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변화
장자가 가업을 잇는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는 나라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일본이다. 일본은 3대째 이어서 하는 가게는 숱하게 많고, 천 년 넘게 같은 자리에 있는 가게도 있다. 일본 드라마를 보면 가업을 잇기 위해 퇴사를 결정하는 인물도 심심찮게 보인다. 최근 읽었던 일본 작가의 책에서도 장녀의 가출로 차녀가 료칸을 이어받은 이야기가 나왔는데, 문득 내가 일본의 가업 승계에 대해 품었던 마음이 그간 참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초반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 일도 아니었거니와 요즘도 그런 게 남아있는지 의문이었다.
'요즘은 꼭 물려줘야 한다는 인식도 많이 약해졌다던데'
20대 중반에는 내가 재취업에 힘들어하던 때라 이을 가업이라도 있다는 게 무척 부러웠다. 어려서부터 보면서 커서 익숙할 것이고, 부모가 권하는 일이라면 앞뒤 안 가리고 그냥 집중만 하면 될 일 아닌가 싶었다. 오히려 다른 형제가 넘봐서 다툼이 나지는 않나 싶었다. 아버지랑 이에 대해 대화를 하기도 했었다. 아버지는 “그렇지만도 않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확실히 있는 경우도 많으니까”라고 하셨다. 당시 나는 연봉 높고 안정된 직장을 갖는 게 목표였다.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에 가업을 뒤로한다는 게 20대에 가능한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20대 후반이 되자 하나의 직업을 계속한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인내심이 필요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그게 쉬운 일이든 어려운 일이든. 쉬우면 회의감이 들어서, 힘들면 지쳐서 다른 곳에 눈이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자리에서 100년 넘게 우동을 파는 가게라든지, 60년 넘게 같은 메뉴를 만들고 있다는 할머니를 다큐멘터리에서 보면 이제는 이런 생각이 든다.
‘매일 같은 주방에서 같은 메뉴만 만들어내는 일 안 지겨우실까?'
'한 번도 방황하신 적은 없을까? 방황했다면 어떻게 돌아오신 걸까?’
외길인생을 살아온 모든 분께 경이를 느낀다.
인터뷰를 하면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라고 하는 경우를 보는데,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할지라도 그것조차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할 줄 아는 걸 안다는 것, 이것저것 직접 거려 보지 않고 집중한다는 것, 그게 참 대단한 일 아닌가?
최근에는 ‘꿈’이란 게 생겼다. 현실과 타협하고, 직장에서 어떻게든 보람을 찾으려 하며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있지만, 일과 병행하다가 나중엔 전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일, 즉 '꿈' 말이다. 꿈이 없을 땐 각종 노래나 매체에서 ‘꿈’을 논할 때 동화 같은 얘기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들은 나보다 앞서서 심장이 뛰는 경험을 했던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가업승계란, 가업과 다른 꿈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굴레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이거였구나 싶다. 그렇게 보면 처음부터 가업에 뛰어든 사람, 자신이 좇던 일을 하다가 가업으로 돌아온 사람 어느 쪽이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