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숙제를 돕다 눈물이 터지다.
둘째가 HSC(대학수학능력시험) 과목으로 한국어를 선택했다. 겨우 읽을 줄 아는 정도인데도 부모가 한국인이라 초급과정을 선택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첨부터 과제로 500자 에세이가 나오는데 당황하던 아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한국의 명절에 대해서, 시대별 신조어에 대해서 설명하는 본문들은 아들뿐 아니라 이 아이의 실력을 알고 있는 나까지도 충격에 빠뜨렸다. 내가 몇 번이나 물었다. 네가 이 레벨을 해야 하는 게 진짜냐? 넌 여기서 태어난 거나 마찬가지고 읽는 것도 겨우겨우 하는데 괜찮겠냐? 자신 없이 고개를 가로젓는 아들. 휴우~
결국 난 아들의 한국어숙제 도우미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해보겠다며 낑낑거리며 쓰기를 하는 모습이 너무 기특하다.( 안녕하세요를 안영하새여로 쓰는 수준이었으니..... 정말, 무지막지하게 힘들었다.)
과제를 돕기 위해 옆에 앉아 있다 보면 한글의 우수성과 위대성에 놀랄 때가 많은데, 어느 날은 둘이서 자료를 읽다가 너무 감동이 밀려와서 눈물이 울컥 쏟아진 적도 있었다.
로마자는 완성에 걸린 시간이 약 3000년, 한글은 세종대왕이 즉위 후 바로 시작했다고 쳐도 약 30년 만에 완성된 글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소리문자라는 설명을 예를 들어서 보여주는데 그만 감동이 밀려오면서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렀다.
그때까지 아들은 더듬더듬 자기만의 속도로 읽으면서, 또 모르면 내 설명을 들어가면서 본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기본글자 ㄱ,ㄷ,ㅁ,ㅇ에서 격음(센 소리)을 만들어야 할 경우, 힘이 더 들어가는 걸 감안해서 줄을 한 두 개 더 그어서 ㅋ,ㅌ,ㅍ,ㅎ로 표시하게 만들었다는 설명을 읽더니만, 탄성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
"우와아아!!!!!! 정말!!!!!! 천재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
수학에서 어떤 새로운 이론을 선생님으로부터 설명을 들었을 때, 깨달음이 와서 놀랄 때 느끼는 그런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아들과 함께 공부하다가 세종대왕님 때문에 눈물을 흘리게 될 줄 몰랐다. 우왕, 정말 우리에게 이런 훌륭한 임금이 계셨다니.... 흐엉~~~~ 감동이다 정말~~~ 울먹이며 계속 말하려 하는데, 아들이 내 말을 가로막았다.
"엄마, 알겠는데요 눈물은 침대에서 감사기도하시며 더 우시고요, 지금은 내 숙제를 좀 도와주세요. "
흐엉? 그러네... 그러면서 둘이 또 쳐다보며 막 웃고... 그렇게 숙제를 이어가던 아들이 이렇게 말한다.
"한국어 선택하기를 진짜 잘했어요. 엄마랑 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도 좋고요. 한국에 대해서도 더 잘 알 게 되고요. 할머니 할아버지랑도 이제 더 잘 대화가 될 거고요.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도 가르칠 수 있으니까 정말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생고생을 하면서 아들은 무사히 입시를 마쳤다. 한국어 점수는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선택에 후회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이제 내년이면 막내가 입시를 준비하게 된다. 오빠로부터 강력하게 한국어를 입시과목으로 선택하라고 추천을 받은 터라, 아마도 나는 또 일 년은 숙제도우미를 해야 할 지도 모른다.
세종대왕님, 힘써 만드신 한글을 다음 세대에도 잘 전달하도록 이번에도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