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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니 Mar 05. 2021

내 이름을 부르면 두명이 돌아본다

이름에 대한 이야기

고등학교 문학 시간의 일이다. “지민이가 두번째 문단부터 읽어봐.”라는 선생님 말씀에 아무 생각없이 두 번째 문단부터 소리를 내어 읽어 내려갔다. 뭔가 웅성거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지만,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이려니 생각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옆자리의 짝꿍이 “이지민이 먼저 읽고 있었는데, 네가 가로채서 읽었어.” 라고 얘기해준다. 순간 얼굴이 화끈했다. 분명 선생님이 번호 순서대로 호명을 하셨고, 내 앞 번호인 미선이 다음은 나였다. 두번째 문단을 읽어야할 지민이는 김지민 내가 맞는데, 번호 순서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이지민이 선생님의 호명을 받고 읽기 시작한 거다.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따라 읽기 시작해버린 나 때문에 순간 교실 분위기가 싸해졌다. 문학 선생님은 어색하게 웃으며 “이 반에 지민이가 2명이구나, 선생님이 몰랐네.” 하신다.


전교 권 성적을 달리던 중학교 시절과는 달리, 큰 도시로 30분이나 버스를 타고 다녔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전교 권 순위에 얼굴도 내밀지 못했다. 그런데 이지민은 달랐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하던 날, 성적우수상 수상자의 이름이 강당 화면을 가득 채웠고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거기에 이지민은 있었지만 김지민은 없었다. 손녀의 졸업식을 축하해주러 온 외할머니도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셨고, 엄마 역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사람들에게는 늘 또 다른 지민이가 있었다. “우리 사촌 오빠 이름도 지민이야.”, “우리 회사에도 지민이 있어.” 심지어 길을 걷다 가도 내가 아닌 다른 지민이를 부르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다. 개그우먼 ‘김지민’씨가 데뷔해 활약을 하기 시작했을 땐, 정말 이름을 바꾸고 싶었다. 나는 어떻게 해도 그녀보다 잘나질 수 없을 것 같았다. 친구들은 재밌다며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김지민’을 캡처해 나에게 보냈다. 악의는 없었지만, 반갑지는 않았다. 최근에는 유명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지민’이 등장해 친구들의 단톡 방에서 얘기하는 지민은 내가 아니고, 그 멋있는 지민인 경우가 더 많았다.


축의금 봉투에 이름을 쓰거나, 자주 연락하지 않던 지인에게 연락을 할 때에도 내가 어떤 지민이 인지 꼭 밝혀야했다. “A회사 소속의 김지민입니다.” 혹은 “B대학교를 졸업한 지민이야.”라고. 이제는 익숙해져서 억울한 마음도 없이 내가 아닌 단체의 이름을 빌려 나를 소개한다. 상대는 그제서야 “아아, 그 지민씨”하며 인사를 받는다. 



회사 메신저에서 김지민을 검색해봤다.


회사에서 나는 김지민B로 통한다. 그럼 그렇지, 이렇게 큰 회사에 지민이가 1명만 있을 리가 없다. 입사하던 날, 내가 김지민B라는 사실을 알고 사내 메신저에 ‘지민’을 검색해봤다. 김지민A와 김지민B 그리고 다른 성을 가진 지민이들까지 모두 5명이 있었다. 성까지 같은 김지민A와의 업무 혼란은 엄청나다. 많은 사람들이 김지민A에게 가야할 메일을 나에게 잘 못 보냈고, 심지어 임원급인 김지민A에게만 공개된 정보가 실수로 동명이인인 내게까지 공개된 적도 있다.


지민이 5명 중 2명은 우리 본부 안에 있다. 회의 도중 다른 팀의 “지민님에게 물어 볼게요.” 하는 말에 “저요?”하고 되물어본 적이 몇 번 있다. 우연한 기회에 옆 팀 지민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내심 특이한 성을 가진 그녀가 부러웠던 속내를 내비쳤다. 그랬더니 그녀는 “저는 제발 성이 평범했으면 좋겠어요.” 라는 의외의 대답을 들려줬다. 나는 이름이 평범한데 성까지 김이라 어디를 가도 내 존재가 흐릿한 것 같아 싫었는데, 그녀는 독특한 성 때문에 부각되는게 싫었다고 한다. 성은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으니 우리의 이름에 대한 고민은 깊어져만 간다. 


내 이름 ‘지민’은 지혜로울 지(智)에 옥돌 민(珉)을 써서 뜻 그대로 풀이하면 ‘지혜로운 옥돌’이다. 돌이 지혜로워 봐야 얼마나 지혜롭겠냐 싶다 만은 옥돌 민(珉)은 친가의 돌림자라서 엄마 역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엄마가 나를 낳고 병원에서 퇴원하기도 전에 아빠는 집에서 옥편을 찾아가며 뜻도 좋고, 부르기에도 예쁜 이름을 찾았다. 후보는 ‘지민(智珉)’과 ‘효민(孝珉)’이었는데, 엄마가 그 중 ‘지민’을 골랐다. 초등학교 시절 막 한자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은 내게 땅 지(地)에 백성 민(民) 아니냐며 너는 그냥 백성이라고 짓궂게 놀렸지만, 나는 아니라고 우리 아빠가 지어준 지혜로운 이름이라고 되받아 쳤다.


어릴 적 나는 엄마와 아빠가 직접 지어준 ‘지민’이라는 이름이 꽤나 맘에 들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한번 지어진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게 조금 답답하기도 했고, 내 이름이 낯설게 느껴 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가 아닌 지민이들과의 에피소드가 늘어나면서 점점 내 이름을 멀리한 것이다.


흔한 이름은 ‘지민’뿐만이 아니다. 회사 내 우리 본부에만 해도 ‘지혜’가 2명. 사내 메신저에 검색을 해보면 ‘민지’는 8명에 달한다. 단순히 많다고 해서 그 이름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나는 다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 흔한 이름을 가진 우리들이 나를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지 있는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자라면서 이름 앞에 소속이나 어떤 수식어가 붙어야 하거나, 뜻하지 않게 같은 이름의 누군가와 비교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지민이들 중에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방법으로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 내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어야 한다면 ‘작가’ 혹은 ‘글을 잘 쓰는 친구’이고 싶었다. 그렇게 내 존재를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던 중 5년 전,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남편은 내가 ‘지민’이라 놀랐다고 했다. “가장 예쁜 이름은?” 이라고 누군가가 물으면 지체 없이 “지민!”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지민이라는 이름이 예쁘고 좋았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이름이 지민이라서 내가 더 특별해 보였다고도 했다. 그날 이후 내 이름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가 ‘지민아’하고 불러줄 때 마다 왠지 우쭐하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의 존재를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지민아’는 사회생활을 하며 숱하게 불렸던 ‘지민’이라는 호명과는 완전히 달랐다. 결국 이름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가치의 문제였던 것이다.


글을 쓰기로 결정하고, 내 존재를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난 이후 나는 이름에 대해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흔한 이름을 핑계로 계속해 내 존재를 낮춰 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흔한 이름 덕분에 누구보다도 더 나에 대해 격렬하게 고민해온 것 같다. 그 숱한 고민 덕분에 이제는 스스로 내 가치를 찾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주말에 뭐하고 싶냐는 남편의 질문에 “글 쓰고 싶어.”라고 답한다. 어쩌면 “블로그를 하고 싶어” 혹은 “친구에게 편지를 쓸 거야” 라는 말이 그의 입장에서는 더 명확할지도 모른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지도 않고, 꾸준히 글쓰기를 하지도 않는 내가 말하는 ‘글’이라는 단어의 모호함을 나도 안다. 하지만 그는 자세히 묻지 않고, 채근도 하지 않고 “응, 하고 싶은 거해.”라며 늘 조용히 기다려 준다. 덕분에 나는 이렇게 흔한 이름에 대해 하염없이 생각하다가 결론에 도달한다.


지난 주말, 남편과 함께 서점에 갔다. 서점에서 뛰어다니는 꼬마 아이를 엄마가 “지민아” 하고 부른다. 그 아이를 보며 ‘너도 꼭 너의 이름을, 너의 가치를 부단히 지켜내렴.’ 마음속으로 당부한다. 



                            핫도그를 좋아하던 어린시절의 지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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