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른 얼굴
출근까지 한 시간이 남았다.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고, 지난밤엔 옆집 유칼립투스 나무에서 내 키만 한 큰 가지 하나가 앞마당으로 떨어졌다. 휴우~ 다행히 내 차 위로 떨어지진 않았다. 벌써 몇 주째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곳곳의 도로들이 범람한 물로 막히고, 기차들도 연착과 취소를 수시로 하는 통에 출퇴근과 통학길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나도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서야 한다. 원래 다니던 출근길이 통행금지가 되었을게 뻔하니 먼 길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 NSW 주 북부 해안과 내가 사는 센트럴 코스트 지역은 홍수피해와 함께 곳곳이 진흙탕이 되어 버렸고,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지구 반대편은 폭염으로 아우성이라는 뉴스가 나온다. 새삼스레 세상 곳곳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손을 내밀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지만,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까?
그래서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그들이 안전하게, 그리고 마음의 평안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또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보내 주세요. 저도 그들 곁에 있는 손길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보여 주세요.
그러다 문득 어제 설거지를 하면서 [Julse]라는 짧은 무비 클립을 본 게 생각이 났다. 외계인이 우연히 한 시골 마을에 불시착해 세 명의 노인들과 만나는 이야기였다. 처음엔 놀라고 서로 어색했지만, 천천히 관계를 쌓아가며 서로 의지하고 위로를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작고 아담한 외계인은 영화 내내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지만, 외로운 노인들과 함께 있어 주고, 그들의 말을 눈 맞추어 들어주었다. 말없는 외계인에게 각자가 필요한 위로와 함께 따스함을 느끼는 노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 영화를 통해, 마치 하나님께서 나의 삶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신 것 같다. 꼭 무언가를 해주어야만 도울 수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곁에 있어 주고, 함께 한 끼 밥을 나누고, 눈을 바라보며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는 충분할 수 있다는 걸 다시 마음에 새겼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에 외롭고 길을 잃은 것 같고, 어깨가 축 처져 있는 한 사람이 생각난다. 어제 수확한 열무로 김치를 담그면서도 문득 떠올랐던 얼굴이다. 이번 주 일요일엔 이 열무김치를 좀 나눠드려야지 생각했는데, 문득 그분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밥을 먹으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든다.
주님,
외롭고 낙심하고 길을 잃은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눈을 제게 주세요. 제가 그들의 친구가 될 수 있게요. 멀리 가지 못해도 오늘 제 일터에서, 또 다른 일상에서도 그 사람을 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곁에 있어줘야 하는지도 가르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