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만 Apr 01. 2016

꿈의 공장은 무너지지 않는다

<헤일, 시저!> - 에단 코엔, 조엘 코엔 감독

              

<헤일, 시저!>(Hail, Caesar!, 2016)

                                               

흔히 할리우드를 가리켜 '꿈의 공장'이라 일컫는다. 워낙 많이 들어온 표현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 보이지만, 실은 꽤 역설적인 표현이다. 그 무엇보다도 내밀하고 개인적인 환상이라 할 수 있는 '꿈'이라는 것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공장'이라니. 그러나 할리우드는 이런 역설적인 표현을 실현 가능케 만든 곳이다. <열차의 도착>의 뤼미에르 형제, <달세계 탐험>의 조르주 멜리에스 등으로부터 영화라는 예술은 사람들이 머릿속으로만 그려왔던 환상의 순간들이 눈 앞에서 움직이게 하는 마술을 선보여 왔고, 이에 사람들은 영화로 인해 꿈꾸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어왔을 것이다. 이런 영화의 마법이 할리우드의 대규모 제작 시스템에 의해 수십, 수백편 씩 전국 곳곳의 극장에서 선보여지게 됐으니 '꿈의 공장'이라는 시적이고 역설적인 표현이 현실화되었다는 건 틀린 말이 아닐 테다. 최근 몇 년 간 <휴고>, <아티스트> 등의 여러 영화들이 이처럼 사람들의 꿈과 환상을 꽃피우고 그것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애써온 황금기의 영화산업을 칭송하고 또 그리워해 왔다. 

현대 할리우드의 알아주는 거장 형제 감독인 코엔 형제(에단 코엔-조엘 코엔)에게도 그 때를 향한 애정과 존경은 예외가 아니었나보다. 갱스터, 이 형제는 오랜만에 내놓은 코미디 <헤일, 시저!>를 통해 지금의 할리우드가 있게 한 50년대 황금기의 제작 시스템과 그것을 온전히 굴러가도록 혼신의 힘을 다한 사람들을 향해 특유의 장난기 어린 웃음을 섞어 애정 어린 헌사를 보낸다. 아마도 1994년에 내놓은 <허드서커 대리인> 이후 이들이 내놓은 가장 착한 영화일 <헤일, 시저!>(코엔 형제 영화 중 유일하게 국내에서 '12세 이상 관람가'를 받은 영화다)는 갖은 돌발변수들을 수습하며 1년 같은 하루를 보내는 한 영화사 프로듀서의 이야기를 통해, 그만큼 우스꽝스럽고 우습고 부산스러울지라도 끝내는 제 갈 길을 놓치지 않고 탑을 쌓아가는 할리우드에 대한 경의를 유쾌하게 녹여낸다.               


<헤일, 시저!>(Hail, Caesar!, 2016)

                                                                                                                      

아내한테 금연한다고 해놓고 두어 가치 또 피고 말았다는 고해성사로 이 남자, 캐피톨 픽쳐스의 총괄 프로듀서 에디 매닉스(조슈 브롤린)의 하루가 또 시작되었다. 그의 영화사는 현재 대하 사극 '헤일, 시저!', 서부극 '게으른 달', 예술성 있는 첩보추리극 '즐겁게 춤을', 뮤지컬 영화 '흔들리는 배', 수중발레 퍼포먼스 영화 '조나의 딸'까지 무려 5편의 영화를 동시에 책임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영화의 가짓수만큼 다양한 돌발사고들이 터지면서 에디를 골치 아프게 한다. '헤일, 시저!'의 주연배우인 톱스타 베어드 휘트록(조지 클루니)이 의문의 납치를 당하는가 하면, '즐겁게 춤을'에 새로이 투입된 카우보이 전문 배우 호비 도일(엘든 이렌리치)은 나아질 줄 모르는 발연기로 감독인 로렌스 로렌츠(랄프 파인즈)의 뒷목을 잡게 한다. 그런가 하면 '조나의 딸'의 주연배우 디에나 모란(스칼렛 요한슨)은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 사실을 털어놓고, 쌍둥이 가십 저널리스트인 도라 데커와 테살리 데커(틸다 스윈튼)는 베어드 휘트록의 실종을 알아내고는 그의 사생활 추문을 드러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말이 프로듀서지 사고 터지면 수습하는 것부터 해야 하는 '해결사'나 다름없는 에디는 과연 이 동시다발적 사건사고를 무사히 수습하고 오늘도 영화사가 제대로 굴러가게 할 수 있을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인사이드 르윈>과 같이 세계적으로 굵직한 인정을 받은 최근 몇 년간의 작품들에 비하면 <헤일, 시저!>는 대단히 가벼운 톤의 영화다. 하루라는 제한된 시간동안 내로라 하는 할리우드 배우들이 한꺼번에 등장해서는 갖가지 소동을 일으켰다가 수습해 가는 과정을 그리니, 옛날옛적에 봤던 이벤트성 홍콩영화 느낌이려나 싶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헤일, 시저!>가 지향하는 것은 그런 식으로 밑도끝도 없는 가벼움이 아니다. 1950년대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 대한 풍부한 배경지식과 지극한 애정을 바탕으로, 그 당시 그 곳에서 일어날 법한 풍경을 시끌벅적하게 재현하고자 하는 유쾌함이 영화 전반에 흐르고 있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 언뜻언뜻 연상되는 당대 영화나 배우들이 몇몇 있는데, 당장 떠오르는 것들 외에도 더 있을 것 같아서, 언제 한번 자리잡고 앉아서 영화가 레퍼런스로 삼은 실제 작품이나 인물들을 찾아본다면 영화를 더 밀도 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헤일, 시저!>(Hail, Caesar!, 2016)

                                                                                                                                   

하루동안 펼쳐지는 이야기이지만, <헤일, 시저!>에는 당대 할리우드에 바람 잘 날이 없게 했던 갖가지 이슈들이 응축되어 있다. 첫째로 '종교영화' 이슈다. 영화 속 영화 중 하나인 '헤일, 시저!'는 얼핏 보기에 보통의 대하 역사 드라마로 보이지만 거기에 붙어 있는 '그리스도의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결국 종교적인 메시지로 귀결되는 영화다. 1950년대에 종교적 색채를 띠며 만들어진 <벤허>, <쿼바디스> 등의 대작영화들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영화 초반에 '헤일, 시저!'를 놓고 에디가 종교인들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목사, 신부, 랍비 등 여러 종교인들을 불러 모아 의견을 청취하는 장면이 재미있게 그려진다. 분명 사회적, 상업적 소구에 의해 만들어졌을 종교영화를 놓고 예수의 종교적인 포지션을 어디에 둘 것인지, 신적인 존재를 영상화하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해 각자의 교리를 근거로 결론이 수렴되지 않는 토론을 펼치는 모습이 사뭇 우스꽝스럽게 묘사된다. 두번째로 매카시즘의 바람이다. 당시 할리우드는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지목하는 매카시즘의 영향을 받아 많은 각본가들이 공산주의자의 혐의를 뒤집어써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던 상황이다. 베어드 휘트록이 납치되어 향한 곳에 모여 있는 일련의 작가 무리들이 이와 같은 '공산주의자로 몰린 작가들'로 묘사되는데, 다만 더 코믹한 지점이 있다면 이들이 정말 억울하게 공산주의자로 몰린 건지 아니면 정말 공산주의에 심취한 건지 모호한 경계에 서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헤일, 시저!>에는 1950년대 할리우드에 날개를 달기도, 족쇄를 채우기도 했던 사회적 이슈들이 경쾌한 터치로 반영되어 있다.

물론 시대를 초월해 현대 대중문화에도 여전히 존재할 이슈도 산재해 있다. 자신의 작품관이 너무나 확고한 감독이 가뜩이나 탐탁치 않은 배우를 주인공으로 받아들였는데 연기까지 개떡같이 하면서 불거지는 불화라든지, 특히나 보수적이었을 당시 사생활 관리가 철저해야 함에도 이에 아랑곳 없이 자신의 사생활을 될대로 돼라는 식으로 관리하는 배우의 도발이라든지, 거느리고 있는 수많은 독자들을 빽으로 삼아 위협적으로 나오는 가쉽 칼럼니스트라든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사그라들 줄 모를 갖은 트러블들이 줄을 서서 에디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에디는 이렇게 이중삼중으로 다가오는 돌발상황에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프로페셔널한 태도로 응수해 나간다. 배우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케어하는 매니저가 되기도 하고, 배우와 감독 간의 갈등을 효과적으로 중재하기도 하고, 배우 납치 사건을 둘러싸고 연루된 자를 족쳐서 실마리를 얻어내는 해결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영화 속 영화 '헤일, 시저!'에서 그렇게 부르짖던 예수가 아니라 에디가 일종의 신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실제로 <헤일, 시저!>는 이처럼 신적인 스튜디오 운영 능력을 보이는 에디를 중심에 놓고서, 하루에도 몇십번씩 휘청였을 영화사를 온전히 지켜낸 50년대 할리우드에 대한 헌사를 보낸다.                     


<헤일, 시저!>(Hail, Caesar!, 2016)

                                                                                                                                 

물론 코엔 형제가 또 하나의 대표작 <바톤 핑크>에서 그린 것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 속 할리우드 역시 마냥 깨끗한 곳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바톤 핑크>의 배경이 되는 영화사의 이름도 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캐피톨 픽쳐스'였다)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에 걸맞게 살인 같은 무자비한 범죄가 일어나지만 않을 뿐, 남사스런 추문을 무마시킨다거나 여배우에게서 '미혼모'의 딱지를 떼기 위해 낳은 아이를 입양하는 편법을 사용한다거나 하는 식의 꼼수는 얼마든지 넘쳐난다. 그러나 이처럼 험한 꼴 겪고, 손에 더러운 것도 묻히는 에디의 고군분투 속에서 영화라는 예술은 가장 완벽하고 고결한 형태로 탄생하여 대중 앞에 선보여진다. 갖가지 우스꽝스러운 해프닝 속에서 정작 결과물로 나오는 영화는 몹시 깔끔하고 유려하게 정제되어 있어서, 뮤지컬 영화는 음악이 정말 좋고 수중발레 영화는 눈호강을 제대로 시켜줄 정도다. 영화 속 영화 '헤일, 시저!'에서 예수 역할을 맡은 배우조차도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고 신비주의에 둘러싸이는 반면, 에디는 이런 식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얼굴 팔면서 영화사를, 나아가 할리우드가 별탈없이 돌아가게끔 지켜낸다. 마치 격렬한 발놀림으로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백조처럼, 이렇게 별 해괴망측하고 우스꽝스런 해프닝 속에서 할리우드라는 꿈의 공장이 세워졌다는, 쓴웃음 섞인 애정이 영화 안에 듬뿍 담겨 있는 듯 하다.

50년대 할리우드 황금기를 최적으로 재현하고자 내로라 하는 할리우드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헤일, 시저!>는 기특하게도 이 배우들을 단 한 명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출연 비중에 상관없이 저마다 명확한 개성을 부여하고 등장하는 장면에서 온전히 장면을 차지할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준다. 영화사의 총괄 프로듀서 에디 매닉스 역의 조슈 브롤린이 특유의 심드렁하고 무뚝뚝한 표정을 현장 곳곳을 종횡무진 누비는 가운데(한편으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코믹 버전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헛바람 잔뜩 든 톱스타 역의 조지 클루니, 발연기로 혈압 올리는 데 재주가 있는 서부극 전문 배우 역의 엘든 이렌리치, 이 배우로 인해 예술가적 자부심에 스크래치 제대로 나는 감독 역의 랄프 파인즈, 성격차이인지 경쟁심인지 모를 감정을 뿜어내는 쌍둥이 칼럼니스트 역의 틸다 스윈튼, 본능에 충실한 사생활을 영휘하는 여배우 역의 스칼렛 요한슨, 출중한 노래와 춤 실력 뒤로 뭘 숨겼는지 모르는 톱스타 역의 채닝 테이텀, 누군가의 곤란함을 해결하기 위해 묵묵히 자신을 바치는 '프로 인격자' 역의 조나 힐, 그녀가 잡고 있는 게 필름인지 치렁치렁한 머리인지 모를 편집기사 역의 프랜시스 맥도먼드까지. 이 쟁쟁한 배우들이 장면 곳곳에서 불쑥 튀어나와서는 기대에 걸맞는 역할을 보여주며 유쾌한 앙상블을 펼친다.    


<헤일, 시저!>(Hail, Caesar!, 2016)

            

꿈과 환상을 먹고 사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그 꿈과 환상이 마음껏 노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일종의 조물주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통해 꿈을 꾸고 삶을 발견한 사람에게는 영화를 만들고,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바닥을 다져준 이가 신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영화를 통해 때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삶의 냉기를, 때로 훈풍 같은 삶의 온기를 관객들에게 전했던 코엔 형제는 <헤일, 시저!>를 통해 자신들이 존재할 수 있게 한 할리우드의 부흥기, 그 가장 부산하고도 찬란했던 순간을 그리며 마음을 다 잡은 듯 하다. 할리우드 영화가 예술이라는 고운 자태의 창작물로 거듭날 수 있게 한 우스꽝스럽고도 경쾌한 소동의 연속에 연민과 애정을 보내면서 말이다. 그 마음이 비쳐 보여서인지, 꿈의 공장로서의 역할을 직시하며 할리우드의 푸른빛 미래를 내다보는 일면 계몽적인 엔딩조차도 거부감 들기보다 오히려 깜찍하게 느껴진다. 꿈의 공장을 향한 그 진실한 애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바, <헤일, 시저!>는 만드는 코엔 형제도 즐거웠을 것이고 보는 영화팬도 즐거울 영화다.                                                                                                                                    
                                                    

                                     

작가의 이전글 시리즈의 '기'를 살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