된 이 영화는
미국 전역에 자신의 정자를 기증해 '생물학적 자녀'를 열댓명 씩이나 둔 한 남자와
'생물학적 아버지'인 그를 찾아나선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경쾌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살짝 민망하고 어두울 수 있는 소재임에도 일면식도 없는 서로를 향한 순수한 호기심,
거부할 수 없는 혈육에 대한 애정이 인물들에게서 느껴져 참 따뜻한 영화였습니다.
수십년 간 서로를 모르고 살아온 생판 남인 만큼
생물학적 관계만으로 마냥 의존할 수는 없는, 한계가 명확한 관계겠지만
그렇게 서로 만나서 닮은 모습을 바라보고 서로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만으로
예상치 못했던 큰 유대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론 생물학적 자녀들이 자신들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나서도 좌절하기보다
그 근원을 진지하게 찾아나서며 자아 실현의 계기로 삼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요.
한편 영화는 이처럼 많은 생물학적 자녀를 만들어낸 미국 '정자은행'의 모습도 조명하는데,
생명으로 잉태된 정자를 기증받고 먼 지역으로 운송하며 윤리적 문제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정자은행의 면면은 무척 생소하고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제리 로스웰 감독의 GV가 이어졌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영화에 대한 감독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아래는 그 내용입니다.
설경숙 심사위원(이하 '설') : 무거운 소재도 가볍고 코믹하게 다루시길 잘 하는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정자 기증자에 대한 영화를 만들게 되셨는지?
제리 로스웰 감독 (이하 '제') : 처음에 프로듀서 분과 영화로 만들 줄은 미처 모른 채 유전공학에 대한 주제로 리서치를 하다가 프로듀서가 제프리를 발견하게 됐고 그로부터 생겨난 형제들도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엔 형제들이 제프리를 만나고 싶어할 줄 몰랐기에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프로듀서가 영화화를 생각하고 있을 때 제프리가 연락이 닿았다.
설 : 다른 영화에서도 인간의 심성이나 본질에 대해 코믹 터치로 질문을 던지지만, 이 영화에서는 특히 가족의 정체성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가족이 형성되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어떻게 보시는지?
제 : 제프리는 가족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 미국의 가장 끝에 있는 해변에서 개와 비둘기와 함꼐 사는 50세 가량의 남자다. 형제들은 아빠를 찾기보다는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하는 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
관객 1 : 감독님의 다른 영화인 <타짜의 와인>도 보고 이 영화도 봤는데, 감독의 두 영화가 삼은 소재가 모두 낯설고 신기했다. 평소 작업하실 때 어떻게 이런 소재를 접하고 접근하고 준비하시는지 궁금하다.
제 : 처음에는 인물과 이야기에 천착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다큐멘터리는 기본적으로 꼭 사회적 이슈에서 시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이슈에서 출발해서 사회적인 측면을 끌어내는 편이다. 영화에서 나중에 정자은행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게 여겼는데, 정자은행이 상업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도덕적, 윤리적 문제가 촉발될 수 있다는 부분도 조명하고자 했다. 기증자 개인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고, 제프리와 달리 굉장히 개인적이고 일반적인 정자 기증자는 또 달라질 수도 있겠다.
관객 2 : 영화에서 정자 기증을 받아서 태어났다는 걸 부모가 말하지 않고 숨기는 경우도 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촬영하는 데 있어서 그들의 동의를 얻는 게 어땠는지 궁금하다.
제 : 제프리가 먼저 연락한 후 그의 정자에서 생긴 아이들이 15명 정도 발견됐는데, 영화에서는 그 부모들이 아이에게 처음부터 진실을 밝혔고 그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아이들 위주로 촬영했다. 비밀로 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그 비밀이 밝혀지기 마련인데, 영화를 상영했을 때 한 65세 남자도 그때서야 자신이 정자기증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 친구를 통해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관객 3 : 제프리를 중심으로 영화가 전개되고 있는데, 만약 기증자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면 영화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구글 베이비'(인터넷으로 정자와 난자를 주문해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낳는 형태)에 관심이 많아 이 영화를 보게 됐는데 감독님의 생각은 어떠하며 만약 이걸로 영화를 만든다면 어떨지?
제 :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아주 다른 영화가 됐겠지만 그래도 공통점은 있었을 거다. 아빠 찾기보다는 몰랐던 자기 정체성의 일부를 찾는 이야기라는 점은 같았을 거다. 두번째 질문(구글 베이비)에 대해서는 유명인을 닮은 아이로 골라서 낳는다든지,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기술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윤리를 침범하는 기준이 어디까지인지 신중해야 하고, 윤리적 기준에 대해서도 나라마다 다른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객 4 : 영화 속 정자 기증과 달리 난자 기증의 경우 위험하기도 하고 비싸게 거래가 되고 있고 횟수에도 한정이 있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런 차이점, 남자가 정자를 기증하는 경우와 여자가 난자를 기증하는 경우의 차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기회가 됐던 것 같다.
제 : 일반적으로 좋다 나쁘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영국에서 익명의 정자 기증으로 아이가 태어난 후 나중에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이 경우에서 흥미로운 건 가족 안에서 진실을 솔직히 얘기했을 때 서로 이해를 더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관객 5 : 정자를 기증하는 데 횟수의 한계가 없나? 어떤 사람은 아이가 50명씩이나 되기도 하고 영화 속 얘기처럼 자신도 모르는 친척이 계속 생길 수 있으니까.
제 : 제한이 있다. 한 지역 안에서 10개 가구를 넘어서면 안된다거나 하는. 그러니 우려되는 것처럼 굉장히 큰 범위의 가족이 생길 가능성은 적고, 영화에는 50명 이상, 100명 이상의 자녀들이 있는 정자 기증자도 있는데 그들은 그런 규정을 어긴 사례인 걸로 생각된다. 어떤 경우는 두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알고 보니 같은 정자 기증자로부터 생긴 남매인 경우도 있었고, 어느 파티에 온 4살 짜리 아이 둘이 너무 닮아서 알아봤더니 같은 정자 기증자였다는 드문 사례도 있다.
두번째로 본 영화는 경쟁부문인 국제환경영화경선 부문에 초청된
덴마크 출신 데이빗 보렌스타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야나의 차이나 드림>입니다.
이 영화 역시 무척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바로 2013-14년을 휩쓴 중국의 건설 붐입니다.
번듯한 집을 향한 욕망을 파고들며 융성하던 중국의 건설 붐 속에서,
주인공 야나는 부동산 설명회를 더욱 세련되게 하는 외국인 공연단의 에이전트 사업을 벌입니다.
건설 붐을 타고 그녀의 사업은 승승장구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건설 사업 이면의 허황된 면이
여과없이 드러나면서 야나의 사업은 현실의 한계에 봉착하게 됩니다.
부동산 설명회 분위기를 띄우는 걸 넘어 부동산의 가치까지 있어 보이게 하고자
돈을 벌기 위해 중국에 온 외국인들을 뮤지션으로 둔갑시켜 공연을 벌이는 그들의 모습은
부조리하지만 너무 허술해서 한편으로 헛웃음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물론 사업에 임하는 야나의 모습은 누구보다도 진지하고 열정적이지만,
영화는 그녀가 전심을 다해 임하는 그 사업이 기대고 있는 중국의 건설 붐이
실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유심히 들여다 봅니다.
드넓은 중국 땅이 개발의 유혹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집이라는 공간의 가치가 왜곡되어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을 잠식하는,
그리하여 각기 다른 모습의 공간이 드넓게 펼쳐져 있던 중국의 광활한 대지가
삭막하고 획일적인 건축물들로 채워지는 과정이 스산하게 그려집니다.
집에 대한, 공간에 대한 인간의 허황된 욕망을 독특한 소재를 통해 그려나가는 다큐영화였습니다.
영화 <야나의 차이나 드림>의 상영이 끝난 후에도 GV가 이어졌습니다.
영화의 프로듀서인 제스퍼 잭이 영화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짧지만 흥미롭게 들려주었습니다.
아래는 그 내용입니다.
설 : 중국의 상황을 밀착해서 잘 찍어주셨는데, 야나와 감독이 어떻게 만나서 영화를 시작하게 됐는지?
제스퍼 잭 (이하 '잭') : 원래 덴마크 코펜하겐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던 중에 감독을 소개받았는데, 인류학, 학문적인 부분이 이끌려서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영화로 만들기로 결정되기 전에 이미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공연을 시작하면서 영상 촬영을 시작하게 되었고, 야나 캐릭터에 포커스를 맞추기로 프로듀서와 나중에 결정하였다.
관객 1 : 야나가 택시 안에서 눈물을 흘리는 마지막 장면 등 몇몇 장면은 다큐멘터리라고 하기에는 영화적으로 보여지는 장면들이 있는다. 이런 부분도 다큐로 찍어진 건지?
잭 : 완전 다큐멘터리가 맞다. 마지막 택시 장면은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카메라만 세팅해놨었는데 전화가 와서 드라마틱하게 보여진 것 같다.
관객 2 : 야나의 근황은 어떤지 궁금하다.
잭 : 2주 전에 만났는데, 이 영화가 상영되는 독일 뮌헨에 야나가 왔었는데 잘 지내고 있더라. 이후에는 서구의 부동산 관련이 아닌 중국의 문화유산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자국의 문화를 보호하는 총리 방침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또 배관 관련 사업도 같이 하고 있단다. 영화 촬영 이후에 얼마동안 고향에 머물다가 도시에 복귀했다.
관객 3 : 영화의 프로듀서로서 중국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거라 보는지?
잭 : 굉장히 거대하고 복합적인 여러 측면이 있는데 환경과 관련된 이슈만 해도 중국에서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건설 붐이 느려지고 있지만 건물에 쓰이는 콘크리트가 전세계 탄소 발생의 5%를 차지하는 만큼 환경오염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재미있는 것은 중국의 건물들이 지속 가능한 시간이 20년 이하라는 것이다. 미국은 75년, 영국은 100년으로 바라보는 데 비해 그 기간이 매우 짧기에 지어진지 얼마 안된 건물들도 하자가 생기고 새로 지어져야 하는 상황인데, 자본 문제도 있기에 이 부분에 대한 앞으로의 예측이 어렵다.
관객 4 : 이 영화 발표 후 중국의 지방정부나 건설회사 같은 곳의 반응이 있었는지?
잭 : 영화의 중국 배급사가 있어서 중국 개봉을 준비하고 있는데, 영화가 논쟁적이고 부동산 업계에 파란을 일으킬 거라 예상했으나 중국의 국수주의자들이 서구의 것을 들이지 말고 우리 것을 보호해야 한다는 도구로 이 영화를 활용하고 있어 예상과 다르게 중국이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언론에서도 영화 리뷰가 많이 나오고 있고. 중국에서는 앞부분 시진핑 총리의 말 부분을 쓸 수가 없어서 그것만 빼고 나머지는 똑같이 상영된다.
관객 5 : 영화에서 외국인들을 이용해 부동산 투자를 유치하려는 중국인들의 모습에 대해서 백인의 입장으로서 어떻게 보시는지?
잭 : 기분이 나쁘진 않고 웃어넘길 일이다. 다만 그것이 가져오는 다른 역학관계들이 흥미로웠다. 외국인이 가지는 다양한 면이 있는데 한 가지 면만 나와서 그 부분이 민망하긴 했다.
이렇듯 제14회 서울환경영화제는 환경과 크고 작은 연결고리를 지닌
색다른 소재의 영화들을 통해, '환경보호'라는 필요하지만 일상화된 슬로건을
새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