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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Feb 10. 2016

시리즈의 '기'를 살리다

<쿵푸팬더 3> - 여인영, 알레산드로 칼로니 감독

<쿵푸팬더 3>(Kung Fu Panda 3, 2016)


<슈렉> 시리즈 이후 드림웍스의 가장 확실한 수익 상품으로 자리매김한 <쿵푸팬더> 시리즈는 사실 미덕은 확실하되 발전은 바라지 않아도 되는 프랜차이즈였다. <슈렉>이 처음 등장했을 때 전세계 애니메이션의 판도를 뒤집어놓을 만한 스토리적, 캐릭터적 혁신을 가져왔던 데 반해 <쿵푸팬더>는 <슈렉>이 정착시킨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충실히 활용하면서 아시아 문화와의 접목이라는 색다른 시선 정도를 덧붙이는 데서 만족했다. 어떻게 보면 동화나라를 구하는 못난이 괴물 슈렉의 이야기를 아시아 버전으로 변주한 것으로도 보이는 <쿵푸팬더> 시리즈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더 쉬워진 유머와 흉내에서 머물지 않는 아시아 문화의 접목 덕이 아니었을까 싶다. 할리우드 문화를 세심하게 건드려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을 요했던 <슈렉>과 달리 <쿵푸팬더>는 주인공 '포'를 중심으로 한 슬랩스틱 코미디에 방점을 찍으며 즉각적인 웃음을 이끌어냈다. 또한 중국 대륙의 이국적인 분위기는 물론 애니메이션이라는 출신성분에 개의치 않고 무협영화 특유의 액션과 신비롭고 아련한 기운도 곧잘 구현해냈더랬다.

그렇게 눈을 번쩍 뜨이게 하진 않지만 친숙하고 호감어린 이미지로 국내 영화시장에도 안착한 <쿵푸팬더> 시리즈였는데, 사실 2편은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웠지만) 많은 관객들에게 좀 갑작스런 변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포의 과거사를 들추면서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고뇌와 갈등의 모습을 덧씌운 것이다. 감동을 받는 것이 나쁘진 않지만, 감동 같은 것에는 애초에 욕심이 없는 줄 알았던 영화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니 본래의 매력을 희석시키는 듯 해 당황스러웠을 법도 하다. 그랬던 가운데 3편이 또 나온다고 하니 기대보다는 우려가 클 수 밖에 없었을테지만, 다행히 제작진은 3편을 통해 세간의 평가에 대한 피드백을 어느 정도 성실하게 보여주었다. 3편이나 온 만큼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겠지만, <쿵푸팬더 3>는 그 부담에 얽매이지 않고 웃음과 메시지의 균형감각을 그럴싸하게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쿵푸팬더 3>(Kung Fu Panda 3, 2016)


명실상부 '용의 전사'로 당당히 거듭난 포(잭 블랙)이지만 시푸 사부(더스틴 호프먼)는 자꾸만 그 이상을 요구한다. 이번에 그가 포에게 바라는 것은 동료 쿵푸 마스터들 - 타이그리스(안젤리나 졸리), 맨팉스(세스 로건), 크레인(데이빗 크로스), 몽키(성룡), 바이퍼(루시 리우)의 스승이 돼라는 것. 시푸는 '기'인지 뭔지를 찾겠다며 자체 수련에 들어가겠다고 하고 스승으로서의 책무를 포에게 맡깆지만, 그가 그 일을 단번에 뚝딱 해치우기란 만무하다. 그런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천상계에서 우그웨이 대사부를 비롯한 쿵푸 마스터들을 모조리 제압한 뒤 지상으로 건너온 강력한 적 카이(J.K. 시몬스)가 포를 비롯한 쿵푸 히어로들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낙심해 있던 포는 때마침 자신의 생부인 리(브라이언 크랜스톤)와 극적으로 상봉하고, '기'를 찾아내 기를 수 있는 판다 마을의 존재를 알게 된다. 카이를 무찌르기 위해 포는 아버지 리와 판다 마을로 향하지만, 심신을 단련하기보다 놀고 먹는 게 더 익숙해 보이는 판다 마을의 모습이 몹시 편안한 한편 불안하기도 하다. 카이의 마수는 결국 판다 마을에게까지 닥쳐오고, 그 중에 가장 민첩한(?) 포는 결국 천성이 느리고 덜렁거리는 판다 마을 사람들에게 쿵푸를 가르쳐야 하는 상황과 맞닥뜨린다. 

3편에 와서도 <쿵푸팬더> 시리즈가 이제는 식상해진 시리즈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영화에 역력해 보인다. 우선 영상 면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났다. 2편 속 과거 회상 장면에서 실험적으로 쓰였던 변형된 작화를 3편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보여주는데, 첫번째가 2D 애니메이션의 질감으로 3D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이른바 '카툰 렌더링' 기법이다. 컴퓨터 게임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는 이 기법은 여러 시간과 여러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스케치 형태로 그릴 때 코믹스 같은 느낌을 주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한다. 여기에 특정 장면에서는 검은 먹과 붓으로 그린 듯한 수묵화 느낌의 작화도 선보이며, 기존 3D 애니메이션 방식의 작화까지 더해 한 영화에서 3가지 스타일의 작화를 만나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쿵푸팬더>가 무협영화의 틀을 바탕으로 과장되고 거대한 액션을 요한다는 점에서 카툰 렌더링 기법이, 동양화 특유의 신비롭고도 신화적인 느낌을 가미한다는 점에서 수묵화스런 작화가 효과적으로 쓰였다. 이러한 작화의 변주가 주요 액션 장면에도 활용되면서, 단순히 물리적 타격감이나 고통만 강조시키는 것을 넘어선 부드럽고도 힘찬 기운이 느껴져 좋았다. 


<쿵푸팬더 3>(Kung Fu Panda 3, 2016)


그 다음으로는 안고 갈 수 밖에 없는 주제에 대한 빤하지 않은 접근이다. 포가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맞닥뜨리게 되리라는 것은 판다인 그의 아버지가 국수를 파는 거위라는 것, 고로 그의 친아버지는 따로 있을 것이라는 설정에서부터 예감 가능했다. 2편에서 그 실마리를 어느 정도 풀기는 했지만 어머니에 대한 과거사를 살짝 풀어놓음으로써 궁금증 해결은 다소 불완전했다. 그러나 2편 말미에 등장한 판다 마을이라는 떡밥과 함께 생부 리가 등장하면서 포가 품고 있는 출신성분의 비밀은 보다 직접적으로 파고들 수 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다행히 <쿵푸팬더 3>는 2편에서 엇갈린 평가를 받았던 '진지모드' 식의 접근을 일정 부분 지양한다. 2편에서 싹을 틔웠던 '정체성의 고민'이라는 주제를 연장시켜 '정체성의 확립'으로 나아가지만, 영화는 그 주제를 굳이 드라마 모드로 진입해 다루는 대신 특유의 유머감각을 십분 활용해 재치있게 요리한다. 그리고 이번 편의 주요 키워드인 '기'(氣)를 이 주제와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며 이야기 바깥으로 겉돌지 않도록 녹여내는 데 성공한다.

'내가 누구인지 깨달아야 기를 찾을 수 있다'는 대사는 영화 속에서 포에게 펼쳐질 이야기를 대변하는 가장 적확한 문장이다. 물론 새로운 배경이 되는 판다 마을은 일단 말초적으로 큰 자극이 되는 요소다. 포처럼 둥그스름한 덩치를 한 판다가 한둘도 아니고 연령대를 막론하고 셀 수 없이 분포하고 있으니 카메라가 향하는 곳마다 '오구오구'라는 감탄사를 내뱉기 충분하다. 그 마을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보는 내가 다 '이너 피스'(내면의 평화)를 되찾는 기분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 판다 마을은 관객들에게 기분 좋은 자극을 주는 것을 넘어 포가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매우 중요한 장소다. 누구에게도 배운 적 없는 판다로서의 생활 방식을 비로소 배우게 되는 곳이지만, 영화는 예측 가능한 감동보다는 장난기 어린 재치로 그 배움의 과정에서 웃음을 유발한다. 첫번째 레슨이 시사하는 바가 '일찍 일어나지 말고 더 자라'라든가, 될 수 있으면 뛰지 말고 구르라든가 하는 식으로 '게으름의 미덕'을 강조하는 판다 마을 공동체의 모습은 코믹하면서도 한편으로 동양의 고전적 여유를 재현하는 듯도 해 어느 정도 수긍도 간다. 이는 1편에서 주인공 포를 중심으로 패러디되었던 무술영화 속 수련의 과정이 판다 마을이라는 더 큰 공동체 안에서 진행되면서 더 다채롭게 변주된 결과이기도 하다.


<쿵푸팬더 3>(Kung Fu Panda 3, 2016)


'기'를 찾는 과정은 곧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굳이 무술에만 국한되지 않아도 된다. 이는 쿵푸라는 무술을 주요 소재로 함에도 <쿵푸팬더 3>가 단지 쿵푸의 외적인 위력에만 매혹되지 않고 쿵푸, 나아가 동양 무술이 품은 본디 의미를 깊게 파악하진 못해도 흉내라도 내려는 정성을 보인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이는 중국이 제작에 직접 참여하면서 얻은 효과인 것도 사실이다.) 포가 자신을 완벽한 '용의 전사'로 단련시키기보다는 자신의 본질을 발견하며 저절로 '용의 전사'로 거듭났듯이, 판다 마을의 구성원들에게도 리본춤, 껴안기, 굴러다니기, 먹기 등 본능과도 같은 각자의 재능이 그들을 훌륭한 전사로 거듭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그 원동력은 다른 사람이 일차원적인 물리력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기운을 주변에 형성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기'라는, 지극히 동양적이지만 한편으론 막연하기도 한 소재를 '각기 다른 재능'이라는 매개를 통해 '정체성의 발견과 확립'이라는 주제로 귀결시킨 것은 쉽고도 영리한 전략이다. 어린이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어른들도 흐뭇해 할 메시지다.

잭 블랙이 보여주는 포 목소리 연기는 역시 명불허전이다.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정도였다가 <무한도전>을 통해 이제는 전 국민이 알게 된 그의 유쾌한 에너지는 여전히 맞춤옷처럼 포의 넉살 좋은 에너지와 잘 어우러진다. 이쯤 되니 혹여 다음 편이 또 나온다면 그때는 목소리 연기만 할 것이 아니라 모션 캡처 방식으로 그의 몸짓까지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더스틴 호프먼, 안젤리나 졸리, 세스 로건, 데이빗 크로스, 성룡, 루시 리우 등 포의 스승과 동료 쿵푸 마스터들의 목소리를 연기한 기존의 배우들도 함께 하지만, 확실히 시리즈가 갈수록 포의 원톱 체제로 가다보니 그들의 출연이 '특별출연' 급의 비중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한편 새로운 악당 카이 역을 연기한 J.K. 시몬스는 <위플래쉬> 등에서 보여준 것과는 또 다른 중저음의 목소리가 인상적이고, 리본춤의 달인인 메이메이 역을 연기한 케이트 허드슨도 짧게 치고 빠지는 코믹 연기로 웃음을 준다. 한편 이 시리즈의 음악을 맡은 이가 알고보니 한스 짐머라는 걸 문득문득 새삼 깨닫게 되기도 하는데, 경쾌하기 그지없는 이 시리즈 치고는 의외로 가슴을 저미는 현악 OST를 들을 때가 그렇다.


<쿵푸팬더 3>(Kung Fu Panda 3, 2016)


다소 전통적인 멜로드라마의 구조를 취했기에 <쿵푸팬더> 특유의 캐릭터 면이나 드림웍스 특유의의 재기발랄함 면에서 아쉬움을 주었던 전편에서 벗어나, <쿵푸팬더 3>는 꾸준히 웃음이 입에 걸리게 하는 경쾌한 웃음과 메시지 사이의 중심을 잘 잡는 데 성공했다. 떠나간 엄마에 대한 그리움, 낳은 아빠와 기른 아빠의 부성애 같이 감동을 자아낼 요소들이 있지만 섣불리 감정적으로 빠지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첨가하고 웃음으로 감싸안음으로써 경쾌한 가족영화로서도 손색 없다. 드림웍스의 선배 애니메이션들인 <슈렉>이나 <마다가스카>처럼 3편에서 더 좋지 않은 길로 빠지느냐 더 좋은 길로 발돋움하느냐의 기로에 섰을텐데, 다행히 <쿵푸팬더 3>는 다음 편이 궁금해지는 길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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