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의 의미
가끔 저는 제 이름과 사랑한다는 말을 잘 혼동하는 것 같아요.
-김필선 <봄날>
한 곡 안에서도 특정 가사에 꽂히면 그 가사를 들으려고 노래를 무한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도 한 부분을 위해 출퇴근 시간을 모두 할애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름은 우리가 두르고 있는 모든 언어 중에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마음을 널뛰게 만드는 단어다. 누구의 입을 통해 듣느냐가 중요하겠지만. 근래엔 직장에서도 닉네임으로 불리는 경우가 더 많아서, 진짜 이름으로 불릴 기회가 많이 없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애칭을 사용하니까. 그래서 이름이 주는 의미가 더 특별하다.
나는 누구보다 남에게 기대고 싶지 않아 하면서, 누구보다 기대고 싶은 이상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혼자 멋지게 무엇이든 해내고 싶은데, 누군가 뒤에서 나를 지켜만 봐줘도 힘이 날 것 같다. 어쩌면 뒤늦게 방황 길에 빠진 걸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최근엔 이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나를 한 단어로 담는 이 그릇이 더 작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 많이 많이 불러줘서 바래지 않고 빛났으면 좋겠다. 때로는 올리버처럼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라고 덤덤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나타나 주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자신의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만큼 자신을 온전히 다 주는 일은 없으니까. 상대에게 내 이름을 붙여준다는 것, 나누어준다는 것은 그 어떤 말들보다 '사랑한다'는 말과 닮아있다.
나는 태어나 처음 갖게 된 이름과 지금 이름이 다르다. 가족 어른 중 한 분이 나에게 이름이 너무 세다면서, 더 부드럽고 부르기 쉬운 이름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가수는 노래 제목을 따라가고 사람은 이름을 따라간다던데, 지금보다 세고 강인한 그 이름으로 살았다면 나는 현재와 다른 사람으로 자랐을까? 지금보다 슬픔에 무딘 사람으로 살 수 있었다면, 마음 안에 많은 것을 담고 살지 않을 수 있었다면, 그래서 뭐든 조금 더 쉬웠다면 나는 되돌아가서 그 이름을 주워 담고 싶다.
김필선 가수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하나 같이 마음을 들키는 기분이다. 세상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을 가진 채로 사는 사람이 또 있어서 반갑다. 그래서 나는 더욱 엘리오가 되고 싶지 않다, 고 다짐하게 된다.
몇 달 새 너무 많은 것을 소진했다. 그것이 뭔지 정확히 알 수 없어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봤다. 가끔 괜찮다가, 가끔 무너지는 것들을 괜찮게 쌓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제대로, 제대로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나타날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고 있으면, 엘리오도 올리버도 아닌 엘리오의 아빠에게 위안을 얻는다.
"우린 빨리 치유되려고 자신을 너무 많이 망쳐. 그러다가 서른 살쯤 되면 파산하는 거지. 그러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줄 것이 점점 줄어든단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만들다니, 그런 낭비가 어디 있니."
더 이상 낭비하지 않는 내가 되고 싶다. 무엇이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