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만 Jun 01. 2022

어른들도 공룡은 못 참지, 추억은 더 못 참고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2 -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Jurassic World: Dominion, 2022)


전세계적 팬데믹으로 인해 개봉이 1년 가량 연기된 끝에 선보이게 된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쥬라기 월드' 3부작을 마무리하는 영화이자 1993년 <쥬라기 공원>에서부터 시작된 일련의 '쥬라기 연대기'를

한 차례 총정리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취지에 비추어 봤을 때 이야기의 방향성은 다소 의아할 수 있겠습니다만,

기상천외한 비주얼의 공룡들이 눈앞에서 복원되는 순간의 짜릿함이 여전히 강력한 데다, 성인 관객들은 주저없이 환호할 만한

1993년 <쥬라기 공원>을 향한 경의는 현시대에 오히려 더 강력하게 다가오며 어느 순간 위엄 있는 감동을 줍니다.


전편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이후 약 5년이 흐른 시점, 공룡은 인간들의 세계에 완전히 진입했습니다.

야생동물의 한 종류로 자리잡은 공룡들은 그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와 습성으로 인해 인간들의 세상을 더욱 예측 불가하게 만들었죠.

이런 세계에는 오웬(크리스 프랫)과 클레어(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같이 인간의 과오를 바로잡으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변해버린 시대마저도 기회라 여기며 세상의 주도권을 자기 손 안에 넣으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때마침 루이스 도지슨(캠벨 스코트)이 이끄는 거대기업 '바이오신'이 거대한 음모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고,

오웬과 클레어, 그들과 함께 살게 된 메이지(이사벨라 서먼), 동료 케일라(드완다 와이즈) 등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위험에 뛰어듭니다.

한편 그 과정에서 그들은 중요한 인물들과 만나게 되니, 바로 30년 전 '쥬라기 공원' 사건에 휘말렸던

앨런 그랜트(샘 닐), 엘리 새틀러(로라 던), 이안 말콤(제프 골드브럼)이 그들입니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Jurassic World: Dominion, 2022)


공룡과 인간이 더는 분리될 수 없게 된 세계에서, 그들은 과연 세계의 붕괴를 막을 수 있을까요.

공룡들이 더는 고립된 섬 안에만 머물지 않게 되는, 인간 세계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되는 전편의 결말은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쥬라기 월드'라는 제목이 상기시키듯 공룡들은 더 이상 '공원'에만 있지 않고 온 '세계'에 존재하게 되었으니 말이죠.

그러니 이번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는 아무래도 '공룡과 공존하는 인간의 세계가 어떻게 그려질까'에 향했을 겁니다.

이런 기대에 걸맞게 영화가 서두에 보여주는, 공룡이 세상의 일부가 된 풍경은 무척 생경하고 또 놀랍습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공존을 강요당하는 세계에 대한 스케치는, 소멸한 생태계를 부활시킨 인간에 대한 형벌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하지만 이후 영화가 전개하는 이야기는 의외로 한 세계에 놓이게 된 공룡과 인간의 전면적인 대결이 아닙니다.

사실 영화 속 인간들이 불경스럽고 오만하게 자연을 거스르는 데 이미 일조한 마당에, 그들과 공룡의 대결에서 어느 한쪽의 편을 들거나

어느 한쪽의 승패를 판가름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걸 잘 아는지, 영화는 두 종의 결전보다 다른 쪽으로 이야기를 선회합니다.

그렇게 선회한 이야기의 방향성은 아마도 이미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세계의 변화 위에서 인간의 과오를 반성하며,

더 이상의 공멸을 막고 공존의 길을 모색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다소 엉뚱하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3부작의 마무리인 만큼 더 펼치기보다 매듭짓기에 집중하는 이야기 속에서 일부 인물들은 다소 성급한 터치로 그려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들이 감히 명함을 내밀 수 없는 공룡들의 공포스럽고도 위엄있는 퍼포먼스를 만끽하기엔 충분합니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과 자본(제일)주의의 결합으로 스스로 재앙을 초래한 인류 앞에,

영화는 '인도미누스 렉스'나 '인도랩터' 같은 전편의 유전자 조작 공룡들이 아닌 실재했던 자연 상태의 공룡들을 마주세웁니다.

지상 최대 육식동물이라 불리는 기가노토사우루스,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지녔는데 초식성인 테리지노사우루스,

대단한 주력을 자랑하는 아트로키랍토르, 변화하는 가설을 반영하듯 깃털을 달고 '새의 조상'으로서의 모습을 한 피로랍토르 등

이번 영화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공룡들은 어른들도 눈 돌아가게 할 만큼 뚜렷한 개성과 능력치를 자랑합니다.

어떤 능력치를 보여줄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연출되는 공포 효과 역시 시리즈 특유의 매력을 계승하고요.

'인간 세계 속 공룡'의 풍경이 기대만큼 자주 나오진 않지만 그 가운데 등장하는 몰타에서의 추격 장면은 특히 장관입니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전형적인 장면이랄 수 있는 '이국적인 도시 속 카체이싱'에 공룡을 곁들인 장면은 확실히 진귀한 볼거리죠.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Jurassic World: Dominion, 2022)


그래도 역시 보면서 가장 흐뭇한 것은 무려 '쥬라기 공원' 원년 멤버 3인방을 함께 모셔놓고는

이번 '쥬라기 월드' 3부작이 줄곧 추구해 온, 오리지널 '쥬라기 공원'에 대한 경의를 비로소 표하는 순간들입니다.

앨런 그랜트 역의 샘 닐, 엘리 새틀러 역의 로라 던, 이안 말콤 역의 제프 골드브럼이 그야말로 세월만 흘렀을 뿐

의상까지도 30년 전과 비슷하게 입고 나와 그때 그대로의 분위기와 현재의 관록을 모두 뿜어내는 가운데,

깊은 인상을 남긴 <쥬라기 공원> 속 명장면들과 대사들을 결정적인 순간에 재치 있게 오마주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따른 인물들의 마인드 변화를 유머러스하게 그려내기도 하는데,

아마 관객도 격세지감으로 느꼈을, <쥬라기 공원>에서는 대표적인 공포의 대상이었던 랩터가 

<쥬라기 월드> 시리즈에서는 소중한 애착공룡(?)이 된 상황에 대한 언급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활기 넘치게 리드하는 <쥬라기 월드> 팀과 진중하게 조언하고 밀어주는 <쥬라기 공원> 팀의 호흡이 흐뭇하게 전개되니,

적어도 <쥬라기 공원> 1편을 봤다면 이 많은 부분을 유쾌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이 오리지널에 보내는 이런 경의가 새삼 유의미하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무려 30년 전에 나온 영화에서부터 경고해 온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만함과, 그 결과로 현실의 우리 앞에 다가온

전지구적 재앙에 대한 섬뜩한 경고가 지금도 아니 지금 더 유효하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마주하는, 마치 대작 자연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같은 영화의 엔딩은 적잖은 감동을 안기면서도

동시에 우리에게 '우리의 모든 선택이 초래한 돌이킬 수 없는 세계의 변화와 공존할 자신이 있는가'를 묻는 듯 했습니다.

대단원에 거는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이렇게 30년에 걸친 대서사를 나름의 방식으로 마무리합니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Jurassic World: Dominion, 2022)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를 가족으로 만드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