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정규 2집이 기대되는 이유
베놈은 영어로 독을 의미하며 피부에 무언가 뚫고 침투해야만 발휘된다. 포이즌과 비교했을 때 더 강렬한 어감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한번 퍼지기 시작하면 더 위험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빅뱅의 아성, 투애니원의 열풍 이후로 내 흥미를 끄는 아이돌은 좀체 등장하지 않았다. 그동안 아이돌 시장은 크고 넓게 성장해 다양한 세계관으로 뉴비들을 끌어들였지만, 이미 마음 한구석에 구오빠, 구언니를 껴안고 있는 이들에게는 낯설고 신기하기만 한 컨셉들 뿐이었다. 담-백하면서도 독특함 한 스푼을 얻는 컨셉이 오히려 시장 안에서 찾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자리잡지 못하고 긴 팬심 공백기를 가질 무렵, 내 마음에 새로운 아이돌이 자리잡기 시작했으니 이름도 특이한 블랙, 핑크였다.
YG를 사랑해 마다 않던 내게 등장한 블랙핑크는 지금껏 기획사가 보여줬던 아이돌과 비슷하면서 달랐다. 개성은 그대로 두면서 이전에는 보여주지 않았던 공주님 기운을 한 스푼 끼얹었달까. 분명, 투애니원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가도 동시대 함께 팬심을 들썩이게 했던 다른 그룹들의 러블리함도 보였다. (그게 아마 핑크적 면모가 아니었을까.) 전혀 다른 스타일의 그룹들이 적절히 섞인 것 같은 낯설고도 익숙한 매력적임. 그대로 나는 팬심에 다이브 했다. 그들이 휘파람을 불적엔 내 마음속 다 죽어가던 걸 크러쉬 부캐가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그런 그들이 드디어 새로운 정규앨범을 들고 찾아온다. 선공개 곡의 제목은 무려 핑크 베놈이다. 가장 처음 공개된 티저 영상엔 실키한 원단으로 보이는 이미지 모션이 등장한다. 비단, 실크라 함은 보기에 좋고 그 광택이 아름다우나 금방 상하기 때문에 취급을 주의해야 하는 고급 원단 중 하나다. 그리고 뱀의 피부결과도 그 느낌이 비슷하다. 송곳니 형상의 두 갈래 원단 끝으로 분홍색 물 한 방울이 떨어져 번져가는 모습은 뱀의 날카로운 이빨과 독, 즉 베놈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얼굴 한번 등장하지 않은 티저 영상으로도 '아름다우나 취급주의'의 기운을 뿜어대고 있다. 블랙핑크는 다른 그룹들과는 달리 고저스함(주관적 견해)을 베이스로 가져가는 그룹이다. 또 YG 특유의 다크함이 기저에 깔려있다. 핑크 베놈은 붐바야, 불장난, 킬 디스 러브, 하유라잇댓으로 블랙의 이미지를 쌓아온 그들의 강력한 한방이 아닐런지.
17일. 핑크 베놈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이 공개됐다. 그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멜로디 라인도 일부 드러났는데, 국악을 베이스로 구성한 점이 마음에 든다. 한국인으로서 귀에 익는 자락과 힙함이 적절히 믹스 매치된 느낌. 티저 초반에 보이는 거문고, 그리고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화려한 비주얼적 면모가 지금껏 대중이 그들에게 기대했던 모든 것(예를 들면 어도러블한 핑크와 고저스하고 다크한 블랙, 그리고 이 잘난 그룹이 한국 그룹임을 나타낼 수 있는 오브제, 시그널 등)들을 충족해줄 것으로 보인다.
하유라잇댓에서 보여준 한복의 강렬함처럼 또다시 대중의 마음을 뜨겁게 할 그들의 뮤직비디오를 기다리며, 언제나 내 취향을 정확히 때려 맞추는 테디와의 협업이 앞으로도 쭉 이어지길 바래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