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실이라는 말 앞에서

떠나는 발걸음마다 남겨진 이야기

by 밍뚜



외과계 중환자실. 오늘은 이곳의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 기록은 조금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다.

내가 근무했던 곳은 대학병원의 외과계 중환자실이었다.
확장 공사 후 넓이는 약 100평, 침상은 25개. 그중 마지막 25번 침상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응급 이송을 대비해 늘 비워두었다.

중환자실은 일반 병실처럼 벽으로 구분되지 않았다. 넓은 공간에 침상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환자 사이를 가려주는 건 얇은 커튼뿐이었다.
누구든 한눈에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하고, 응급 상황이 닥치면 단숨에 달려갈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내부의 음압격리실은 또 달랐다. 환자가 가진 균이 퍼지지 않도록 내부 공기압을 낮춘 구조, 이중 자동문으로 개폐되는 출입문. AP 가운, 폴리글러브, 신발 커버, N95 마스크까지, 때로는 전신을 무장한 채 들어가야 했다.

스테이션 사이 중앙 복도에는 대형 모니터가 있었다.

심장 리듬, 호흡수, 산소포화도, 혈압이 숫자로 오르락내리락하며 실시간으로 표시됐다.


삑- 삑-. 기계음이 리듬처럼 이어지던 어느 날, 수술방에서 연락이 왔다.
후문으로 들어온 스트레처카 위에는 갓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남학생이 누워 있었다.

수능을 마치고 친구들과 계곡에 놀러 갔다가, 돌아오지 못할 사고를 당한 아이였다.
차마 글로 다 옮길 순 없다. 아직도 마음이 쓰라리고, 그 장면을 잊지 못하겠다.

카덱스를 열어보니, 구급차를 부른 시점에서 이미 골든타임은 지나 있었다.

분당 맥박 16회. 구급차 안에서도 심폐소생술이 이어졌지만 호흡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의료진은 누구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맥박이 남아 있는 한, 끝까지 모든 손과 마음이 붙잡고 있었다.

첫날은 비교적 안정적이었지만, 곧 급격히 상태가 나빠졌다.
코드블루 방송이 울렸고, 나는 산소탱크를 밀며 뛰었고 액팅 선생님은 응급카트를 밀었다.
그 다급한 순간, 인턴 선생님은 침상 위로 올라가 CPR을 이어갔다.

심장 리듬이 약하게 돌아오자 곧바로 재수술이 진행됐다.
25번 침상에 구겨져 남은 시트가 내 마음을 파고들며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대수술 끝에 아이의 몸에는 에크모가 연결됐다.
심장과 폐가 멈췄을 때, 대신 박동하고 대신 호흡해 주는 장비. 굵은 관이 팔에서 뻗어 나와 피를 순환시키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은 너무도 평온해 보였다. 고통조차 잊은 듯한, 조용한 표정.
그러나 보호자는 울부짖었다. 그 울음소리는 병동을 찢을 만큼 날카롭고 절박했다.

에크모를 단 환자는 조금만 자세가 틀어져도 위험하다. 체온이 높아져 시트는 금세 눅눅해졌고, 그 습기가 피부를 짓무르게 했다.

그래서 8명이 동시에 들어 올려 새 시트로 바꿔드려야 했다. 구김 없이 팽팽하게 당겨 깔린 시트는, 그 자체로 또 다른 치료였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매일 아이의 손을 잡으며 혹시라도 돌아와 주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아이는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새벽, 얼굴 위로 시트를 덮었고. 인턴이 사망 시각을 선언했다.


중환자실에서 ‘퇴실’이라는 단어는 여러 의미를 가진다.
어떤 이는 일반 병동으로, 어떤 이는 집으로, 그리고 또 어떤 이는 마지막 퇴실을 한다.

며칠 뒤, 또 다른 퇴실이 있었다. 이번엔 40대 남자 환자였다.
4중 추돌 교통사고로 입실했을 때, 상태는 위태로웠다. 수술 후에도 감염 위험이 높아 의료진 모두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하지만 체력이 좋았던 덕분일까. 보름 만에 의식을 회복하셨다.
말은 할 수 없었다. 기관삽관 튜브가 구강 내에 연결돼 있었기에 눈 깜빡임으로만 소통했다. 한 번이면 예, 두 번이면 아니오.

열흘쯤 지나 튜브가 제거되고 산소마스크로 교체되자, 가족들이 들어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기적 같다.”


그리고 어느 날, 환자분이 내게 말씀하셨다.

“선생님,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새벽에도 근무하시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늘 잠든 얼굴만 보던 중환자실에서, 내 눈을 바라보며 말을 건네는 환자는 너무도 낯설고 특별했다.

한 달 반 뒤, 그 환자분은 일반 병동으로 전실하셨다.
무거운 침대를 밀고 가는 내 발걸음은 이상하게도 가벼웠다.

‘제발, 안전 운전하세요.’
그때 진심으로 드렸던 당부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중환자실은 매일 누군가를 받아들이고, 또 누군가를 떠나보낸다.


나는 그 모든 퇴실의 순간마다, 그저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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