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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니 Feb 26. 2021

작년 한 해 당신이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인가요?

남들 다 하는 일을 이제야하며 느낀 점

작년 한 해 당신이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인가요?


다이어리를 펼친 순간 눈 앞에 질문이 놓여졌다. 올해는 본격적으로 글을 써보고자 글쓰기 근육을 단련하기로 했고, 그 방법 중 하나로 매일 나에게 단 하나의 질문을 던져주는 다이어리를 샀다. 2월이 돼서야 다이어리를 펼쳐봤는데 첫 질문부터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작년 한해 가장 잘한 일?



운전.



뇌에 입력된 것처럼 운전이라는 단어가 퍼뜩 떠올랐다. 학창시절 우리집에는 자유롭게 끌고 다닐 수 있는 승용차가 없었는데,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운전면허를 따게했다. 아빠가 학원을 운영하셨기 때문에 우리집에는 매일같이 학생들을 실어 나르던 대형버스가 있었고, 그래서 내 면허도 1종 보통이었다. 면허를 따고도 그 버스를 운전할 일은 한번도 없었다.


문제는 그 버스 뿐만 아니라 스무살 이후 운전을 단 한번도 하지 않은 것. 아니 할 기회가 없었다고 말하는게 정확하겠다. 그렇게 34살이 됐고, 나는 15년된 장롱면허 보유자였다. 운전을 하고 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나도 언젠가 내 차를 끌고 여기저기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그의 차는 나에게 기동력이 되어주었다. 덕분에 한동안 운전 생각을 하지않았다. 결혼을 한 후, 운전을 하고 싶어하는 나에게 남편은 "도로 위엔 미친놈들이 너무 많아. 필요할 때 마다 내가 태워다줄테니 운전을 안하면 안될까?"라고 말했다. 그의 간곡한 부탁이었다. 처음에는 이 사람이 나를 너무 사랑하는구나 싶어 왠지 뿌듯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또 운전이 하고 싶어졌고, 해야만할 것 같았다.


아기를 계획하며 운전의 필요성을 더 느꼈다. 아이가 아픈데 남편은 회사에 있고 운전을 하지 못해 발만 동동 거리다가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간 친구의 이야기가 주효했다. 신혼 초부터 아이를 갖고 싶어하던 남편에게도 통하는 얘기였다.


그 날부터 나는 운전연수를 받았고, 그는 작은 중고차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남편의 SUV는 운전실력이 부족한 내가 몰기에는 너무 크고 부담스러웠다. 또 차를 애지중지하는 그의 차에 흠집이라도 낼까 매번 심장이 쫄깃하다 못해 쪼그라 들었기에 내 맘대로 몰고 다닐 수 있는 '내 차'가 갖고 싶었다.



요란스러웠던 출고식


운전을 할 수만 있다면 차는 어떤거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중고차를 알아보다가 점점 욕심이 생겼다. 정신차려보니 우리는 BMW 전시장에서 미니쿠퍼를 계약하고 있었다. 계약을 하고 나서도 고민이돼, 큰일이 있을 때 마다 조언을 해주는 아빠에게 의견을 구했다. 아빠는 '아이고'로 대답을 시작해 한 집에 무슨 차가 두대씩 필요하냐며 그건 좀 아닌 것 같다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5분 후,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는 좀 전 통화와는 다른 사람인듯 대뜸 차를 사라고 했다. 아빠와 엄마가 내 나이 때 엄마에게 자가용을 사주려다가 못샀던 일이 생각난다고 했다. 세상 일에는 다 때가 있고, 아빠가 보기에 내가 '이 때가 아니면 못 사고, 지금이 아니면 못 배울 것' 같다고. 생각해보니 어린시절 엄마가 운전하는 차 뒷좌석에 탔던 기억이 난다. 운전을 배우느라 시동을 꺼트리며 애먹던 엄마. 그 후로는 운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아빠는 그때를 추억하며, 혹은 후회하며 그렇게 나를 지지해줬다.


남들은 내 첫차를 사면 날아갈듯 기쁘다는데, 나는 아직 맘대로 끌고다닐 실력이 없어서인지 늘 남편차를 타고 다녔기 때문인지 큰 감흥은 없었다.


본격적인 내차 연수가 시작됐다. 남편과 나는 좀처럼 싸우지 않는 부부인데, 내가 차를 끌고 나갈 때마다 싸웠다. 15년차 장롱면허인 나와 달리 15년차 안전운전면허인 남편 성에 나의 운전실력이 찼을리가 없다. 운전을 할 때마다 싸우니 나중에는 점점 더 자신감이 없어지고, 운전을 하기가 싫었다. 가끔은 화가나서 맘대로 끌고 나가고 싶었지만, 운전을 배우기로 하면서 6개월 연수를 받기 전에는 절대로 혼자 운전하지 않기로한 남편과의 약속을 지켰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났다.


지난 설날, 내차에 남편과 아빠를 태우고 엄마 납골당에 다녀왔다. 운전을 못해서 차가 없어서 결혼 전에는 매번 버스와 택시를 타고 엄마에게 가야했는데, 엄마 납골당에 내차를 끌고 간 그 날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슬펐다. 성취감과 그리움이 뒤섞여 눈물이 났다. 앞으로도 나는 내가 발전하는 대부분의 순간이 슬플 것 같다. 엄마는 알까, 이제 내가 내 차로 아빠를 태우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걸. 나는 다 컸고 이제 늙어가는데 왜 마음은 점점 슬퍼지는지 모르겠다.


 후로  한달이 지났고 지금도  혼자 차를 끌고   있는 곳은 아빠집, 친구의 마카롱 가게 뿐이지만 꽤나 뿌듯하다.


아무튼 남들 다 하는 운전이 내게는 그랬다.


친구의 마카롱 가게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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